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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비밀109

물감을 아껴라 18세기 프랑스는 계속되는 전쟁 때문에 피폐해졌고 영화를 자랑하던 루이 왕조도 쇠망의 길로 치닫고 있었다. 이 난국에 재정 쇄신을 꾀하기 위해 루이 15세(1715∼1774 재위)는 고등 법원에서 이름을 떨치 고 있던 에티엔 드 실루에트를 재정 대신으로 임명했다. 실루에트는 과감한 재정 개혁에 착수했다. 국고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였고, 국왕 개인의 경비도 과감하게 삭감하는 등 철저한 긴축 재정을 폈다. 그는 화가들이 쓰는 화구에까지 제약을 가했다. 붉은색이나 청색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그림은 검은색 한가 지로만 그리도록 했다. 그러나 긴축 정책을 통해 지출을 절약하는 것만으로는 재정 확보가 미흡했기에, 실루에트는 세입을 확대하고자 귀족 계급과 성직자들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려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기.. 2020. 8. 25.
터키풍, 유행하다 터키의 국토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접점에 해당하는 탓에 11세기 터키 민족이 도래하기 이전부 터 여러 민족이 모여 살며 문화적 접촉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많은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던 곳이다. 13 세기 말엽 중앙 아시아로부터 이주해 온 투르크족이 오스만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터키란 국명을 얻게 되었다. 투르크라는 말은 '나쁜 사람', '도둑' 따위의 뜻을 가진 낱말로 터키인을 가리켰다. 하지만 18세기 말엽 터키 문화에 대해 유럽인들이 호감을 느껴 일시적으로 '터키풍'이 유행한 적이 있다. 터키 열풍의 계기는 튤립이었다. 터키인은 튤립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민족이며, 그 역사도 오래 되었다. 터키 사람들 은 히야신스, 카네이션, 장미 등 많은 꽃을 사랑했지만 튤립에 대한 애정은 예로부터 각별했다. 그래.. 2020. 8. 25.
영국 신사들의 필수품 17세기경 영국의 귀족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오늘 날과 같은 형태의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유산 때문이었다. 고대 그 리스 사회에서 남자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들은 '여자 같은 남자'로 놀림 감이 되었던 까닭이다. 때문에 영국 귀족들은 망토에 이어진 두건만으로 비를 피해야 했고 왕후, 귀족은 우천시 결코 마차나 하인이 짊어진 이동 의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늘날 군인들이 우산을 쓰지 않 는 관습도 남자다움을 뽐내던 그리스 문화의 유산이다. 1637년 방수 처리를 한 천으로 된 최초의 우산 이 프랑스의 루이 13세를 위해 만들어졌고, 18세기 초엽 영국에서도 우산이 만들어졌으나 대중화되지는.. 2020. 8. 25.
페도스키노의 예술품 페도스키노는 모스코바 교외에 있는 작은 마을이며, 오카 강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러시아 시골 마을과 별다를 바 없는 조용한 시골이지만 이 마을엔 예로부터 러시아 생활 민속을 묘사한 독특한 예술 품이 전해져 왔다. 이른바 "페도스키노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불리는 그림이 그것이다. 종이 반죽으로 만 든 작은 상자의 뚜껑이나 벽면에 유화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그린 뒤 옻칠을 함으로써 하나의 예술품을 창조한 것이다. 페도스키노의 예술품은 그 지역에서 부자 또는 조손간에만 대를 이어 전해 오다가 1795년 모스코바의 상인 포이트르 코로보프에 의해 러시아 전역의 유행 상품으 로 떠오르게 되었다. 코로보프는 페도스키노의 독특하고 뛰어난 예술품에 감탄한 나머지 페도스키노 마 을 맞은편 다.. 2020. 8. 25.
최초의 사형 집행 기계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죄값을 물어야 사회 질서가 바로잡힌 다는 명목하에 처형이라는 이름의 '행정적 살인'은 오랜 세월 자행되어 왔다. 기요틴은 그런 처형 문화 에서 비롯된 산물이며, 동시에 죽음의 순간까지도 인권 차별이 엄존했음을 시사하는 용어다. 프랑스 혁 명 이전까지 귀족들은 사형 당할 때에도 특혜를 받았다. 평민들은 사지가 찢기거나 불에 달군 집게로 죽임을 당했고 조금 나은 대우를 받은 것이 교수형이었지만, 귀족들은 참수형으로 고통 없이 단번에 숨 질 수 있었다. 참수형은 죽는 순간까지도 귀족들에게만 베풀어지는 벌이었던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 명 당시 개업 의사이자 국민회의 의원이던 조제프 기요탱(1738∼1814)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는 .. 2020. 8. 25.
프랑스 혁명이 낳은 유행들 앙시앵 레짐은 '낡은 제도', '구체제'를 가리키는 프랑스어다. 영어권에서 구체제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굳이 프랑스어 낱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탄생했다는 역사적 의미 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앙시앵 레짐은 17세기 말엽에서 1789년 프랑스 혁명 직전까지의 1백년 간을 가리킨다. 이 시기 끊임없는 긴장 상태와 수 차례 권력의 변동이 있었던 혼란스런 영국의 정치 상황에 비해, 프랑스는 모든 것이 통합적이었고 사회 안의 갈등 요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생겼다. 그러나 사실 프랑스는 평온한 겉모습 뒤에서 속으로 곪아 가고 있었다. 성직자와 귀족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특권 계급으로서 온갖 특혜를 누렸지만, 새로이 부상한 부르주아지와 농민은 인구 의 대다.. 2020.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