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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비밀

영국 신사들의 필수품

by Frais 2020. 8. 25.

  17세기경 영국의 귀족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오늘
날과 같은 형태의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유산 때문이었다. 고대 그
리스 사회에서 남자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들은 '여자 같은 남자'로 놀림
감이 되었던 까닭이다. 때문에 영국 귀족들은 망토에 이어진 두건만으로 비를 피해야 했고 왕후, 귀족은 
우천시 결코 마차나 하인이 짊어진 이동 의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늘날 군인들이 우산을 쓰지 않
는 관습도 남자다움을 뽐내던 그리스 문화의 유산이다. 1637년  방수 처리를 한 천으로 된 최초의 우산
이 프랑스의 루이 13세를 위해 만들어졌고, 18세기 초엽 영국에서도 우산이 만들어졌으나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우산을 직접 든다는 것은 여전히 천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8세기  초엽 비가 오는 날이면 
영국 귀족들은 출입문에서 마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하인을 시켜 우산을 바치게 했고, 귀족의 영향을 받
아 중산층 사람들도 비가 올 때 우산을 쓰지 않고  마차를 불렀다. 비가 자주 오는 영국에서 이것은 여
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으나 사람들은 그럼에도 우산이 아닌 마차를 이용했다. 이러한 관습은 18세기 중
엽까지 계속되었으나, 런던의 박애주의자 존 핸웨이에 의해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영국 신사 존 핸
웨이는 1750년부터 날씨에 관계없이 외출할 때마다 꼭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으
며, 마차 주인들은 그에게 일부러 구정물을 튀겼다. 당시 남자들은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않고 마차를 
탔던 바, 우산이 보급되면 생계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그에 굴하지 않고 핸웨이는 30년 동안 우산을 
들고 다녔다. 참으로 끈질기고도 눈물겨운 그의 노력은 마부들의 거친 항의를 무릅쓰고 우산 휴대를 대
중화시키기까지 지속됐다. 핸웨이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점차로 남자들은 우산 사는 데 한 번 투자하
는 것이 비가 올 때마다 마차를 부르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핸웨이를 따라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 났고, 런던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우산 휴대를 습관화하게 만들었다. 마
침내 18세기 말엽 영국 신사라면 우산을 자연스럽게 들고 다니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한말까지만 해도 비가  오면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쓴  채 일을 했다. 도롱이는 
짚이나 풀을 이용하여 만든 오늘날의 우비와 비슷한 것으로,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허리에 둘러 무릎 
위까지 오게 하여 하체를 보호했고, 다른 하나는 목 둘레에 끈을 넣어 묶어서 어깨에 둘러 상체를 보호
했다. 현재와 같은 우산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미국과 수교를 한 1882년 이후라고 한다. 
그러나 우산이 대중화되기까지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 우산은 왕 이하 
상류층만이 양산을 겸한 의례용으로 사용하던 귀한 것이었고, 서민들의 사용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19
세기 말엽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선교사들이 우산을 쓰고 다니면 반감을 유발해 선교가 어려워진다고 말
한 기록이 곳곳에 보인다. 그렇지만 우산이  전혀 엉뚱한 이유로 한때나마 유행한  적도 있었다. 1891년 
배화학당에서 학생들이 쓰개치마 사용을 교칙으로 금지하자 맨얼굴을 내놓고 다닐  수 없다고 자퇴하는 
학생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학교에서는 대신 얼굴  가리개용으로 검정 우산을 주어 학생들을 달랬는
데, 그 펼쳐진 모양이 마치 박쥐와 같다고 해서 '박쥐우산'이라 했다. 이후 다른 여학생들과 일반 부녀자
들 사이에서 이 검정 우산을 멋 산아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 뒤 우산에 대한 금기가 풀리면
서 우산을 과시 삼아 들고 다니는 사람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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