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현대 비밀109 오리 궁둥이 댄스 무희들이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유명한 '캉캉'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활기차 고 대담한 춤이다. 1830년대 파리의 무도장에서는 '카드리유'라는 사교춤이 유행했는데, 남 녀 4∼5쌍이 정사각형으로 서서 마주 보며 일정하게 규정된 대형으로 춤추었다. 카드리유는 '사교'가 '눈요깃감'으로 변형된 형태로 1840년대 유흥가 술집 무대에 등장했다. 활기찬 4 분의 2박자 음악과 일제히 다리를 치켜 올려 속옷과 다리를 드러내는 동작은 금세 호색한 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유명한 캉캉 춤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의 캉캉은 여성 4명 또는 남성 2명과 여성 2명이 한 조가 되어 춤추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맨살 다리와 속옷을 보 여 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또한 오리가 궁둥이를 흔들 듯 엉덩이를 .. 2020. 8. 27. 목숨 건 도박, 결투 19세기 말엽, 미국 서부 지역에서는 결투가 반목과 이견 있는 사람 간에 결론을 내는 수 단으로 널리 유행하였다. 쌍방 간에 결투 장소와 시간, 무기를 협의한 뒤 약속된 시간에 참 관자 1명 씩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그런 뒤 서로 등을 마주 대고 일정 걸음을 걸은 다음 상대방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총을 반발만 쏘아 상대방을 쓰러뜨렸으며 확인 사살은 하지 않았다. 즉 '맞추는 자'가 승리한 자로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맞추는 데 의미가 있지 상대방을 살인하는 데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총상은 매우 치명적이었 던 까닭에 대부분의 패자는 목숨을 잃기 일쑤였다. 미국인의 결투는 17∼18세기 유럽에서 성행했던 귀족들 간의 1대1 승부, 혹은 18세기경 1대1 육상 경주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2020. 8. 27. 남사당의 비극 구한말 유랑 예인 집단인 사당패는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중심으로 일단을 조직하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 다니며 절이나 광장 근처에서 춤과 노래, 그리고 매춘으로 생활의 방편을 잡았다. 사당이라고 하면 원래는 여사당을 의미하였으나 남자들만의 사당패가 출현, 이를 '남사당패', '남사당'이라 불렀다. 사당패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던 계급으로 대부분 가난한 농가 출신과 고아들로 이루 어진 조직이었으나 규율이 엄격했으며 재주 배우는 것에도 단계가 있었다. 꼭두쇠 밑에는 각 놀이 분야의 선임자인 '뜬쇠'가 있었고, 뜬쇠 밑에는 가열(보통 기능자), 가열 밑에는 삐 리(초입자)가 있었는데, 삐리는 잔심부름부터 시작하여 한가지씩 재주를 익혀 가열이 되었으 며, 이들이 가열이 되기까지는 여장을 하는 것이 상례였.. 2020. 8. 27. 단발령과 초상 사진 붐 김홍집 내각은 을미사변 이후 내정 개혁에 주력하여 1895년 11월 15일 국민들에게 머리 를 자르라는 단발령을 내렸다. 이날 고종은 솔선해서 단발하고 양복을 입었으며, 전 국민에 게 단발할 것을 명령하였다. 내부대신 유길준은 고시를 내려, 관리들이 칼을 들고, 또 각 가 정에까지 들어가서 머리를 깎도록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반발이 심했다. 예로부터 우리 나 라에서는 모발을 매우 소중히 여겨 승려나 백정들만이 머리를 깎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을사사변으로 인해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터인데다 단발을 강행하니, 정부의 대 신들 가운데에서도 이도재 같은 이는 반대 상소를 올리고 관직을 사퇴했으며, 전국의 유생 들은 크게 반대하여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정부는 친위대를 파견하여 이들 .. 2020. 8. 27. 껌 팔아서 백만장자 된 사나이 미국 껌의 대명사는 '리글리 껌'이지만, 윌리엄 리글리(William Wrigley Jr. 1861∼1932) 가 껌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리글리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껌을 본격적인 상품으 로 만들어 거부가 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리글리는 시대의 우연한 행운아가 아니었다. 그는 '경품'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식사 뒤 껌 씹는 유행을 탄생시킨, 판매 전략의 천재였다. 윌리엄 리글리는 소년 시절 악동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비누 공장을 운영하는 아 버지의 일을 돕던 중 판매에 대한 스스로의 자질을 확인하였다. 13세 때 리글리는 내심 못 미더워하는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비누 판매 여행을 떠났다. 리 글리는 예상 외로 판촉활동을 잘했다. 더구나 그의 판매 비결이 공손한 태도와 끈기에 있 었기.. 2020. 8. 27. '∼가지' 제목의 시조 1890년대 초, 피츠버그의 조미료 제조업자인 헨리 하인즈(1844∼1919)는 뉴욕의 고가 철 도를 달리는 전차 속에서 무심코 창 밖을 보다가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한 가게 앞에 '21 가지 모양의 신발들'이라고 씌어진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영감이 스 쳤다. 곧바로 그는 이 문구를 자신의 회사에 적용시켜 '57가지 종류'(57 varieties)라는 독특 한 숫자 슬로건을 창안해 냈다. 당시 그의 회사는 이미 60가지가 넘는 피클(오이절임), 향료, 식초류 등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하인즈는 어쩐지 57이 마음에 들어 상징적 숫자로 정했다. 그는 '57가지 종류'라고 쓰인 전단을 만들어 미국 전역의 수천 대에 달하는 전차 내부와 자기 회사 소유의 4백여 대 화물 차량 표면에다 붙이는.. 2020. 8. 27. 이전 1 ··· 5 6 7 8 9 10 11 ···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