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우 제임스 딘은 강렬한 개성 때문에 단 세 편의 영화에만 출연하고도 '반항아'의 이미지를 확
고히 남긴 사람이다. 제임스 딘은 스피드광이어서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기를 좋아했고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다녔다. 그가 여자를 유혹할 때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 있었는데, 오토바이에 파트너를 태워 무시무
시한 속도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그는 곧잘 그런 식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오토바이는 1884년 영
국에서 첫 선을 보였지만 1910년 이후에야 널리 확산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병력 급파를 비롯
한 군사적 목적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전후에는 스포츠용으로 각광받았다. '지옥의 천사들'로
일컬어진 폭주족은 1950년대 초엽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때 오토바이는 가죽 점퍼와 더불
어 '사회적 반항아'들의 상징물로 등장해 사회 문제시되기도 했다. 때문에 오토바이의 유행은 나쁘게 보
면 폭주족을 낳은 일탈적 현상이었으며, 좋게 보면 '자유로움'과 '야성미'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탈출구
였다. 제임스 딘이 오토바이를 좋아한 것도 후자의 시각에서였으며, 야성파 배우 말론 브랜도가 가죽 점
퍼를 걸치고 오토바이를 몬 것도 이 같은 야성미 발산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점잖은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대체로 기피했다. 이런 오토바이 문화에 변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유행을 탄생
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혼다 쇼시로였다. '혼다 슈퍼 컵'이란 오토바이가 나오면서부터 오토바이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십 개가 넘는 오토바이 제조업체 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혼다는
1958년 '슈퍼 컵'이라는 새 모델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경제적인 중형 오토바이의 견고성에 스쿠터의
편의성을 혼합해 놓은 50cc짜리 이 경량급 새 모델은 일본 전역에 일대 선풍을 몰고 왔다. 이윽고 1960
년대가 되자 '슈퍼 컵'은 일본 전역의 도시와 농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오토바이가 되었으며 이 성
공에 힘입어 미국 진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혼다는 미국의 오토바이 시장이 이른바 '검은 가죽 점퍼 패
거리' 뿐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미국 시장에서 오토
바이를 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미국인의 의식 속에 숨어 있는 오토바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
지를 씻어 내야 했다. 그래서 혼다는 '슈퍼 컵'의 장점들을 나열하는 것보다는 오토바이 자체에 대한 일
반의 인식을 높이는 일이 더 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962년 혼다는 '혼다 오토바이는 가장 멋진 사람
들이 탄다'라는 슬로건 아래 광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 광고는 위에서 말한 슬로건 밑에 학생, 주부, 사
업가, 은퇴자, 젊은 신혼 부부 등 다양한 계층의 미국인들을 등장시켜 즐겁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였
다. 혼다의 이 광고는 오토바이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기여를 했다. 이에 따라 혼다사는 불과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오토바이를 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많은 미국인들에게 '슈퍼 컵'을 팔았다.
그리하여 혼다 오토바이는 교통 수단용이 아니라 소형 레크레이션 기구로 미국 중산층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근, 현대 비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타민은 왜 먹나 (0) | 2020.08.28 |
---|---|
미니스커트 신드롬 (0) | 2020.08.28 |
전후 세대의 문화 사랑방 (0) | 2020.08.28 |
비틀스에게 훈장을 (0) | 2020.08.28 |
바비 인형과 공주병 (0) | 2020.08.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