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인형과 공주병

  오늘날 서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형은 늘씬한 몸매에 예쁜 얼굴을 한  '바비 인형'(Barbie doll)이다. 
바비 인형은 1917년 장난감 제조업자 루스 핸들러에 의해 탄생했다. 그녀의 딸 바비 핸들러가 소꿉놀이
를 할 때 종이 인형을 가지고  장난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멋진 옷을 입힌 성인 인형을 
실험적으로 만들고 그 인형에 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바비 인형은 1959년 미국 마텔사에 의해 본격
적으로 생산 판매되었으며, 소비 계층의 변화에 힘입어 급속히 유행하였다. 즉, 1950년대에는 베이비 붐
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주요 소비 계층으로 등장하였던 바, 바비 인형은 아이를 위한 장난감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이후 바비 인형은 전세계적으로 10억 개 이상의 분신을 뿌려 대며 요조숙녀에게 섹시한 
밤무대 가수로, 여군 장교에서 간호사로 변신을 거듭해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바비 인형이 
시대를 초월하여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등장 당시의 인형  시장 상황에 
있다. 바비 인형이 데뷔할 무렵, 미국 인형은 귀엽게  생긴 아이 모습을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
해 바비 인형은 아주 세련된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  점이 소녀들의 눈길을 사로잡
은 것이다. 다시 말해 소녀들의 성인 모방 심리가 '신세대'적인 바비 인형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여자 아이들은 다투어 바비 인형을 구입하였으며, 갖가지 인형 복장이 성인 의상으로 유행
하기도 했다. 이른바 '바비 룩'(바비 인형 패션)이  탄생한 것이다. 바비 인형의 유래에는 소녀들의 동경 
심리와 함께 시대에 따라 당시의 사회적 정서를 적절히 반영한 접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성적 매력을 강조한 도톰한 입술과 아래로 내리깐  눈길로 순종적인 여성상을 선
보였으나, 1967년에는 정면을 응시하게 됐고, 1977년에 이르러 치아를 전부  드러내고 웃음 짓는 지금의 
바비가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섹시한 여성이 우대받았던 사회에서는 풍만한 가슴, 부러질 듯한 개미 허
리, 눈부신 금발의 모습을 하였지만  가슴과 히프가 작아진 1998년형  바비는 10대의 첨단 패션인 힙합 
바지도 멋지게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공주병' 환자 같은 모습이기에 바비 인형은 페미니스
트들로부터 '비현실적인 글래머를 소녀들에게 미의 기준으로 각인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
도 여전히 바비 인형의 유행 열기가 식지 않은 것은 그녀의 끊임없는 변신이 소녀들에게 사회적 자신감
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일례로 1997년 일본 이토추사의 시장 조사에  따르면, 일본 여성들에게 바비
는 '독립적이고 자기 확신에 찬 신세대 여성'의 대명사이다. 직장,  가정을 막론하고 아직도 남성 지배적
인 일본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은 옷차림을 통해 자유  자재로 변신을 감행하는 바비를 보고 '여성도 자
신의 원하는 무엇이든 될 자격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바비 인형은 여성의 섹시한 
몸매를 강조하고 패션을 추구하는 사치의 상징으로  여겨져 그에 대한 반발로 양배추  인형이나 못난이 
인형이 나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린 소녀들의 친구로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