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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비밀

뽀빠이는 왜 팔뚝에 문신을 새겼을까

by Frais 2020. 8. 28.

  피부색이 검은 민족과 중국인들에게는 드물지만 그 외의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문신 행위가 보편
화되어 왔다.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시대의 미라에서 문신이 발견되었고, 그리스인, 갈
리아인, 고대 게르만인들도 문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인들은 죄수와 노예에게 문신을 새겼다. 아
메리카 인디언들은 관례적으로 몸이나 얼굴에 문신을 했으며, 남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은 숯검정을 이
용한 색소를 묻혀서 피부를 가볍게 톡톡 찔러 색소가 피부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문
신을 뜻하는 영어 '타투'(tattoo)는 타히티어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남태평양을  여행하고 돌아온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영어로 소개되었다. 1769년 7월의  한 신문에서 쿡 선장이 타히티 주민들을 묘사했는데 
그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주민들은 몸에 문신(Tatu)을 하며, 이것은  피부 밑에 검은색을 새겨 넣
는 영구적인 방식이다. 남자들은 새  또는 개의 문양을 새기고, 여자들은  대체로 손가락과 발가락의 Y 
관절 위에 Z 모양의 문신을 하고 있다. 이 밖의 장식으로 귀고리가 있으며 주로 한쪽 귀에만 착용한다." 
남태평양의 문신은 '글씨'가 아닌 '그림'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서양인들 사이에서 힘 과시
용으로서의 문신이 심심치 않게 행해졌는데,  그 유행의 계기는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제공했다. 문신을 
한 폴리네시아인들이 18,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의 전시회, 박람회, 서커스 등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후, 문신에 매력을 느낀 일부  서양인들이 그를 흉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박람회나 서커스가 
열린 항구마다 문신을 해 주는 곳이 생겨 났는데 예외가 없을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자
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뱃사람들은 힘 자랑에 남다른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던 바 그런 마음이 문신 유
행으로 이어졌다고 여겨진다.
  1891년 전기 문신 기구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특허를 얻었으며 이후 20세기 들어 문신은 더 널리 유행
하였다. 미국은 특히 문신 도안을 널리 보급해 이 방면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가 되었다. 만화 주인공 뽀
빠이의 팔뚝에 새겨진 닻 모양의  문신은 1930년대 당시의 문신  풍습을 보여 주는 사례이고, 1944년경 
유행했던 번선 모양은 해양 문화의 산물이며, 장미꽃이나 하트 문양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힘 자랑을 하
기 위해 고안된 문신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문신은 1,2차 세계 대전 종전을  전후하여 급격히 유행하였
다. 1차 대전 끝난 뒤인 1920년과 2차 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크게  유행한 것이다. 이것은 군사 문화
의 영향에 힘입은 것으로 여겨진다. 즉  육군에 비해 팔뚝 노출이 잦은  해군 병사들이 힘 자랑을 위해 
적극 문신을 하였고 이것을 항구 주변 사람들이 다투어 흉내내었다는 분석이다. 한편 문신 과정이 고통
스럽다 보니 의지의 표현으로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폭력범들이 의지나 힘의 과시를 위해 문신을 하게 
된 배경으로, 조직 폭력배들 사이에 은밀히 행해진 문신은 그들만의 결의 표시로  통했다. 결의를 할 때 
팔뚝에다 글자나 그림을 바늘로 쪼아 문신을 함으로써 그 결의를 영구히 약속했던 것이다. 때문에 오늘
날 의리와 충성을 맹세하는 상징으로 주로 '주먹  세계'에서 문신이 행해지고 있으며, 1981년 이른바 군
부에서 '삼청교육' 대상자를 선별할 때 문신이 그 결정적 기준으로 작용한 바 있다. 이때 선량한 사람이 
문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붙잡혀 간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나라에서 문신은 좋지 않은 풍
습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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