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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비밀

남사당의 비극

by Frais 2020. 8. 27.

  구한말 유랑 예인 집단인 사당패는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중심으로 일단을 조직하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 다니며  절이나 광장 근처에서 춤과 노래,  그리고 매춘으로 생활의 
방편을 잡았다. 사당이라고 하면 원래는 여사당을 의미하였으나 남자들만의  사당패가 출현, 
이를 '남사당패',  '남사당'이라 불렀다. 
사당패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던 계급으로 대부분 가난한 농가 출신과 고아들로 이루
어진 조직이었으나 규율이 엄격했으며 재주  배우는 것에도 단계가 있었다.  꼭두쇠 밑에는 
각 놀이 분야의 선임자인 '뜬쇠'가 있었고, 뜬쇠 밑에는 가열(보통 기능자), 가열  밑에는 삐
리(초입자)가 있었는데, 삐리는 잔심부름부터 시작하여 한가지씩 재주를 익혀 가열이 되었으
며,  이들이 가열이 되기까지는 여장을 하는 것이 상례였다. 남사당은 서민들로부터는 환영
을 받았지만 지배층으로부터는 심한 멸시와 수모의 대상이어서 마음대로 어느 마을에나  출
입할 수  없었다. 놀이판을 벌이기 위해서는  '곰뱅이쇠'를 마을로 들여 보내 최고 어른들로
부터 사전 승낙을 받아야 했다.  허락이 떨어지면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아 가며 
마을의 큰 마당이나 장터에서  밤새워 놀이판을 벌였다. 남사당은  갖가지  재주를 보여 구
경꾼들로부터 엽전을 받아 생활했는데, 장기로 삼은  것은 무동타기였다. '무동'이란 사당패
를 따라 다니며 춤추거나 노래하는 아이를 말하며, 이들이 2단 또는 3단으로 올라서는 것을 
'무동타기'라 했다. 무동타기는 남사당패가 마을로 들어설  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벤트로 행해졌다.  하지만  남사당패의 정식 놀이는  풍물(농악)·버나(대접돌리기)·살판
(땅재주)·어름(줄타기)·덧뵈기(탈놀음)·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여섯 가지 놀이였으며, 그 
중에서도 줄타기는 가장 인기 있는 묘기로 여겨졌다.  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 하여 '어름'
이라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줄타기는 실제로 매우  어려운 재주이기도 했지만, 재주꾼
이 줄에서 떨어질 듯 장난치는 익살이 더해져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줄타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초파일, 단오, 추석 등의 명절에  따로 줄타기 묘기만 벌어지기
도 했다. 남사당은 1900년대 초 이전에 서민 사회에서 자연  발생한 민중  놀이패로 농민들
에게 흥겨움을 제공하였으며, 한편으로 흥행을 통해 민중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도 했다.  그
러나  사당패들은 한일합방 이후 흥행 횡재를 노린 일본인들이 들여 온 서커스에 밀려 하나 
둘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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