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798 핸드백의 역사 인류와 피혁은 오래 전부터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피혁 제품이 일 상적인 생활 용품으로 상품화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에서 벗겨 낸 그대로의 상태를 '피', 그것을 무두질하여 부패·건조를 없애고 내수·내열성을 가미한 것 을 '혁'이라 부르고 있다. 초기의 타닌 무두질은 공정에 시간을 요했지만, 19세기 후반에 화 학적인 크롬 무두질이 개발되어 공정을 하루로 단축시킴에 따라 피혁 제품, 특히 여행 가 방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물건을 넣어서 들고 다니는' 핸드백의 역사는 퍽 오 래되었다. 기원전 9세기경 아시리아의 고대 유적에 부조된 유익신상의 손에는 네모난 핸드 백이 들려 있다. 이처럼 가방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신분 계층에 따라 사용하는 가방의 .. 2020. 8. 26. 19세기 히트 상품, 명함판 사진 '명함판 사진'은 사진을 인쇄하여 명함을 대신한 19세기 유럽의 풍습에서 유래했다. 파리 의 초상 사진가 앙드레 아돌프가 처음 만든 후 19세기 중반에 굉장히 유행했다. 아돌프는 1854년, 4개의 렌즈가 달린 명함판 사진 카메라에 대한 특허를 받았는데 이것을 적극 상술 에 활용했다. 그는 카메라 규격 사이즈의 원판으로 가로 5.69cm, 세로 8.44cm 크기의 음화 필름 8장이 나오면, 원판대로 나온 큰 인화지를 잘라서 대략 가로 6.5cm, 세로 10cm 크기의 명함에 붙여서 사용했다. 즉 값싸고 작은 초상화들을 명함 대신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명 함판 사진'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명함판 사진은 나폴레옹 3세가 디스데리에게 포즈 를 취해 준 이후 일시적으로 크게 유행했으며, 생일이나 경축일에.. 2020. 8. 26. 사람은 왜 좌측 통행을 할까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소를 신성시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힌두교도들은 소를 신으로 섬겨 꽃과 술로 장식하고 집 근처에 모시며, 이름을 지어 주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 를 나눈다. 그들은 소에게 무엇이든 우선권을 주고 좋은 자리를 내준다. 소가 길거리를 돌아 다니는 경우, 번잡한 통행로의 오른쪽을 차지하도록 놔두며, 통행시 사람보다 우선권을 준 다. 힌두교도들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윗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도 통행에 대한 관습이 있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실용적 이유에 서 형성되었다. 19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마차를 타고 교외로 나들이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이 '삶의 낭만'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풍속이었다. 인 기 있는 나들이 장소는 단연 강변이.. 2020. 8. 26. 꽃다발 선물이 의미하는 것 1917년 찰리 채플린은 대스타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는 모두 성공 을 거두었고, 그는 달러 박스로 통했다. 그런데 채플린은 돌연 15세의 엑스트라 여배우 밀드 레드 해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채플린의 원래 쾌활한 사람이었지만 반면 고독한 성격을 지 니고 있어 아름답고 젊은 여성에게 쉽게 매료되는 경우가 많았다. 밀드레드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녀였고, 채플린은 첫눈에 그녀에게 사로잡혔다. 채플린은 꽃다발과 기다림으로 그녀에게 프로포즈했다. 열렬히 사랑한다는 표시로 매일 꽃다발을 보냈으며, 사랑의 진지함 을 강조하기 위해 그녀가 일하고 있는 스튜디오에 차를 세우고 몇 시간이나 끈기 있게 기다 렸다. 채플린의 사랑에 감동한 밀드레드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마침내 두 사람의 결혼 식이.. 2020. 8. 26. 양말과 기독교 천주교는 17세기 초 우리 나라 실학 운동에 자극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학이라는 새로 운 학풍을 낳기도 하였다. 서학이란 서양의 종교와 학문을 내포한 개념인데, 우선 학문적인 관심에서 연구되기 시작했지만 이윽고 천주교 신앙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천주 교 신앙이 우리 사회에 침투하기까지는 대략 2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며 외국 선교사들 의 피땀 어린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 신해사옥(1791), 신유사옥(1801)을 거쳐 수많은 순교 자를 양산했지만, 그럼에도 19세기 중엽을 전후해 이 땅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목숨을 걸고 포교에 열중하였다. 선교사들은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했으며, 언어 장벽으로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포교를 위한 문화적 충돌에 애로.. 2020. 8. 26. 티 타임의 창시자 유럽인이 차라는 음료를 알게 된 것은 16세기 중엽이었다. 161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 에 전파되었고, 차 마시는 유행은 네덜란드를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제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로 퍼져 나갔다. 차는 특히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차가 영국에 도입된 것은 1657년이었고 그로부터 3년 후 일 기 작가 새뮤얼 핍스는 난생 처음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칼 브라간자 가 출신 의 캐더린 왕후는 1662년 영국 왕실에 처음으로 차 마시는 풍습을 도입했다. 그리고 1세기가 지난 뒤 베드포드 공작 부인이 일상의 '무기력한 기분'을 치료하기 위해 매일 5시에 차와 케이크, 과자를 내놓아 티 타임의 창시자가 되었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오후의 홍차' 시간에는 '티 가운'.. 2020. 8. 26. 이전 1 ··· 82 83 84 85 86 87 88 ··· 1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