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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비밀

컬러 영화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by Frais 2020. 8. 27.

  토머스 에디슨의 움직이는 사진 '키네마스코프'가 공개된  것은 1894년이며,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래
프'가 확대 영사에 성공한 것은 1895년이다.  모두가 새로운 정보 미디어로 구미  각국에 유행하여 민중 
오락의 총아가 되었다. 이런 영화 유행의 대세는 미국에 의해 주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국 영화
계가 질이나 양에 있어 특히 우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제1차 대전 무렵부터이다. 포터와 그리피스가 
영화극 양식을 고안하여 단편 희극과 활극이 대량 생산된 1914년부터 미국 영화는 급속히 발전했다. 그
리고 1920년대 후반 새롭게 등장한 유성 영화의 흥행 성공은 미국을 영화의 본거지가 되게끔 만들었다. 
촬영소는 미국 서부의 할리우드에 집중되었고 많은 명감독과 미남 미녀 스타가 전세계의 스크린을 장식
했다.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도  미국 영화의 흥행 성공에 주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1928년 
제정된 '아카데미상'이 영화인들의 잔치를  뛰어넘어 대중들에게 파고든  것이다. 전형적인 대중 영화를 
만들면서도 '아카데미'라는 명칭을 쓸 만큼 미국의  상술은 지능적이었다. 대부분의 극영화는 사랑과 웃
음에 주제를 두어 상품성을 중시했는데, 1930년 <모로코>, 1933년  <킹콩>,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
지다> 등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화제  도서의 
영화화라는 점 외에도 색채 영화의 이정표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작가 마거릿 미첼의 장편 소설 제목이다. 미첼
은 1926년 남편의 권유로 시작해 10년간의 조사와 집필 끝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 남북전쟁으로 하룻밤 
사이에 남부의 전통도, 질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부유한 농장주의 딸로 자라던 스칼렛 역시 패전
의 고통을 겪게 되나 온갖 수단으로 전력을 다해  살 길을 개척한다는 이야기이다. 남북 전쟁과 전후의 
사건을 배경으로 급변하는 사회상을 자상하게 묘사하면서 아름답고 억센 남부 여성 스칼렛 오하라가 황
폐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 연약한  이상주의자 이슐레 윌크스에 대한 사랑,  물질주의적이며 행동가인 
레트 버틀러와의 애욕 등을 한데 엮어 가면서 간결한 문체와 정교한 묘사로 구성되어 있다. <바람과 함
께 사라지다>는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 종장을 쓰고,  각 장을 순서 없이 제멋대로 쓴 뒤 최
후에 제1장을 써서 전편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또한 미첼은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겨  준 후, 곧 마음
이 변하여 '원고 반환 바람'이라는  전보를 쳤으나, 맥밀런 출판사는  정중하게 그 제의를 거절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원고는 1936년 출판되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1937년에 퓰리처상을 수상
하는 등 문학적 역량도 인정받았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져 1939년 개봉되
었고, 영화 또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심리적으로나 패션 면에서 '스칼렛'을 
모방하는 유행이 미국을 휩쓸었으며, 주연 배우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언 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유행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칼렛의 의상은 특히 주목을 끌었으니, 결혼식에서 입은 크림
색 드레스와 커튼으로 만든 녹색 드레스 그리고 닭의 깃털이 장식된 모자도 인상적이었다. 의상 디자이
너 월터 플런키트는 회상하기를 "이 영화의 핵심이 될 만한 녹색 드레스는 영화 의상에 있어서 가장 으
뜸으로 기록될 것이다. 내가 그것을 만들었음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자긍심을 보이기도 했
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후 
다른 작가에 의해 그 속편이 쓰여졌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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