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의 청년화가 알베르토 바가스(Alberto Vargas, 1896∼1982)는 1917년,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에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의 심정을 바가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이었다. 문득 나는 아주 아름답고, 완벽하며, 전형적인 '미국 여성'(American girl)을 그
리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렇게 창조한 '여자'를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보여 주리라 마
음먹었으며, 그러면 사람들이 '바가스 걸'(Vargas girl)에 환호할 것임을 확신했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바가스 걸'이 탄생했고, 섹시한 바가스 걸은 1차 대전(1914∼1918)의 '군대 분
위기'에 편승하여 전장의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17년은 미국이 1차 대전에 뛰어
든 해로, 바가스 걸은 군인들의 '성욕 출구'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1917년 처음 그려진 바
가스 걸은 붉은빛이 도는 머리칼에 요염미 넘치는 얼굴과 풍만한 가슴을 포도송이로 가리
고 있었으며, 단순히 섹시함만이 아니라 우아한 분위기로 연출하고 있었다. 1920년대 이후
에는 바가스 걸뿐만 아니라 섹시한 모습을 한 여러 여자들이 창조되었고, 이러한 그림들은
핀(Pin)으로 벽에 꽂혔기에 '핀업 걸'(pin up girl)이라는 말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이때부
터 '핀업 걸'은 벽면을 장식하는 섹시한 여자를 의미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달력에
매력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유행도 핀업 걸의 영향이며, 1920년대 이후의 일이다. 특히 달력
은 일년 내내 벽에 걸어 놓는 특성 때문에 핀업 걸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우리 나라
에서는 1960∼70년대 중엽 여배우들이 달력을 통해 몸매를 자랑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
데 바가스 걸의 주인공은 항상 동일한 여자가 아니었다. 섹시하고 우아한 여자라는 기본 조
건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 사람들의 기호에 부응할 만한 다양한 포즈와 얼굴, 몸매로 그려
졌던 것이다. 이를테면 머리칼의 경우만 하더라도 금발, 흑발, 붉은 머리 등이 교대로 그려
졌고, 얼굴도 갸름한 얼굴, 둥근 얼굴, 각진 얼굴 등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그런가 하면 때로
는 얼굴보다 가슴과 다리에 초점이 맞춰져 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을 전후한
1940년 이후에는 섹시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어졌으며, 제인 러셀 같은 육체파 여배우를
모델로 삼는 경우도 많아졌다. 바가스 걸의 인기는 1970년대 플레이보이사의 토끼 소녀
(Bunny girl)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아메리카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지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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