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숙박업소는 고대부터 있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큰길을 따라 상인, 관
리, 순례자,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관이 번창했고, 중세 시대에는 종종 수도원들이
여관의 기능을 대신했다. 숙박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들어 역마차
여행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부터이다. 그 후 철도 시대가 도래하자 근대적인 호텔이 나타나
게 되었는데, 당시 호텔들은 대부분 철도역 근처에 세워졌다. 유럽에서는 1910년을 전후하여
각지에 여행자를 위한 호텔이 세워졌으며, 주말에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하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형태의 고급 호텔은 대부분 1920년대에 미국에서 세워졌다.
폭발적 경기 호황에 힘입어 호텔 건축 붐이 일어났던 까닭이다. 이때의 호텔은 철도역 근처
가 아닌 시내 중심지나 휴양지 근처에 세워졌다. 일과성 잠자리가 아닌 '안락한 휴식처'로서
의 개념을 내세운 까닭이었다. 그러나 호텔이 많이 세워졌다고해서 아무나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텔에 묵으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했다. 호텔에서 잠을 잔다는 것
은 대단한 사치로 여겨졌으며, 여유 있는 사람의 경우라도 호텔에 투숙하려면 큰맘 먹어야
했다. 특히 고층 호텔에서 시내 야경을 바라보는 것이 유행이었고, 호텔측은 고층에 더욱 비
싼 방을 배정하여 손님을 끌었다. 당시의 라디오 방송국이 <호텔의 최고층으로부터>라는
심야 프로그램을 방송할 만큼, 호텔은 그 지방의 명소였으며 상류 사회의 상징이었던 것이
다. 호텔과 대비되는 것으로 '모텔'(Motel)이 있다. 모텔 또한 여유 자본가에 의해 탄생하
였다. 건축 자금은 있지만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 내지 못한 사람들이 도로 연변에 간단한
건물을 짓고, 거기에 침대를 들여 놓은 후 자동차(motor) 여행자들에게 1달러에서 2달러 정
도의 싼 가격에 숙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미국에서는 1950년경, 유럽에서는
1960년경부터 자동차가 주요 여행 수단이 되면서 곳곳에 모텔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텔'
은 'motor'와 'hotel'의 합성어이다. 모텔의 등장은 숙박업소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즉 호텔은 상류 사회의 숙박업소로, 모텔은 중하류층 사람들을 위한 숙박 업
소로 은연중 구별되기 시작한 것이다. 호텔과 모텔은 시설 기능적인 면에서 구별되지 않는
다. 위로 10층 이상 뻗어 올라간 것이 호텔이고, 옆으로 뻗으면서 2층 이하로 지어진 것이
모텔이라 구분되던 때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고층 모텔도 허다하다. 따라서 시설이 아닌
서비스 제공의 측면에서 구별되는 것이 옳을 듯싶다. 모텔은 주차장과 침실을 제공해 줄
뿐 기타의 부대 서비스가 없는 반면, 호텔은 투숙객에게 '왕'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
다. 호텔 욕실의 경우 깨끗한 타월은 물론 비누도 하나하나 포장된 것만을 깔끔하게 정돈
해 놓고 있으며, 침대의 시트도 매일 갈아 준다.
마치 하인들의 극진한 시중을 받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어 '흐뭇한 기분'을 느끼
게 해 주는 것이다. 호텔의 각종 부대 시설도 모텔과 확연히 구별된다. 호화로운 식당이나
쇼(show), 수영장 등은 고객으로 하여금 궁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
다. 요컨대 호텔은 부가 최고의 사회가치로 인식됨에 따라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
는 금전지상주의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자본의 기념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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