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는 갖가지 곰 인형이 유행하였는데, 모든 곰 인형에는 한 가
지 공통점이 있었다. 로봇처럼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앉힐 수도 있는 이 곰
인형은 묘하게도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관점에서 탄생했으며 그 배경엔 시대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그 무렵은 열강이 약소국에 대한 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때로 세계 곳곳에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전의 비교적 평화롭던 시대가 힘이
지배하는 시대로 변해 가던 과도기로, 곰 인형은 이런 강자에의 동경 심리에서 비롯된 유
행이었다. 서양에서 곰은 미련한 동물이 아니라, 힘세고 영리한 강자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곰 인형은 긴 다리와 털복숭이 같은 긴 털을 지닌 야만적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곰
인형 유행은 독일의 스테이프(Steiff)사가 선도했다. 스테이프사는 1902년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형태의 곰 인형을 대량 생산했으며, 1905년 당시 코끼리 인형의 트레이드 마크였
던 동그란 검은색 단추 눈을 곰 인형에 그대로 채택하였다. 이것이 곰 인형 유행에 더욱
불을 당겼고 이후 곰 인형의 표준이 되었다. 독일의 빙·허먼, 미국의 아이디얼·콜럼비아,
영국의 채드밸리·파넬·딘스 등등 다른 회사에서 생산된 많은 곰 인형들이 스테이프의 특
징을 그대로 모방해 만들어졌다.
이런 형태의 곰 인형을 미국에서는 '테디 베어'(Teddy Bears)라 불렀다. '테디'는 시어
도어 루즈벨트(1858∼1919)의 애칭으로, 테디 베어의 유행은 1902년의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
되었다. 테디는 1902년 11월 미시시피 주를 방문했을 때 초청자의 새끼곰 사냥권유를 거부
하였는데, 이것을 <워싱턴 스타> 지의 시사 만화가가 풍자 만평으로 신문에 실었다. 대부분
의 사람이 무심코 보아 넘겼던 그 만평을, 브루클린의 장난감 가게 주인만은 간과하지 않았
다. 그는 테디의 곰 사랑 정신에 감동해 당시 가게에 막 진열된 곰인형에 '테디 베어'라는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테디 베어는 반응이 좋았으며, 이후 테디의 인기가 급
격히 높아져 감에 따라 그에 비례해 테디 베어 또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테디는 미국의
제26대 대통령(1901∼1909)으로 재임하면서 강력한 지도자력으로 미국을 이끌었는데, 그의
판단 잣대는 '전체 국민의 이익'이었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정책을 펴
나갔다. 철도, 석유, 고무, 소맥분 등 전 분야에 걸쳐 독과점의 폐해를 낳았던 43개 독점 기
업을 제소하여 '트러스트 파괴자'자는 별명을 얻었으며, 국유림화를 강력히 추진해 석유,
석탄 산지와 공원, 수력 발전 용지까지 후세를 위하여 보존하려 했다. 그는 앞서 재임한 3
명의 대통령이 추진한 것보다 빠른 기간에 넓은 지역의 환경을 보호하였다. 다시 말해, 테
디는 강력한 국력을 위해 노력했고, 자연 환경 보호에 앞장섰던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에는
곰이 많았기에 그의 정책 추진은 곰 인형 유행과 연결되었다. 국민을 위한 봉사가 국민의
사랑으로 이어져 친밀감 있는 인형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며, 인형의 모습 또한 한
결 일반적으로 브라운색을 띤 앉은뱅이 곰 인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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