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국토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접점에 해당하는 탓에 11세기 터키 민족이 도래하기 이전부
터 여러 민족이 모여 살며 문화적 접촉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많은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던 곳이다. 13
세기 말엽 중앙 아시아로부터 이주해 온 투르크족이 오스만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터키란 국명을 얻게
되었다. 투르크라는 말은 '나쁜 사람', '도둑' 따위의 뜻을 가진 낱말로 터키인을 가리켰다. 하지만 18세기
말엽 터키 문화에 대해 유럽인들이 호감을 느껴 일시적으로 '터키풍'이 유행한 적이 있다. 터키 열풍의
계기는 튤립이었다. 터키인은 튤립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민족이며, 그 역사도 오래 되었다. 터키 사람들
은 히야신스, 카네이션, 장미 등 많은 꽃을 사랑했지만 튤립에 대한 애정은 예로부터 각별했다. 그래서
튤립은 13세기 이후 문학과 미술의 주요 모티브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16세기에는 회화, 직물, 도기, 그
리고 모스크 및 궁전 등을 장식하는 타일에 여러 가지 색상의 다양한 튤립이 그려져 운치를 더했다. 또
한 이 무렵 튤립이 네덜란드에 전해져서 오늘날 네덜란드를 튤립의 왕국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
다. 튤립 재배는 아흐메드 3세 시대인 18세기 초 절정에 달했다. 아흐메드 3세는 튤립을 무척이나 좋아
해 이 꽃을 기리는 많은 행사를 열었으며, 궁전 정원에서는 밤낮으로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 때문에
이 시대(1718∼1730)를 '라레 데브리'(튤립 시대)라 부르는데, 이런 문화적 흥성함이 유럽에 알려져 터키
인을 '나쁜 사람들'이 아닌 '문화 선진국민'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고, 한때나마 터키풍을 모방
하는 유행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사연을 안고 18세기 말엽 유럽인들은 터키식 옷을 이국적인 복장으
로 즐겨 입었으며, 초상화에 터키풍 의상이 종종 그려지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터키풍 음악도 선호했다.
18세기 말엽 북과 종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심벌즈를 조합한 터키 정예 왕실의 군대 음악이 유럽에 잠시
유행하였던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터키풍으로'라는 뜻인 '알라 투르카' 장르의 대표적인 예로는
하이든의 교향곡 '군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A장조 '터키 행진곡' 등이 있으며, 베토벤도 '아테네
의 폐허'라는 극음악에서 터키풍 음악을 시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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