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화장실은 시냇물이었다. 배설물의 독한 냄새를 없애기에는 흐르는 물이 안성마춤
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이 있는 근처에 자리를 잡고 일
을 보았다. 옛날 우리 나라 서울의 경우, 청계천이 곧 공중 변소였으며 아침만 되면 많은
남정네들이 냇가에서 대변을 보았다.
이집트인과 크레타인 그리고 로마인들도 냇가를 중심으로 하수구와 오물 폐기 방법을 발전
시켜 왔으며, 중세 수도원들은 흐르는 냇물 위에 '리어도터'라 불렀던 변소를 만들었다. 그
러나 벌판이 드넓은 유럽에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17세기까지도 화장실이 없어서 왕
후, 귀족들조차 으슥한 곳에서 대소변을 봤다. 중세 유럽 도시의 변기는 오물통 위에 설치
됐고, 그 속의 인분뇨나 폐기물은 비료로 사용되었다.
화려함을 자랑했던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궁전에서 생활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무 그늘을 찾아 다니며 볼일을 보았다. 18세기에 들어서야 귀족 집안에서 구멍
뚫린 의자가 변기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볼일이 끝나면 그것을 거리에 던져 버리곤
했다. 때문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이층을 쳐다보고 걸어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오물을
머리에 뒤집어쓰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변기나 요강이 남이 볼 수 없도록 벽
장이나 가구 속에 숨기는 일이 유행하기도 했다. 변기가 화장실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은 19
세기 말엽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면서부터이다. 한편 19세기 말엽 영국 중상류층 가정의 침
실에는 대개 화장실(powder closet)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여인들은 이 방에서 가발에 녹말
가루나 밀가루를 뿌려 멋을 냈다. 당시 색색의 가발이 대유행이었기 때문이다. 가루를 뿌린
뒤에는 손을 씻어야 했으므로 씻을 물을 비치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화장실이 변소를 의
미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화장실이란 말은 '화장하는 방'이라는 뜻의 영어 'powder
closet'를 직역한 방이다. 1990년대 들어 우리 나라에서는 가족용 화장실 외에 안방에 따
로 화장실을 마련한 침실 구조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19세기 말엽 영국의 화장실 유
행과 목적만 다를 뿐 경제적 여유에서 비롯된 특별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게 다르
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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