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상자 크기의 카메라 하나, 방갈로 한 채를 너끈히 받치고도 남을 만큼 튼튼하고
무거운 삼각대 하나, 커다란 감광판 케이스 하나, 사진 현상을 위한 암실 텐트 하나, 질산염
현상 정착액 하나, 물통 하나.' 이 준비물들은 19세기의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감내
해야 했던 수고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단순한 사진이건 남북 전쟁 당시의 귀중한 사진이건 19세기의 생활을 담은 모든 사진들은
이런 방법으로 찍은 것들이다. 사진을 처음으로 찍은 사람은 프랑스인 니세포르 니에프스
이다. 그는 1826년 백랍판을 끼운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자연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성공적인 사진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카메라를 발명한 사람은 미국
의 조지 이스트먼이다. 24살의 조지 이스트먼은 은행 업무에서 해방되어 멋진 해변이 있
는 곳으로 첫 휴가를 떠나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무거운 장비를 끌고 다닐 생각을 하니 암
담했고, 결코 기억에 남을 휴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트먼은 휴가를 취소하고
부엌 한 구석에 공작실을 차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공작실에서 늦게까지 연
구에 몰두했다. 그러기를 3년여, 그는 마침내 좀더 현상에 민감한 새로운 감광액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카메라의 크기를 줄여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스트먼은 그가
발명한 카메라에 자기가 좋아하는 철자 'K'로 시작하는 '코닥'(Kodak)이라는 상표명을 붙
였다. 1888년 6월 이스트먼은 자신이 만든 획기적인 사진기를 선보였고, 필름이 장착된 사진
기의 가격은 대당 25달러로 책정했다. 하지만 카메라 사용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이 쉽게
가시지 않아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심 끝에 이스트먼은 '단추(셔터)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는 광고 문안을 직접 작성하여 사진기마다 부착했
다. 소비자가 사진을 다 찍은 뒤 카메라를 회사에 보내면 회사에서 필름을 꺼내 현상한 뒤
다시 새 필름을 채워 사진과 함께 되돌려 주는 영업 방법을 간명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스
트먼은 같은 내용을 신문 광고로도 알렸으며, 이 같은 판촉술에 힘입어 사진은 마침내 대중
화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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