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하면 미국에서 탄생한 '블루 진' 바지를 연상하지만, 청바지의 원조를 논하자면
우리 나라가 단연 앞선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진 바지는 아니지만, 청색 작업복은 우리 나
라에도 있었다. 구한말까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흰색 또는 회색 옷을 입은 반면 군
대 또는 일꾼, 사냥꾼과 운반인의 피복으로 사용되는 천은 청색이었다. 청색이 흰색이나 회
색보다 때가 덜 타므로, 활동량이 많은 노동자들이 청색 바지를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
상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청색=천한 색'이라는 차별 의식이 더 크게 작용했다. 옛날에는
파란 옷을 뜻하는 청의나 청포는 신분이 낮은 서민이나 종을 뜻하였다. 성균관이나 홍문관
등에서 성적이 부진하여 퇴학시킬 때, 하얀 도포를 벗기고 파란 옷을 입혀 내쫓았던 '청
의출사'는 파란색에 대한 극단적 차별 의식을 보여준다.
청바지는 19세기 중엽 리바이 스트라우스라는 젊은이가 최초로 만들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때 골드 러시의 물결에 휩쓸려 캘리포니아 금광촌으로 달려온 이탈리아 출신의 재단사
리바이는 광부들의 옷이 빨리 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질기고 단단한 진(Jeans)으로 어
느 광부를 위해 청바지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다른 광부들에게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
다. 그 바지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185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선 젊은 리바이의 '허리까지
오는 작업복'이 매우 질기고 튼튼하다고 소문났기에, 곧 리바이의 바지는 캘리포니아의 금
광, 버지니아의 은광, 그 밖에 철도 작업장의 노동자들이 다투어 사 입었다. 그런데 리바이
가 바지에 파란 물을 들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염료는 인디고(Indigo:남색, 쪽빛)라는
콩과 식물에서 추출한 것으로 방울뱀이 싫어하는 색이었다. 즉 파란색 바지는 뱀에게 물리
지 않는다는 실용성을 감안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제노아는 '진' 옷감의 주
생산지였으며, 프랑스 직공들이 제노아를 진이라고 불렀기에, 리바이는 자신의 바지를 '블루
진'이라고 명명했다. 즉 진이라는 이름은 제노아라는 도시 이름에 와전되고 변하여 붙여진
것이다.
리바이는 그 외에도 청바지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해서 인기를 끌었다. 바지 호주머니
에 쇠붙이를 붙인 것은 호주머니에 넣는 무거운 광석 때문에 옷이 쉽게 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초기에는 잘 터지는 사타구니 부위에도 얄팍한 쇠붙이를 붙였는데 창안자인 리
바이 스트라우스가 모닥불을 쬐고 있을 때 열기가 쇠붙이에 전도되어 중요한 부분에 화상
을 입고는 떼어 버렸다 한다. 1860년대 초엽 스트라우스는 바지 재료를 부드러운 데님으로
교체했다. 데님을 바지 재료로 사용하면서 스트라우스는 데님을 청색으로 염색하면 옷감에
때가 잘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계속 바지를 청색으로 염색했으며 '인디
고 컬러'(쪽물 염색)라고 표시하여 블루 지의 상징성을 이어 나갔다. 오늘날의 데님 청바지
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청바지는 미국 카우보이가 입는 서부 의상의 표준 품목으로까지
발전했다. 리바이는 금방 떼돈을 벌었으며 더욱 적극적으로 광고를 하게 시작했다. 당시 광
고의 주된 포인트는 '질기고 튼튼하다'는 점이었는데 그런 장점을 증명하기 위해 말 두 마
리가 양쪽에서 청바지를 잡아당기는 실험을 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리바이 상표가 된 말 두
마리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청바지는 20세기 중엽 또다시 사람들의 색다른 눈길을 끌게 되었다. <에덴의 동쪽>, <이
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 등의 주인공인 제임스 딘과 개성파 배우 말론 브랜도, 열정적
무대 매너를 뽐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등 반체제적이고 반항적인 영웅들이 청바지를 즐
겨 입는 것이다. 그런데다 196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히피'들이 반체제 운동의 상징으로 청
바지를 적극 착용함에 따라 청바지는 반체제주의자들의 상징적 복장이 되기도 했다. 청바지
는 오늘날 남녀를 불문하고 입는 간편한 복장 또는 유니섹스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청바지
가 유니섹스의 상징이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히피족들의 남녀 평등 문
화에 기인한다. 히피족들이 남녀 평등의 상징으로 청바지를 함께 착용함에 따라 청바지는
유니섹스의 복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둘째, 뒷주머니의 포인트에 있다. 청바지
디자인에 있어서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인, 뒷주머니는 엉덩이를 작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여성이 즐겨 입는 치마의 디자인은 엉덩이를 커 보이게 하여 여성의 자태를 강조한
반면 바지는 엉덩이를 작게 보이도록 하는데, 바지에 뒷주머니를 장식하면 엉덩이가 더욱
작게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뒷주머니 달린 청바지는 자연스럽게 유니섹스 모드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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