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은 최초에 나무나 돌, 흙으로 만들어졌다. 얼마 안 있어 부장품으로 묘에 넣어지게
되었고, 중세에는 마법의 대상으로 여겨져 신앙상의 도구로 권력자의 소지물이 되었다. 14
세기경 얼굴이 조각되고 옷을 갖춰 입힌 최초의 인형이 만들어졌고, 18세기에 이르러 비로
소 인형에 의한 복식 유행이 생겼다.
18세기 중엽 런던과 파리에서는 긴 코트 드레스를 입은 패션 인형이 붐을 이루었으며, 인
형의 의상은 곧 16∼18세 명문가 귀족 여성의 유행 의복이 되기 일쑤였다. 19세기에는 인형
이 유럽의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었으며, 다양한 인형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8∼19세기 유럽 인형의 대부분은 먼저 패션 인형, 즉 유행복을 입힌 것이나
초상화의 역할을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장식물로서의 인형이 되었고, 부유한 집 처녀들의
유행복 모델을 거쳐 마지막에는 장난감이 된 것이다 19세기는 인형의 황금 시대였다. 19세
기 초엽 평형추를 이용해 눈을 감았다 떴다 할 수 있는 '잠자는 인형'이 출현했고, 혼자서
걸어갈 수 있는 반자동 인형도 개발되었다. 1827년 음악가 베토벤의 친구이며 메트로놈을
고안했던 독일의 요한 네포묵이라는 사람은 꽉 잡으면 '파파'(아빠)나 '마마'(엄마) 하고 소
리 내는 인형의 음성 상자 특허를 획득해서 화제를 낳았으며, 1868년에는 관절이 구부러지
는 '포옹하는 인형'이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포옹하는 인형'이란 관절의 움직임이 자유
롭기에 사람을 껴안 듯 품에 안고 다니기 좋다는 의미에서 생긴 별명이었으며, 더불어 이
인형은 앉는 것도 가능했기에 이전의 '서 있는 인형'을 밀어 내고 유행 인형의 정상을 차
지하게 되었다. 이 무렵 인형의 얼굴색이 사람 피부와 비슷하게 표현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었다. 도기로 구워 낸 따뜻한 피부색은 표정이 살아 있는 듯 '인간미'를 물
씬 풍겼고, 이것이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가지각색의 표정이 인형
얼굴에 표현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고테가 만든 인형은 조금 내려간 것처럼 보이는 눈과
큰 눈동자가 특징이었고, 독일의 스타이넬이 만든 인형은 웃거나 울거나 하는 교묘한 동작
이 돋보였으며, 이탈리아의 렌치가 만든 인형은 다소 우아해 보이는 귀부인형이 특색이었다.
그런가하면 근심 띤 얼굴, 혹은 흐릿한 눈동자와 금발 등의 특징을 지닌 인형도 등장했다.
19세기 인형 유행의 중심지는 파리였는데, 그것은 '패션'을 중시하는 정서와 연결되어 있
었다. 파리는 일찍부터 인형을 대량으로 생산한 도시였으며 주로 패션 인형을 만들어 명성
을 얻었다. 특히 1855년 창립된 쥐모가의 인형은 목을 회전시킬 수 있는데다 화려하고 정
교한 의상으로 한껏 여성적 아름다움을 뽐낸 것으로 유명했다. 쥐모 인형은 19세기 인형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막강한 판매력을 보였고,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지에 공
급되었다. 따라서 19세기 말엽까지 귀부인과 여자 아이들이 함께 인형 가게를 찾는 모습은
유럽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이렇게 패션의 선도자 노릇을 했던 인형은 20세기 들어 미국
에서 '아기 인형'이 만들어지면서 이제 장난감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여자 아
이들이 어린 시절 소꿉친구로 생활하거나, 혹은 민속 의상을 입은 채 관광 상품으로 팔리
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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