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근, 현대 비밀

신의 약초, 아편

by Frais 2020. 8. 25.

  인류가 마약에 빠져 든 것은 원래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수단에서 출발했다. 마약을 뜻하는 영
어 '나르코틱스'란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무감각', '마비'를 뜻한다. 그것이  고통을 덜어 준다 해서 의사
들이 환자에게 복용하게 했다. 그리스인들은 양귀비꽃에서 아편을 뽑아  내 진통제로 썼다. '아편'이라는 
말은 양귀비의 다른 말인 '아부용'과 꽃잎 '편'의 합성어이며, 아편을 뜻하는  영어 'opium'은 '즙'을 의미
하는 그리스어 'opion'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아편을 환제로 만들거나  음료에 타서 복용했으며,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마리화나를 피웠다. 1세기경 디오스코리데스는  수 세기 동안 약물학의 교재가 된 
그의 저서 <약의 재료>에서 아편에 대해 썼다.  동양에서는 한나라 말기의 전설적 의사 화타가 마비탕
을 병자에게 마시게 하고 수술을 한  것이 마약 사용의 효시로 알려졌다. 내과,  부인과, 소아과, 침구과 
등에 정통했던 화타는 특히 외과에 뛰어났으며, 마비탕이라는 마취제를 이용한 전신 마취법을 창안하여 
복강 종양 절제 수술과 위장 절제 봉합 수술 등의 시행에 성공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7세기부터 아편 
제조를 목적으로 양귀비 재배가 시작됐는데, 17세기 중반에는 중국에서 사회 문제화되기도 했으며, 19세
기 중엽에는 서구 열강과 아편 전쟁을 치르게까지 되었다.
  19세기에는 마약의 세기였다. 아편 팅크제의 공인된 의학 약어가 GOM, 즉 '신의 약'일 정도였다. 아편
은 통증을 없애 주고, 수면을 유도하고, 미친  사람을 진정시켰다. 1803년 독일의 젊은 약리학자인 세르
튀르너가 최초로 아편의 약리학적 활성  성분 중에서 모르핀을 분리했다. 그는  이 약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인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따서 모르핀이라고 명명했다. 피하 주사기의 발명으로 모르핀은 
주사로 투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약효가 뛰어나 의약품으로 그 유용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약물 남용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아편 남용 문제는 아편을 피우는 중국인 근로
자들이 유입되고, 남북 전쟁 중에 부상당한 군인들이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모르핀을 널리 사용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군인들 사이에 모르핀 중독이 하도 많아서 아편 중독을 '군인병'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진정 시럽'이라는 상품으로 약국에서 마약을 공공연히 판매했고, 그 무렵 파리
에서는 문인들 사이에 대마초 흡연이 유행해 빅토르 위고,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이 환각 상태에서 집필
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중독되지는 않았다. 대마초가 그들의  문학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곧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국도 아편의 안전 지대는 아니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렸던 상황에서 아편 
상용자가 늘어 나고 가난한 노동자들 사이에는 식사 대신 아편으로 고통을  잊으려 하는 경우가 속출했
다. 엥겔스는 이런 문제에 대해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지적하길, '아이들에게 독한 술과 아편
까지 주는 습관이 급속히 늘어 나고 있다.  (...)아이들이 보채지 않게 하려고 부인 노동자가 아이들에게 
마취제를 사용한다'고 한탄하였다. 마약 유행이 얼마나 광범위했던지, <폭풍의 언덕>을 쓴 영국 작가 에
밀리 브론테(1818∼1848)에게는 세 자매(모두 작가로 유명) 외에 원래 남자 형제가  있었으나 아편에 중
독되어 객사해 버릴 정도였다. 하여 1894년  영국 의회 내에 '왕립아편문제위원회'가 만들어졌으나 상황
이 쉽게 호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어디보다 마약의  폐해가 심각했던 곳은 중국이었다.  19세기 중엽 중국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편을 피워 댔다. 아편 확산은  여러 가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빈민층의  아편 흡식은 농촌 
경제의 파탄과 구매력 상실을 가져왔고, 관료와 병사의 아편 흡식은  국가 기능을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 주는 황홀한 아편의 세계에 젖어 들어 하루하루를 보냈으며, 
영국은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중국으로부터의 차 수입이 두드러지게 늘어나
고 동시에 그 대가로 은의 수출이 증대하자 꾀를 냈는데, 그것이 아편 재배였다. 영국은 인도 벵골 지방
에서 양귀비를 재배한 다음 거기에서 만든 아편으로 중국  차 수입 대금을 치렀다. 이 계획이 성공함에 
따라 중국으로의 아편 유입이 급증, 1839년에는 60kg 기준 40만 상자가 밀수되었다. 한 사람의 흡입량을 
1.1,kg으로 가정하면 5백만 명 이상, 적어도 백 명 당 한 명은 흡입자인 셈이었다. 밀수로 거래되는 아편
은 1년에 수천 톤씩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에 선적되었다. 영국과 포르투칼의 상인들이 큰 이익을 
노리고 그 일을 했다. 중국 정부에서는 아편을 금지시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들
이 필사적으로 아편을 찾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도덕적·보건적  위기의 측면뿐 아니라 아편 구입을 위
해 은이 국외에 대량으로 유출되었기  때문에 아편 밀수 조사를  강화했고, 영국은 무력으로 자유 무역 
체제를 구축하려 했기 때문에 급기야 아편 전쟁(1839∼1842)이 일어났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아편의 유입은 더욱 심해졌고, '양약'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정식 무역품으로 자리잡기
에 이르렀다. 그 수입량은 1880년대에 최고조에 달했으며, 아편 수입세는 국고의 중요 재원으로 청일 전
쟁의 배상금 지불에 충당되었다.
  오늘날 마약 문제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 사회가  마약 문제를 심각하게 의식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었다. 1860년대부터 철로 건설을 위해 대거 이주한 중국인들의 흡연으로 아편 중
독의 폐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차츰 번져  세기말까지는 웬만한 대도시에 모두 아편굴이 생겨 
중국인 외에도 중독자가 늘어 나게 되었다. 엉뚱한 방향에서도 아편 중독 문제가 불거졌다. 중상류층 중
독자가 대거 나타난 것이다. 무책임한  의사들이 손쉬운 처방으로 아편을 많이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중독된 피해자가 많았다. 특히 부인병의 처방에 많이 쓰여 주부들의 중독이 심했다. 1914년에는 첫 마약 
금지법이 제정되었으나, 음성화된 마약 시장은 지하에서 계속 자라나며 범죄성을 키워 갔다. 1920년대에 
마피아가 개입하면서부터 마약 시장의 범죄성은 본격화되었다. '범죄의 천재'로 불린 아놀드 로스타인이 
마약 시장을 조직하면서 마약은 암흑가의 최대 사업이 된 것이다. 미국 정부도 은연중 마약을 활용하였
다. CIA가 그 역할을 담당했는데,  흑인 사회에서는 아직도 마약과 에이즈  등이 흑인들을 노예 상태로 
예속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져 왔다는 설이 남아  있다. 흑인들은 1920∼1930년대에 범죄 조직이 엄
청난 양의 마약을 뉴욕의 할렘 가에 유포했으나 당국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흑인
들은 1980년대 CIA가 당시 캘리포니아 일대  흑인들 사이에서 붐을 이룬 '크랙'(정제  코카인)의 밀매를 
지원한 사건을 두고 '흑인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국가 권력이 개입한 조직적 범죄'라고 생각한다. 실제
로 CIA는 여러 지역에서 자기네가 지원하는 집단의 경비를 조달하는 방법으로 마약 재배·밀수를 눈감
아 주거나 심지어 도와 주기까지 했다. CIA는 1950년대 최대의 마약 루트인 '프렌치 커넥션'의 코르시카 
갱단을 우익 활동 지원의 대가로 보호해 줬다. CIA가 라오스의 몽족과 미얀마 고원 지대의 골든 트라이
앵글을 지원한 대가는 주월 미군의 대거 아편  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아프간 게릴라들
이 파키스탄에 주둔하도록 미국이 주선해 주면서  아편 재배를 보호해 줬던 탓에  파키스탄인이 갑자기 
마약에 노출돼 수백만 명의 중독자가 생기기도 했다. CIA가 흑인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마피아의 아편 
거래를 묵인했는지의 진실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 하겠다.

'근, 현대 비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우 사냥  (0) 2020.08.25
스웨덴의 명물  (0) 2020.08.25
한복에 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0) 2020.08.25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디로 수학 여행을 갔나  (0) 2020.08.25
김치 맛의 비밀  (0) 2020.08.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