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하고 주문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오해다.
'커피'가 아닌 '카페'로 불리는 곳이 의외로 많을 뿐만 아니라 나라마다 즐기는 커피의 종류가 다르기 때
문이다. 비엔나 커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만 하더라도 '카페'를 주문하면 '비엔나 커피'를 갖다 주는 일이
흔하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영국, 미국 사람들은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하며, 좋아하는 커피 맛
도 제각각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는 카페오레와 크로와상이 없으면 결코 아침이 오지 않는
다'란 얘기가 있을 만큼 카페오레는 프랑스인에게 인기가 높다. 카페오레는 '우유를 탄 커피'란 뜻인데,
같은 분량의 진한 커피와 우유를 따로 데운 다음 큼직한 잔에다 부어 섞어 마신다. 이탈리아는 '에스프
레소'와 '카푸치노'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카페'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를 준다. 독하고 끈적끈적한
에스프레소의 맛은 무척 강렬해서 순한 맛을 좋아하는 이는 인상을 찌푸리기 쉽다. 에스프레소는 이탈
리아어로 '급행'을 뜻하는데, 주문받는 즉시 내 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실 때에도 카운터에
서서 단숨에 마셔 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색다른 커피인 '카푸치노'는 검은 커피, 흰 거품이 카
푸친 종파의 수도승복을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터키에선 아침 식사를 '커피 마시기 전'이라
고 표현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한다. 여성들의 결혼 조건으로 '커피의 거품을 잘 내는 솜씨'가 꼽힐 정도
다. 터키에서도 '카페'라고 부르는 커피는 주문할 때 '세켈리'(설탕 넣은 것), '사데'(설탕 없는 것)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한 잔씩 주문대로 끓여 나오는 이 곳 커피는 물 끓이기 시작할 때 아예 설탕을 넣기
때문이다. 쓴 맛이 강하기 때문에 터키식 커피를 먹은 후엔 입가심으로 냉수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
리스에서도 터키와 비슷한 방법으로 끓이지만 이름은 '카페 엘레니코'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카페'가 아
닌 '커피'로 통한다. 흔히 '아메리칸 스타일' 하면 '미국인들이 즐기는 양 많은 순한 커피'를 말하는데, 미
국뿐만 아니라 영국인들도 아침이면 빵과 함께 부드러운 커피를 '배불리' 마신다. '커피광'의 시각에서 보
면 아메리칸 스타일은 무미건조한 맛이지만, 공복에 마시면 한결 부드럽다.
커피는 1천 년 전 에디오피아에서 처음 흥분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한 염소몰이꾼이 커피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는 염소들이 어느 야생 나무의 붉은 열매를 따 먹은 후 흥분해서 뒷발질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이상하게 여겨 몇 개 따서 맛을 보았다. 맛이 독특했으므로 그는 기도 중에 졸음이 와서
못 견디겠다는 어느 수도승에게 건네 주었고, 커피의 자극성은 수도승의 수양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
다. 커피나무는 남아라비아로 전파되었다가 15세기경부터 재배되었다. 커피는 특히 이슬람교도들의 긴
종교 의식에서 대중적인 음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통 사제들은 그것이 사람을 도취 시킨다며 코란
에 의거해 이를 금지시켰으나, 엄한 벌칙에도 불구하고 커피 음용은 아라비아와 그 주변국들로 급속히
퍼졌다. 커피가 유럽에 퍼지게 된 것은 1628년 터키 군대의 패전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와 유럽의 패권을 다툰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그들을 누르기 위해 은밀하게 터키와 손을 잡았으며,
그들로 하여금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를 공격하도록 부추겼다. 터키 군대는 빈을 향해 진격하였으
나 패배하였다. 승리한 오스트리아 군대는 패주한 터키 군대의 막사에서 자루에 든 초록빛 콩을 발견했
다. 그것을 불에 볶아서 가루로 만든 뒤 더운 물을 붓자 힘이 용솟음치는 멋진 음료가 만들어졌다. 터키
군대를 물리친 뒤, 빈에서는 유럽 최초로 카페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그 음료의 맛은 빈 사람들에게뿐
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 특히 영국인과 프랑스인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커피는 이제 유럽인들의 입맛
을 사로잡는 음료가 되었고, 18세기부터는 상류 사회의 유행 음료가 되었다. 커피의 유행은 재배지 확대
를 불러 일으켰다. 17세기 말까지 세계의 커피 공급은 전적으로 남아라비아의 예멘 지방에 의존했다. 그
러나 음료의 대중성이 높아짐에 따라 커피나무 재배는 여러 나라로 급속히 전파되었고, 18세기 들어 아
이티, 브라질, 자메이카, 콜롬비아, 멕시코 등으로 확산됨으로써 오늘날 남아메리카가 '커피 원료의 왕국'
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커피'를 프랑스어로 '카페'라 하는데, 프랑스어에서 차용한 카페는 커피라는 뜻의 터키어 'kahve'에서
유래한다. 즉 초기의 카페는 '커피 파는 집'을 뜻했다. 세계 최초의 카페는 1554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차이하나' 라는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으며, 이 아이디어는 17세기경 유럽으로 흘러들어
가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모임의 장소이자 데이트 장소로 선보이게 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2백
년 동안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번성한 유럽의 유명한 카페들은 경쟁적으로 휘그당과 토리당에서 발행
하는 신문들을 마련해 놓았다. 따라서 당시 카페는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상인들의 집합지이
기도 했다. 카페는 처음엔 커피만을 팔았으나 차차 가벼운 식사도 팔기 시작했다. 커피와 커피 음료가
유럽에 도입되자 술을 마시지 않고도 사교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교 형태에 있어 대단한
변화를 유발했다. 술기운을 빌어 감상적이거나 에로틱한 대화를 나누던 사교 문화가 맑은 정신 상태에
서의 이성적 대화 문화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인들이 대화와 토론을 좋아하게 된 시대 배
경에는 바로 커피가 놓여 있었다. 역사가 미슐레는 커피의 유행이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냈고, 사람들의
기질까지 변화시켰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프랑스 사람이 이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하게 된 것도
드문 일이다.(...) 커피가 유행한 결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변화됐다. 그것은 담배의 게으
름성으로부터 신경이 약화되던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는 정신을 흔
들어 놓는 애매하고도 둔한 시의 자취를 감추게 함으로써 진리의 빛을 전면으로 밀어 올렸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는 1672년에 생긴 프로코프란 곳으로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가 즐겨 찾았던 곳이
다. 카페는 1750년 무렵 6백여 군데나 있었다. 보험, 선박, 주식, 상품 거래, 심지어 노예 매매까지도 카
페에서 이루어졌다. 문필가와 예술인들은 단골 카페에서 동인들과 함께 공연을 하거나 시낭송회를 가졌
다. 또한 19세기에 일간 신문과 가정 우편함이 등장할 때까지 카페는 소포와 편지를 배달하는 비공식적
인 우편 업무도 수행했다. 18세기의 카페는 지식인과 예술인들에게 지적 교류를 위한 최상의 장소였으
며, 프랑스 혁명 직전에는 거사를 위한 모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프랑스의 사상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는 '카페 드 플로어'에서 만나 실존주의를 구상하기도 했다. 한편, 오늘날 영국에서 말하는 '카페'란 가벼
운 식사를 겸할 수 있는 곳으로 레스토랑보다 간편한 식당을 뜻하는데, 이것이 동양에 전해지면서 여자
종업원의 서비스가 따르는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여급이 있는 술집으로 변하고 대신
커피 등 차를 파는 집은 다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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