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시 상품은 1910년에 설립된 카드 생산업체 홀마크(Hallmark)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것은 오늘날 성공한 대부분의 팬시 산업체가 축하 카드 사업을 병행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
하지 않다. 카드는 15세기경 독일에서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고자 인쇄하여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1870년대의 우편 제도 발달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 대량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남북 전쟁시 가족 및 연인들 사이의 소식 전달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카드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연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홀마
크였다. 홀마크의 창립자인 J.C. 홀(Hall)은 카드 산업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산업이라고
규정하고 1년에 한 번 우정과 애정을 확인하고 기쁨을 나누자는 의도에서 '생일에 카드를
보내자'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홀은 미국 사람들이 유럽인들에 비해 덜 형식적인 기질을 갖
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명절만이 아니라 일년 내내 친구나 친지가 무슨 일을 당했을
경우 때를 가리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일상의 카드'(인사장)를 고안했다. 1916년 마침내 그
는 자신의 첫 '일상의 카드' 디자인을 선보였다. 우정을 주제로 한 그 카드에는 에드가 게스
트의 '당신이 나를 생각하듯이 나 역시 당신을 생각하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
가 인용되어 있었다. 간결한 내용의 이 문구는 많은 사람들이 표현하고 싶어하던 감정을
자극했으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 카드, 발렌타인 데이 카드
가 고작이었던 당시에 홀의 캠페인은 주효했고, 이에 고무된 홀 형제는 생일 및 기념일 통
지, 건간 회복 기원 등을 주제로 한 카드 등을 속속 내놓았다. 때마침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은 홀 형제의 사업에 다시 없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멀리 외국의 전장에 나가 있던
병사들에게 미국의 여인들이 보내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라는 주제의 위문 카드('missing
you' card)가 폭발적으로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의 원인은 시운에만 있지는
않았다. 홀 형제는 그때까지 성행하고 있던 봉투 안에 넣는 화려한 카드 대신 간편한 카
드를 개발함으로써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아이디어를 보여 주었다. 전쟁터에 있는 병
사가 어느 세월에 봉투를 뜯을 싶은 철저한 사용자 중심의 마인드가 낳은 히트작이었던 것
이다. 1920년대 초반이 되자 홀 형제의 카드는 미국 전역에서 널리 유행했으며, 이로 인해
팬시 상품이 새로운 유망 사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팬시 상품이 우리 나라에 유행의 조
짐을 보인 것은 '선물의 집'이라는 상점이 서울 거리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던 1976년경부터
이다. 일본 팬시업체인 산리오(Sanrio) 가맹점이었던 '크리아트 선물의 집' 상품은 현재 팬
시 상품에 비하면 다소 조잡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크리아트의 물건들에
서 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묘한 매력을 느꼈다. "아, 이렇게 예쁜 물건들도 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새롭고 예쁜 것에 대한 욕구에 눈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1980년대 들어 카드업
체인 바른손과 전문 팬시업체인 아트박스가 팬시 산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의 팬시 시장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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