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무난히 자랑스러운 위대한 조국
"짐이 곧 국가니라!" 이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일갈이다, 이 한마디 속에는 유럽최초로 절대왕
정을 수립했고, 강력한 제국을 통치했던 프랑스인 들의 국가관. 세계관이 함축되어 있다. 아프리
카 대륙에서부터 인도차이나, 멀리는 타히티 섬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였고, 영
국과 더불어 세계 권력구도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던 나라 프랑스. 프랑스 국민들은 이러한
자신의 조국에 대해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웃 나라 스페인, 이탈리아, 독
일의 국민들이 뿌리깊은 지역주의에 얽매여 국가라는 존재가 어찌 보면 추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
는 반면, 프랑스 국민들에게 프랑스는 무한히 자랑스러운 '위대한 조국'이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정도가 지나쳐, 어떤 면에서는 국수주의라 불러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그들 이외의 타민족을 프
랑스 인이 아니라고 해서 경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인이 아닌 것은 못내 유감스러운 일이
며, 그래서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과거 수백 년 동안 유럽의 최강자로 거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고(많은 경우 상처뿐인 영광이었지만) 스페인, 이탈리아를 굴복시켰으며, 부르봉 왕가의 숙
적인 함부르크 왕가를 궤멸시킨 찬란한 역사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라는 '위대한' 정복자 상이
프랑스 인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프랑스 인들의 국가관은 힘(la force),
프랑스(la France), 위대한 국가(la grand nation)라는 세단 어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그들의
나라 프랑스는 곧 영광과 명예의 상징이며, 자신의 신명을 다 바쳐 충성해야 할 대상이다. 이처
럼 프랑스 인들은 유럽대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애국자들이다. 러시아인들의 조국 사랑도 뜨겁
기 그지없지만 그 영욕으로 점철된 비애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어떤 합리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대지(大地)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어머니 러시아'란 말
을 즐겨 쓴다. 한편 미국인들의 대단한 애국심은 20세기 세계 최강대국을 건설한 긍지와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온갖 민족의 인종 짜깁기로 이루어진 나라인 만큼 국민의 결속을 꾀하기 위하
여 국가에서 인위적으로 '위대한 아메리카' 정신을 부추긴 효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랑스 인들
의 애국심은, 그들이 보기엔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역사적 업적을 근거로 하고 있
으며, 국가의 노력보다는 국민의 자발적인 애국심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사실 프랑스도 다른 나
라와 마찬가지로 다민족 국가, 다문 화 사회이다. 라틴족, 게르만족, 켈트족 등 수많은 민족이 융
화되어 있으며, 지역에 따라 민족적 특성이 두드러진 경향도 없지 않다. 예컨대 브루타뉴 지방,
카탈루냐 지방, 바스크 지방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카탈루냐 지방 같은 데서는 지금도 서울 간다
는 말이 파리가 아니라 바르셀로나(스페인)에 가는 것을 의미한다. 동구권 몰락 이후 전세계적으
로 민족문제가 크게 부각되어, 냉전시대엔 강압에 의해 뒤섞여 살아야 했던 여러 민족들이 보스
니아 내전, 아프리카의 르완다, 자이르 등의 투시 후두 분쟁처럼 분리운동으로 치닫고 잇다. 그
러나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프랑스로부터 분리해 나가겠다는 민족주의 운동은 일
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도 괜찮다. 그 이유는 개인이 국가에 봉사하여 프랑스의 발전을 꾀
하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프랑스인 임으로 해서 얻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민족을 미개민족으로 깔볼 수 잇는 역사와 문화의 힘을 국가로부터 얼마든지 제공받을 수 있어
세계 어딜 가나 '문화민족'으로 대접을 받고, 세계 제4위의 경제대국의 국민임을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존F.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를 묻지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라고 미국 국민에게 요구하엿다.
프랑스 국민의 경우는 자신이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전혀 생각하지도, 해본적도
없으되, 국가가 자신을 위해 '위대한 국가'로 남아 있는 한 영원히 프랑스 국민임을 후회하지 않
을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민족이다. '힘, 프랑스, 위대한 국가'를 외치는 프랑스인들 가운데, 국가
를 위
해 자신을 희생할 정신적 자세를 갖추고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
까. '강력한 국가' 프랑스인 만큼, 프랑스 인들은 강력한 권력을 용납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시민대혁명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신을 통치하는 강력한 권력을 용인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 대통령은 제왕 못지 않은 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임기도 무
려 7년(!)이나 된다. 이 7년 동안 프랑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태양왕 루이 14세의 재현을 용
납하고 있는 것일까... 전 유럽에서 프랑스처럼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 게다가 7년이란 긴
임기를 보장받은 최고 지도자는 찾아볼 수 없다. 너무 큰 권력을 믿고 의회를 해산시켰다가 오
히려 총선 에서 야당에 패배, 동거정부란 자충수를 둔 자크 쉬락 대통령의 실수도 거대권력의 오
만이 빚은 실수였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
프랑스 인들이 즐겨 쓰는 말 가운데 '주 멍 푸'(je m' en fous)란게 있다. 이 말은 "나는 이 일
과 아무 관련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건 내게 아무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게 나와 무슨 상
관이냐, 그 일이 어떻게 되든 나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는 제3자의 일에 지나지 않으니 내게
말하지 말라는 의미다. 세상의 말 중에 이렇게 짤막한 문장으로 자신과 외부세계를 단칼에 격리
시키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말이야말로 프랑스 인들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
징적인 어휘다. 아무리 국가 대사라도 주 멍 푸, 이웃집에 불이 나서 사람이 죽어도 내 집에 옮
겨 붙지 않으면 주 멍 푸, 소말리아에서 수십만이 굶어 죽어가도 프랑스의 이익, 나아가 자기 자
신의 이해가 걸려 있지 않으면 주 멍 푸, 옆집에서 살림을 다 때려부수고 칼부림을 하며 부부싸
움을 해도 주 멍 푸다. 이런 철저한 개인주의적 성향은 교통사고 현장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다. 독일의 사고 현장엔 목격자들이 몰려들어 서로 증인으로 법정에 서겠다고 자청하는 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목격자들이 다 도주(?)해 버려 증인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돈 생기는 일
도, 유쾌한 일도 아닌데 아까운 시간 낭비하며 법원에 출두하는 미련한(!) 지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 멍 푸 사고'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국과 국가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을까? 자기 가족이나 재산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누구보다 용감하게 앞장서 잔 다르크처럼 싸울
민족이지만,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는 모든 게 주 멍 푸다. '힘, 프랑스, 위대한 국
가'는 그들에게 이익과 명예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주 멍 푸'가 될 수 없고, 결국 그들은 그 한계
안에서만 애국자들인 것이다.
영국을 가장 싫어하는 프랑스 사람들
독일의 아이들은 악마처럼 보이고 악마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아이들은 천사처럼 보
이고 천사처럼 군다고 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아이들은 천사처럼 보이지만 행동은 악마 같다
는 말이 있다. 사실 프랑스 아이들은 우아하고 절도 있게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으며 작은 신사
숙녀처럼 행동한다. 다 어른들이 곁에 있을 때만 말이다. 어른이 등을 돌리는 순간 아이들은 대
번에 악마로 돌변한다. 학급 소풍이라도 가게 되면 그곳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아이들은 모두
제멋대로 온갖 개구쟁이 짓을 해대며, 싸우고 던지고 욕하고 망가뜨리고 난장판을 만든다. 아이
들 열이면 열이 모두 제각각 이고 개성이 뚜렷해 제 주장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하
나같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우니, 아무리 어른이라도 아이들 수가 많으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돌아서 질서 잡기를 포기하는 게 상책이다. 가령 위로 넘어 다니는 아이, 스크린 앞을 뛰어 다니
는 아이, 오렌지를 던지는 아이 등 소란스럽기 그지없고, 시골 극장에서나 볼 수 있지만 잠시 정
전으로 필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어찌하여 이런 아이들이 있을 수
있을까. 만약에 그 자리에 영국인이 있었다면 그 엉망진창인 교육에 한없이 혀를 차고앉았을 게
다. 어른들 역시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어른의 축소판이 곧 아이들이니까. 드골 전 대통령은
치즈 종류가 300가지나 되는 나라의 국민이라 다스리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죽
하면 '프랑스는 한 명의 대통령과 5,700만의 왕이 통치하는 나라'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프랑스
인들이 보는 프랑스는 문화국가. 문화민족임을 내세울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이며, 전세
계 모든 국가가 모범으로 삼고 따라와야 할 최고의 문명국가이다. 프랑스가 세계 문화와 문명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가. 그런데 왜 다른 민족들은 그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고분고분 수
긍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마음속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표현을 하지 못하
는 것이겠지. 프랑스 인들은 이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대국다운' 대범함으로 의연히 대
처하지만, 질투와 시기에 가득 찬 외국인들은 어쩌다 한번 프랑스를 꺾은 것을 영원히 역사에 남
기려고 거리나 광장에 그 사실을 새겨놓는다고 믿는다. 가령 런던의 심장부에 자리잡은 워털루
역이라든지 트라팔카 광장이 나폴레옹이 패전한 전장이라는 점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고 확신한다. 그러나 조금만 그 내막을 뒤집어보면 파리의 오스테리츠역은 무엇인가? 나폴레옹
이 프랑스의 영원한 적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군을 궤멸하고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전기를
잡은 장소가 아니던가. 지금까지 프랑스는 '유감스럽게도' 큰 전투에서 한 번도 영국을 이겨본
적이 없다. 만약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장군을 꺾고 승리하였다면 지금의 콩코르
드 광장은 아마 워털루 광장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외국인은' 바로 영국인이다. 영국이란 나라는 원래 '미개한' 나라이고 국민들
은 쫀쫀하기 짝이 없는 족속 들이며, 그 햏동거지는 이상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옷
입는 것도 품위가 없고 수준 이하인데다가, 국민적 관심사라는 게 정원 손질하기, 거실 수리, 담
장 칠하기가 고작이고, 끈적끈적하고 뜨뜻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영국인들은 차가운 맥주를 즐
기지 않는다) 별종들인 것이다. 더구나 프랑스의 일이라면 번번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훼
방을 놓고 적의 편을 드는가 하면, 괘씸하게도 자신들을 누르고 해외에서 절대 다수의 식민지를
차지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 영어가 세계 공용어처럼 쓰이
고 있는 사실은 더더욱 참을 수 없는 모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프랑스어에 영어 단어가 끼
여드는 것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어찌 참아줄 수 있을 것인가! 비록 반세기가 지난 일이지
만 프랑스인 들은 2차대전 당시 영국이 덩케르트 대철수작전(1940)으로 나치군과 제대로 싸워보
지도 않고 군대와 민간인을 빼내가 버린 사실에 대해 지금도 겁쟁이, 비겁한 존재라며 불신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비록 그 작전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프랑스 시민이 생명을 구했지만, 그
사실은 결코 언급하지 않은 채. 프랑스인 들이 가장 즐겨 하는 대화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영국과 영국인에 대한 욕이다.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인식은 지난 몇십 년 동안 크게 변햇
다. 두 번이나 독일에 항복한(1870, 보불전쟁, 1940, 제2차 세계대전) 치욕적인 역사적 사건은 '위
대한 프랑스'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그래서 프랑스인 들은 잠시 영국을 옆으로 제쳐두고 독일
을 증오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다. 하지만 패전 이후 독일의 꾸준한 우호노력과 경제협력
으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우방으로 변모하였다. 이는 두 국민들 사이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 지도자들의 현명한 노력 덕분이었다. 공식석상에서 상대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절대 삼가는 것은 물론, 그런 발언을 하는 이에 대해서는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가 하면, 드골과 아데나워, 지스카르 데스탱과 헬무트 슈미트, 프랑수아 미테랑과 헬무트
콜로 이어지는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수상이 언제나 손에 손을 잡고 다정한 모습으로 언론에 등
장한 것도 먼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인 들은 더 이상 독일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독일인들 스스로가 프랑스를 문화면에서 한 수위로 대접해 주고 있기 때문에 상대를 '귀엽게 봐
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독일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까지 완전히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큰소리치는 독일, 통일, 통일과 함께 러시
아 다음의 인구대국으로 성장한 인구 8,000만의 독일을 프랑스는 놀라움 반, 두려움 반으로 바라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왜그리 생각이 깊지 못
하느냐는 것이다. 1차대전에 지고 난 독일은 해외의 모든 식민지를 고스란히 내놓았는데, 이것까
지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쳐도, 과거 식민지에 독일식 거리 이름 하나 남겨놓지 않고 물러난 것
은 문화적 인식이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한 것이다. 프랑스 인으로서는 이해하려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처사인 것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곳에는 캐나다건 베트남이건 튀니지건 나이지
리아건 거리 이름이나 행정제도는 물론, 지식인 계급 사이에 프랑스어까지 남겨놓았고, 프랑스식
문화를 심어놓았는데 말이다. 프랑스인은 스페인 인들을 자존심이 강하고 시끄럽기 짝이 없는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볼 때 자기네보다 한수 아래라는 우쭐함을 갖고 바라
본다. 이수 나라들 가운데 벨기에와 스위스는 비교적 관심은 크지 않아도 프랑스 말을 쓰기 때
문에 곱게 봐주는 나라다. 뚱뚱하고 느려터진 악센트의 벨기에 인들을 만나면 프랑스인 들은 배
꼽을 잡고 웃기부터 한다. 프랑스에는 벨기에 인을 주제로 한 우스갯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만득이 시리즈 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스위스는 조그만 나라이면서도
탄탄한 경제를 자랑하는 만큼 '약간의' 존경을 해줄 만하고, 특히 깨끗한 거리와 자연 또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그러나 스위스인 또한 프랑스인이 볼 때 우습기 짝이 없는 존재이긴 마찬가
진데, TV광고에 나오는 스위스인의 모습은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기 때문
이다. 미국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정서는 애정과 증오가 교차하는 묘한 것이다. 프랑스인 들이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을 시작할 때 미국인들은 이미 민주주의적인 헌법과 제
도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높게 사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바로 영국인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행동이 또 아디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인들은 너무 아메리카 적이다. 그래서
마뜩찮은 것이다. 프랑스가 그렇게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그 경탄스러운 프랑스 문화를 외면
한 채 아메리카 문화로 독자적인 발전을 하다니, 이 얼마나 경박하고 가치 없는 문화 공해의 양
산이란 말인가? 프랑스인 들이 애써 일궈낸 문화는 양키즘에 의해 상업주의 일변도의 대중문화로
전락하였고, 이제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영화문화까지 고사시키는가 하면, 페스프푸드의 범람으로
프랑스 요리가 위기에 처하고, 심지어 이상한 미국식 발음의 영어 단어들이 프랑스 자존심의 최
후 보루인 언어까지 오염시키려 들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인이 미국에 대해 가장 견딜 수 없어
하는 사실은 위대한 프랑스를 압도하려 든다는 점이며, 더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무리 이를
인정하지 않고 위대한 프랑스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이는 이미 엄연한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다.
프랑스인이 꿈꾸는 이상형은 '시라노'
에드몽 로스탕의 소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는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제
라르 드 파르뒤유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나 비디오를 본 이는 많을 것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문
학작품 가운데 가장 낭만적인 소설의 하나로, 프랑스에서 끊임없이 영화화되고 사랑 받는, 프랑스
인 들이 '기꺼이 되고 싶은' 영원한 자화상이다. 주인공인 시라노는 너무 큰 코 때문에 고민하는
추남이다. 그러나 그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검객으로, 문무를 겸비한 그러면서도 사랑이 없으
면 살 수 없는 로맨티스트이며, 사랑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지고지순의 영혼을 지닌 기사도의 화
신이다. 자신의 추한 용모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록사느에게 고백은커녕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
하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아야 하는 고통, 그 어떤 시인이나 검객도 그 앞에선 무릎을 끓어야 할
정도로 위대한 존재이지만 사랑 앞에선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록사느가 사랑하는 미남 청년
에게 한없이 질투를 느끼면서도 그의 입을 빌려 불타는 사랑을 대신 토해 낼 수밖에 없는 처지이
다. 그 미남 청년이 전사하자 수녀가 되어버린 록사느,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 결국은 자
객의 손에 생명을 잃는다. 그 순간, 록사느는 그의 입에서 흘로나오는 시를 통해 자신을 진심으
로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시라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라노는 프랑스인 들이 꿈꾸는 모든
매력을 완벽히 갖춘 이상형이다. 외모야 부모가 물려준 '운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사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프랑스인들 가운데 미남은 흔한게 아니다) 멋진 남자가 지
닐 수 있는 요소, 즉 낭만과 용기 그리고 예지를 고루 갖춘 남성 상에 자신을 오버랩이 키고 싶
어한다. 그리고 또 자신의 내면에 적지 않은 시라노적 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믿는다. 바로 프랑
스인들은 시라노라는 인간형을 통해 나르시시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자주 변하지만 별로 변하지 않는 나라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이는 또한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영국
인들은 어떠한 변화도 일단은 거부하며, 변화를 요구하면 첫 질문이, "도대체 옛 것에 잘못된 점
이 무엇이란 말인가?"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구식이라는 평가가 내려지면 주저없이 버린다.
파세(pass'e, 지났다, 구식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자주 쓰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실상 변화하
는 것은 별로 없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지금까지 법이나 행정제도 등에서 변한 것은 거의 없지
만 공화국은 벌써 다섯 번째(!)다. 기본적인 틀 자체는 보수적으로 굳게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그 내용은 주저없이 바꾸는, 말하자면 하드웨어는 그대로 둔 채 소프트웨어만 자주 바꾸는 셈이
다. 관례라는 것도 '파세'라고 인정되면 새롭게 바꿈직한데도 대부분 변함없이 지켜저 내려온다.
한 예로 편지 쓸 때 끝맺는 말을 들어보자.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편지 쓰는 사람도 드물고, 설
혹 쓴다 해도 건강을 기원하면서, 안녕히 계십시오 등등 간단한 인사말이면 충분할 터인데 프랑
스인들은 그렇지 않다. 형식을 갖춰 쓸 때는 "Nous vous prions agr'eer, Monsieur, l' assurance
de nos sentiments les plus respectueux."(우리들 서로간의 각별하기 그지없는 존경심을 보장하기
낙망하면서)이고, 형식을 갖추지 않는 편인 경우에도 "N'oublie pas de nous donner de tes
nouvelles de temps en temps, s' il te plait."(간혹 자네의 소식 들려주는 것을 잊지 말게나)처럼
격식을 갖춘 맺음말을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 변화, 개선, 개혁을 선호하며 남보
다 뒤떨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런 최신을 좋아하는, 좀더 적나라게 표현하면 뭔가 장난기
있고 놀이스러운 것,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그들의 기질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예컨대 다
섯 번이나 국가형태를 바꾸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앞장 서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
(TGV)와 비행기 (콩코드를 영국과 공동 개발함)를 만들어내고, 유럽에서 가장 먼저 텔레폰 카드
를 대중화하였으며, 1970년대 말에는 통신부에서 각 가정에 오늘날의 컴퓨터 개념과 유사한 정보
단말기를 보급한 것 등을 봐도 알 수 있다.
5,700 만 전국민의 철학자
프랑스인들은 남들한테 깊이 있는 인간으로 보이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속에 든
건 없는데 말만 많은 인간이기보다 사색적이며 모든 분야에 통찰력을 지닌 예지 있는 현자(賢者)
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프랑스인에겐 특히 더 중요하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화석상에서 어떤 주제가 나와도 주저하지 않고 논할 수 있으며 그에 대
해 탁월한 식견을 지니고 있음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런 만큼 철학은 빠질 수 없다. 파스칼,
데카르트는 물론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식탁에서건 카페에서건 철학은 언제나 단골 주제이며,
택시기사까지 볼테르와 보들레르의 문학과 시몬 드 보부아르를 논한다. 그 깊이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전국민이 철학적 소양을 지니고 있다는 현학적 요소가 강하다. 이런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진 국민이 복잡한 것, 까다로운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
다. 프랑스인들에겐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일수록 '어렵게, 그러나 쉽게' 설명해야만 먹혀 들어간
다. 어떻게 이런 모순이 가능할까? 한 예로 1992년, 유럽연합을 준비하기 위한 마스트리히 조약
인준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이런 프랑스인들은 기질을 꿰뚫어보고 있던 정부의 대안은
참으로 기발했다. 사실 입 가진 사람은 한결같이 이 조약 내용에 대해서 잘 아는 양 떠들어댔지
만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프랑스 정부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깨알 같은 글
씨로 가득한 마스트리히 조약 원문 전체를 복사하여 프랑스 전 가구에 우송했다. 과연 프랑스
국민들 다수가 이 우편물을 보고는 다른 선전물처럼 휴지통에 던지지 않았다. 읽지 않았다간 대
화에서 무식이 들통날 우려가 있으므로 끙끙대며 그 깨알 같은 글들을 읽느라 온 국민이 땀을 흘
렸다. 정부는 복사물 한가지로 어려운 문제를 '어렵게, 그러나 쉽게' 설명한 것이다.
톡톡 튀는 에스프리
인간의 영혼은 지혜에 의해 반짝인다. 슬기롭고 창조적인 인간의 영혼 덕분에 인류는 문화를
향유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므로 창조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사회는 역사와 문화를 화려
하게 장식해 온 빛나는 인간혼, 에스프리를 존중하며 이를 지닌 인간을 존중한다. 프랑스 사회
역시 에스프리를 중시하는 사회이며, 인텔리를 존경한다. 따라서 당연히 교육을 중요시하며, 그
만큼 교육의 질을 따진다. 그래서 명문교를 나온 인텔리가 프랑스 사회를 이끄는 것을, 영국이
계급의 차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듯 커다란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기질상 일부에서 항
상 이에 대해 격렬한 반론을 제기하지만. 영국 사회가 노력한 대로 거두는 사회라면 프랑스는
'학벌대로' 거두는 사회라 할 수 있다. 학벌에 대한 것은 다음 장에서 언급하겠지만, 에스프리는
프랑스 사회 모든 영역에서 중요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거기에서 그치면 안된다. 도저히 남
들이 생각해 낼 수 없는 기발한 객기랄까 광끼랄까 뭔가 확실히 '튀는' 요소가 없으면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영국인들이라면 어리석은 짓, 미친 짓이라며 혀를 끌끌 팔 일들
을 프랑스인들은 즐겨한다. 스스로를 대단히 '이선적'인 민족이라 자부하면서도 칼집 속에 들어
있는 차가운 이성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에 뜨거운 감성이 가미되지 않은 인생(그들이 말하는
모든 영국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기발한 착상이라도 또 아무리 터무
니없고 엉뚱한 것이라도 실험해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겁고 보람 있는 것으로, 실패로 끝난다
해도 큰 수치가 될 수 없다. 언제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실패했다고 해서 체면 따지고 남의
눈치 살필 필요도 없으며, 전통과 과거에 물결은 인생의배를 앞으로 몰고 가고 있으며, 과거란 뱃
전을 스쳐간 물결이기 때문에 눈물을 가득 담은 눈으로 '엉뚱한' 실험 중 대표적인 사례는 1980년
대 파리 한복판에서 벌인 유전 발굴 소동이다. 에스프리, 기발함,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은 물론 정치가들이다. 이들은 유
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하여 '고객'의 취향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데, 어디 좀 까다로운 고객인
가! 이성적이어야 하면서도 결코 이성적이라는 볼 수 없는 기발하고 '튀는' 아이디어와 행동을 가
끔씩 보여주어야 하고(너무 자주 하면 정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니까), 논리와 비논리, 이성적
행동과 충동적 행동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는 재주를 가져야한다. 그래서 프랑스 정치인들
가운데엔 기막힌 연기자들이(연예인이 아님)많다.
너무너무 중요한 한 뼘의 땅
프랑스는 이웃 통일독일 영토의 1.5배에다 인구는 5,700만 명으로(독일 8,000만) 인구밀도가 독일
의 반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은 독일인들과 달리 나라가 비좁고 답답하다고
끊임없이 불평한다. 더욱이 농사를 짓는 이들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그정도로 땅 욕심이 강하다. 프랑스인들의 토지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이웃 나라
민족들에 비해 유별난 것은 프랑스 민사소송 중 땅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두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가 너무 비좁고 숨통을 조일
정도로 답답하다고 불만이니 외국인들, 특히 이민 오는 이를 좋아할리 만무하다. 도대체 이 좁은
땅에 또 인구가 늘다니! 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정서를 바탕으로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주장
하는 극우주의 국민전선(당수는 르팽임)이 약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독일인, 영국인들이 땅을
사고 집을 사는 것은 싫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 '멍청한' 외국인들은 이른바 프랑코필리아
(Francophlila)라고 불리는 극성 프랑스 팬들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척박한 땅이나 다 허물어져
가는 농가 따위를 '너무너무 아름답다'며 사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프랑스 국민에게
베푼 큰 혜택의 하나는 토지의 개인소유를 허용한 것이다. 땅에 대한 욕심은 농경사회의 공통적
특징이라 하더라도 프랑스인들의 경우는 좀 심한 편이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할 수 있다
면 그들은 기꺼이 부모나 형제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을 정도니까.
세 개의 부르주아지
부르주아는 원래 중세기 때 성(bourg) 안에 살던, 그러니까 상인, 의사, 공장주, 법률가 등 중산
층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 계급에 대칭되는 용어로 쓰이다가, 사회
주의가 등장하면서 노동자를 탄압하는 탁취계급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원래 프랑스 말인 이 말은 말의 원천지답게 어원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 모두를 지니고 있으며,
그저 사회계층을 지칭하는 말일 뿐이다. 모든 국민은 부르주아지이며, 영국처럼 계급의 경계선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지는 않으나 어느 사회나 존재하듯 프랑스도 상, 중, 하 세 계급으로 분류된
다. 다만 이 계급은 핏줄에 의해 타고난다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신분상승이 가능하다.
첫째 그랜드 부르주아지는 상류층을 일컫는다. 이른바 명문 가문으로, 프랑스의 빛나는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이나 저명한 인물의 가문이다. 가급적이면 de(프랑스 귀족 칭호)가 두
개쯤 붙은 핏줄이면 좋겠지만, de가 붙지 않더라도 역사책에 등장하는 거물급 집안이면 그 후예
들은 이름 하나만으로도 톡톡히 대접을 받으며, 결혼도 끼리끼리 어울린다. 상류사회가 끼리끼리
놀기는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지만. 둘째 본 부르주아지는 중류층이라기보다 중상층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집안이라든가, 사회적 공헌이 큰 사람, 기업주 등이 이 범
주에 속한다. 이들은 어느 계층과도 잘 어울린다. 셋째 프티부르주아지는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서민층, 소시민층을 말하며, 약간의 경멸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매일 만원 전철에 시
달리며 출퇴근하는 전형적인 '메트로-불로-도도족'이다 (metro, 지하철-bouiot, 일-dodo, 잠자기).
이들은 입만 열면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 정부에 대한 불만, 회사에 대한 불만, 이웃에 대
한 불만, 외국인에 대한 불만 등 일상의 고된 삶을 남을 헐뜯고 흉보는 데서 보상받는, 소심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고 당당한 '잘난 척'
프랑스인들은 대단히 스노비즘적이다. 스노비즘이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것으
로, '티를 내는' 행동이다. 그것이 학벌이든 재산이든 가문이든 프랑스인들은 이를 결코 감추지
않고 자신의 등급과 격조에 맞는 대우를 당당하게 요구하며 과시한다. 우리의 경우 겸손이라고
표현되는 행위가 그들에겐 미덕이 아닌 '미련'이다. 적어도 '수준 있는' 집안임을 과시하기 위해
선 '수준 있는' 개를 길러야 하고(외국에선 한물간 코커 스페니얼 종이나 스코치 테리어 종) '수준
있는' 주거지역에 살아야 하며, '수준급' 브랜드 의상을 걸쳐야 하고, 자녀교육도 반드시 '수준 있
는' 명문학교에서 받도록 해야 한다. '수준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수준 있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 까르푸, 오산, 맘무트 같은 대형 할인매장을 이용하는 법이 없으며, 절대 대중교통을 이용하
지 않는다. 이런 스노비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벌이다. 명문교 출신들이 사회를 지배
하는 에나키즘(Enarchism, ENA+Anarchie)으로 상징되는 엘리트 사회이다. 에나키즘이란 국립행
정학교(ENA)라고 하는 엘리트 명문교 출신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국립행정학교와 국립기술학교(EP), 국립보통학교(EN,보통 사람을 교육하는 기관은 결코
아니지만) 출신들을 총칭한다. 이 교육기관들은 2차대전 후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드골이 창
설한 대학원 격인 학교로, 엄격한 입학시험을 통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인재를 선발
한다. 이 학교의 졸업장은 곧 출세 보증서와 마찬가지다. 선후배 관계의 끈이 단단해서 서로 이
끌고 밀고 하면서 사회의 요직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여,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당 출신
리오넬 조스팽 수상은 ENA의 폐지를 공략으로 내세울 만큼 ENA망국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97
년 대선 때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7명 후보 전원이 S대 출신이었음을 상기하면 에
나키즘이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사실상 역대 대통령, 수상, 국회의원은 물론 대기업체 총
수들도 대부분 ENA출신들로,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은 ENA, EP, EN 세 학교 졸업장을 모두
지니고 있다. 쉬락 대통령, 조스팽 수상, 발라뒤르 전 수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ENA 출신들
이 프랑스를 '말아먹는(?)' 형편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3대 자동차 기업인 시트로엥, 르노, 부조
사의 총수 또한 모두 ENA출신이어서 기업계나 정치계나 문화계나 어느 분야든 ENA 출신들의
대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의 스노비즘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하기 때문
에, 그리고 모든 국민이 그렇기 때문에 역겹거나 추하다는 인상보다는 생활의 한 예술(?)로서 그
럼 대로 보아줄 만하다. 소시민들의 스노비즘은 자동차에서 잘 드러난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중
고차는 인기가 없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인 리옹과 마르세이유(3
위), 랭스 같은 대도시에 중고차 판매상이 없다. 중고차 매매는 신문광고를 통하는 등 개인적 차
원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모두들 새 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평생'이란 3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성향은 우리나라와도 아주 비슷한데, 우리에게도 그러고 보면 스노비즘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자동차를 선택할 때는 소형차를 선호한다. 대형차를 사고 싶지만 도로 사정, 세금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영악한 현실주의자들인 프랑스인들은 과시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리거리에서는 전혀 양보를 모르는 소형차들이 거리의 영웅인 양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경쟁을
벌인다.
섹스 스캔들이 없는 나라
프랑스인들은 모랄에 대해 열린 사고를 지니고 있다. 바람을 피우고 안 피우고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이지 사회적 윤리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스캔들이 신문에
보도되는 경우가 드물다. 허구한 날 신문지상을 대문짝처럼 장식하는 영국의 정치인이나 유명인
사의 섹스 스캔들과 언론의 사냥개 같은 추적은 프랑스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다. 그게 왜 화제가 되고 문제가 된단 말인가? 기혼자가 연인이나 정부를 두는 건 개인적인 문
제이며, 부부끼리 해결할 문제이지 왜 남들이 왈가왈부하는가? 주 멍 푸! 섹스 또한 인간의 자연
스러운 욕구일 뿐, 사회가 '지정한' 윤리와 도덕의 그물 때문에 억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시각이다. 그래서 멘스를 시작해 여성이 되어가는 딸이 섹스 생활을 하지 않으면 부모들
은 걱정을 한다. 어디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닌지, 아니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지 말이다. 남자가 여자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면 '반드시' 섹스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
은 경우 여성은 커다란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유혹은 그 자체가 예술이며 아름다움이지 윤리나
도덕이 개입될 성질의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유혹에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 즉 친구
나 동료의 아내는 유혹할 수 있어도 그 딸에게는 손을 벋치지 않는다는 것 그건 프랑스 사회의
불문율이다.
질서가 없지만 혼란도 없다
교통표지판이 거리의 장식품이나 '권장사항'이긴 이탈리아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지만, 파리의 거
리에서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추는 사람은 독일 사람이거나 방금 도착한 한국인 정도일 것이다.
1940년, 독일 군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내린 포고가 표지 없는(건널목) 도로에서 무단
횡단을 금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 실패작이었다. 이처럼
프랑스인 들은 규칙, 규율 등 강요된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며, 전혀 질서가 없는 듯한 가운데 상
황에 따라 모든 일을 융통성 있게 처리한다. 프랑스인 들은 불친절하고 거친 면이 있지만 인사
만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의식이다. 전화번호를 잘못 돌린 외국인들은 수화기를 통해 솓
아지는 욕바가지에 당황하기 일쑤다. 친구 사이에서도 모욕스런 욕이 마구 오간다. 영국 사회에
서는 상대방을 한 번 모욕하면 그 앙금이 평생 간다. 그러나 프랑스 젊은이들은 욕이 입에 배어
서로 대놓고 욕설과 모욕, 비난을 퍼부어 대지만, 다음날이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러
운 관계로 되돌아간다. 또 프랑스인 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 사용
(?)이다. 프랑스인 들에겐 소변이 마렵다고 느끼면 그곳이 곧바로 화장실이 된다. 강, 바다, 담,
호수, 전봇대 등 어디서든 볼일을 본다. 파리는 주변 도시 인구까지 합쳐 1,000만 명이 복닥대는
대도시지만 공중 화장실을 찾아보기 힘들다(최근 동전을 넣는 간이 화장실이 간혹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거리에서 화장실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를 필요는 없다. 그 흔한 바나 카페의 하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점에 대해선 대단히 너그럽다. 인체 리듬이요,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다는 게 그들의 견해여서 어디든 자연스럽게(?) 볼일을 보는데, '가위가 그려진 담'은 어
디에도 없다. 한 외국인 부부가 지중해의 아름다운 프랑스 항구를 찾았다. 멋진 식사와 붉은 포
도주에 취해 레스토랑을 나선 그들 앞에 펼쳐진 광경! 하늘엔 둥근 달, 어둠속에 넘실거리는 아름
다운 지중해 물결, 그 물결에 반사되는 달빛.... 너무도 황홀한 광경에 취해 마치 천국에 온 듯
한 착각에 빠진 이들 부부 눈앞에 나타난 세 프랑스 사나이! 이들은 모두 지중해를 향하여 바지
지퍼를 내리고 시원하게(!) 소변 줄기를 뿜어대는 게 아닌가? 환상에서 깨어나 아연 질색하는 이
들 부부에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본뉘'(bonne nuit,안녕히 주무세요)라 말하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여유 있고 느슨한 삶, 인생이 즐겁다
프랑스는 자연이 제공하는 온갖 요소를 골고루 갖춘 축복 받은 땅이다. 산, 바다, 강, 벌, 호수...
알프스 연봉에서 지중해, 대서양, 북해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류의 여가든 전천후로 즐길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자연조건은 풍요로운 농산, 축산, 해산물을 제공하여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통곡(!)할
요리문화를 갖고 있다. 직장이 잇고 가족이 있으며, 아침마다 신선한 바게트를 먹을 수 잇고 포
도주에 프로마쥬(치즈)를 즐기며, 골루아즈 담배를 피우는 한 나는 왕이며 행복하다. 세계 어디
를 가도 이런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이대로의 인생이 즐겁다. 여유 있고 느긋한 삶, 매
일 식탁에 앉아 다정한 이웃과 대화를 나누노라면 세계가 무너져도, 주 멍 푸! 그래서 프랑스인
들은 프랑스를 떠날 수 없으며, 세계를 향해 눈을 뜨고는 있으나 자기 이해와 관련된 일이 아니
면 결코 관심을 쏟는 법이 없다. 영국에서 성공하려면 독일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독
일에서 성공하려면 미국식으로,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일본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
랑스에서 성공하려면 프랑스식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특성은 <<파리 마치>>라고 하는
주간지의 성공 컨셉에도 담겨 있다.
통쾌한 <<오리>>와 뿌듯한<<파리마치>>
'세계 유일 의 문화국'이라는 자부심과는 거리가 멀게도 프랑스인 들은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전체성인 프랑스인의 30%만이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으니, 신문업계가 파산 위기에 몰린 것도
당연하다. 현재 프랑스의 일간신문들은 정부에서 대주는 보조금이 끊어지면 모조리 문을 닫아야
할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배달 제가 발달하지 못하여 독자가 일일이 신문을 사
러 가야 하는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르몽드>> 중도, <<피가로>> 우익, <<리베라시옹>> 좌
익처럼 신문마다 정치 색이 뚜렷하여 독자층이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일본의<<요미우리>> <<아사히>> 같은 주요 일간지 발행 부수가 1,000만 부를 넘는 데
비하여, 세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프랑스 지성을 상징한다는 <<르 몽드>>지 발행 부수는
고작 30여만 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주간지는 강세를 보이는데, 바로 그 컨셉에 비밀이 담
겨 있다. 대표적인 두 개의 주간지는 <<르 카나르 앙셰네(사슬에 묶인 오리>>와 <<파리 마치
>>인데, <<르카나르>>로 약칭되는 신문 스타일의 주간지는 프랑스 정치인과 유명인사의 공포
의 대상이자 악몽 그 자체이다. 철저한 풍자신문인 이 <<오리>>는 그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물어대는 바람에 프랑스 국민에게는 말할 수 없는 통쾌람을, 당사자에겐 치명적
인 타격을 가하여, 매일 오후 이 신문이 나오는 시각이면 프랑스 정계의 희비가 교차한다는 말까
지 있을 정도이다. 이 신문은 다른 신문이 '써서도 안되고, 쓸수도 없으며, 쓸 엄두도 내지않는'
내용들을 대담하게 다루고 폭로하여 하루아침에 멀쩡한 장관급 인사의 목을 날리기 일쑤다. <<
오리>>에 비해 <<파리 마치>>는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에 철저히 영합하여 성공한 케이스로,
이 잡지를 보면 프랑스인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프랑스인의 외국인에 대한 시각을 조사한 앙
케이트에서 71%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러나 이 반감은 옳으
냐 그르냐는 토론은 전혀없다. 그저 그뿐이다. 71%라는 센세이션 자체는 흥미 있지만 프랑스인
에 대한 비판은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인 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 자체를 워낙 싫어
하기 때문이다. 이 잡지는 구석구석에 전세계가 프랑스를 부러워하고 있으며 찬탄을 보내고 모
방하기에 바쁘다는, 자위적 자아도취심을 부추기는 기사와 화면으로 가득 차 있다. '힘, 프랑스,
위대한 국가' 그리고 '주 멍 푸!' 프랑스인의 사고를 꿰뚫는, 독불장군 고환 긁어주기 (!) 식 컨셉
으로 <<파리 마치>>는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업계를 비웃듯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방어와 외국어는 국가통합의 적
여러 언어를 공인하고 있는 스페인이나 국어가 아예 네 개인 스위스처럼 점차 지역성을 보호하
고 인정해 가는 추세와는 전혀 관계 없이, 프랑스는 프랑스어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국민
통합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가꾸어간다. 과거에는 브르통어(브루타뉴어), 플랑드르어, 카탈루냐
어, 바스크어 등이 쓰였으나 오늘날의 프랑스는 이런 지역어, 지망어(patois, 파투아)를 국가통합
의 적으로 철저히 배격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새로 등장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엄격히 심의
하여 사전에 올릴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결정하며, 프랑스어의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 외래어와
전쟁을 벌인다. 그중에서도 영어를 뒤섞어쓰는 프랑글레(franglaisFrancais+Anglais)는 가장 큰
적으로, 방송 등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면 벌금까지 물리는 등 영어 사용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지만, 글로벌화하는 세계에서 프랑스라고 국제화된 영어의 파도를 언제까지나 막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E-Mail이란 말도 멜(M'el, m'essage 'electronique)이란 프랑스 말로 바
꾸는 등 프랑글레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이며, 이 외롭고 처절한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
전쟁엔 프랑스 민족의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드골 대통령이 사망한 날, TV기자가 한 영
국인 문필가와 인터뷰를 했다. "드골리 하나님을 만나면 무슨 애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
까?" "글쎄요, 그거야 하나님의 프랑스어 실력에 달렸겠지요!" 프랑스어는 우리 생활에도 널리 깔
려 있다. 랑데부, 뉘앙스, 부르주아, 사보타주, 레세페르, 쿠데타, 레스토랑, 뷔페, 오믈렛 그리고
아듀!!
프랑스의 역사
어제의 영광은 내일을 밝힐 힘이다!
어떠한 역사도 압축해서 훑어 본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특히 프랑스처럼 복잡하고 방대
한 역사는 더더욱 그러하다. 몇 권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프랑스 역사를 짧은 지면으로 소화하
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과 그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다. 프랑
스 역사는 다음과 같이 큰 분수령을 넘어온다.(그림 생략) 프랑스는 로마인들이 오기 전까지 갈리
아라 불리는 골(gaulle)족의 땅이었다. 이들은 중앙유럽에서 건너온 켈트족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브리튼 섬(영국)으로도 건너갔으나 뒷날 이민족의 침략으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쫓겨나게 된
다. BC 51, 카이사르에 의해 오늘의 프랑스 전 지역은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고, 로마인이 전파한
라틴 문명은 오늘의 프랑스 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로마의 이민족 융화정책에 의해 골족의
귀족들이 다투어 스스로 로마이화함으로써 로마문명은 아주 빠르게 프랑스 지역의 문화와 융화되
고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프랑스는 게르만족의 세계가 된다. 특히 프
랑크족(Franc, Frank)이 지금의 프랑스, 독일 지역에 여러 나라를 세우고, 프랑스 중북부에 프랑
스란 이름의 나라가 등장한다. 이들 중세 봉건국가들은 강력한 국가형태를 갖추지 못한채 끊임
없이 국경과 영토 문제로 분쟁을 거듭하였고, 프랑스는 강력한 라이벌인 부르고뉴와 대립했고, 부
유한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공업지대를 두고는 영국과도 대립해야 했다. 이는 결국 영국의 침
공으로 시작된 백젼전쟁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한 강
력한 중앙정부의 필요성과 이를 뒷받침할 상비군의 보유와 함께 프랑스는 최초로 절대왕정을 수
립할 수 있게 되었다. 강력한 왕권에 의한, 파리를 중심으로 한 중앙통치는 봉건제도를 붕괴시키
고, 지방 봉건영주들은 파리에 상주하는 귀족 관리계급으로 바뀌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한 화려
한 궁정문화는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과소비의 온상이 되었고, 백성들은 철저히 착취당할수 없었
다. 이때의 프랑스는 세 계급으로 구분되어 이었는데, 상공업의 발달로 새롭게 떠오른 제3계급
부르주아들은 계몽주의에 의해 자각해 있었고, 이들은 굶주리고 핍박당하는 백성들을 선동하여
1789년, 대혁명을 일으킨다. 인류역사의 최초, 최대라는 프랑스 유혈 대혁명은 사회의 기초를 근
본적으로 바꾸었으나, 당시는 대혁명이 시민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오늘의 평가와는 거기
가 먼, 귀족계급을 타파한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혁명이었으며, 혁명은 곧 이들 간 권력투쟁의 막
을 열어놓았다. 혁명 주도세력이었던 온건 지롱드파와 과격 자코뱅파의 유혈 권력투쟁은 끝내
로메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로 이어졌고, 1799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집권과 함께 혁명시대
는 막을 내리고 1인독재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과거의 왕정시대와 다르게 국민의 지
지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세제를 개혁하여 합리적인 세수를 보장하는 한편
무절제, 무작위한 대 국민 착취를 제도적으로 막고, 현명한 경제정책을 시행하여 혁명과 혁명전쟁
으로 피페한 프랑스 경제와 산업을 부흥시켰으며,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을 제정, 법치국
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였다. 나폴레옹은 한편 정복자로서 이탈리아, 이집
트, 스페인, 독일 등을 정벌하여 프랑스의 위력을 세계에 과시하여, 프랑스 국민들에게 크나큰 긍
지를 심어주기도 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천적(天敵)과 같던 오스트리아의 함스부르크 왕가를 굴
복시키고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전 유럽의 패권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벌이
라는 무리수를 시발로 하여 라이프히치 패전 등 나폴레옹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워
털루 패전으로 끝내 세인트헬레나 선에서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존재는 아직도 프
랑스 국민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영광과 긍지의 상징으로 새겨져 있다. 나폴레옹 몰락 뒤 왕
정이 복고되었으나 이제는 과거와는 다르게 새로운 세력, 즉 부르주아지의 전성기였다. 이들의
탐욕에 의해 조종되는 국가권력은 해외 식민지 경략에 열을 올리게 되고, 안으로는 인간 이하의
노동조건에 반발하는 노동자 계급의 저항과 사회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제
과거 귀족-평민의 대결에서 자본가-노동자 계급의 대결 시대로 바뀐 것이다. 유럽의 세력 판도
는 프랑스-영국의 대립에서 새롭게 등장한 강력한 프러시아에 의해 판이 다시 짜이게 되었는데,
1870년, 보불전쟁(프랑스-프러시아)에서 프랑스는 프러시아에 패배,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고 파리가 역사상 최초로 독일군에 점령되는 '치욕'을 겪게된다. 무정부상태였던 1871년, 파
리에는 노동자 계급에 의한 역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 (Paris Commune)이 들어
서기도 했다. 그리고 자본가, 노동자의 대립은 지금까지도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각
계각층의 다양한 욕구를 대표하는 수많은 정당이 좌 . 우익 대결을 벌이고, 어느 한 정당이 단독
집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언제나 여러 정당이 연합해서 집권하는데, 때에 따라서는 좌.우익이
동거하는 색다른 정치풍토가 조성되기도 한다. 프랑스인의 역사관은 이처럼 과거의 영광과 오늘
의 현실을 오가는 독특함을 지닌다. 한 예로, 프랑스에는 지금 사회복지, 교육개혁 등 해결해야
할 난재가 산처럼 쌓여 있으며, 이는 모두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한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을 사회당 출신. 그렇다면 그는 백성들을 위한 사회복지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편성했어야 할 텐
데, 그의 재임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사업은 과거 나폴레옹이 이루어놓은 역사적 기념물
보다 더욱 방대한 건설사업이었다. 나폴레옹은 개선문, 마들렌 교회, 방돔 광장 등 프랑스의 영
광을 영원히 기리는 대역사를 이루었다. 그러나 미테랑은 700년에 걸친 루브르궁 건설의 대완성,
라데팡스 개선문, 프랑스 국립도서관(세계최대) 등 더욱 방대한 규모의 역사적 건축물을 완성시켰
다. 이는 현 쉬락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의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으나 프랑스의 영광
의 확인에는 좌 . 우익이 없는 나라. 프랑스는 이처럼 과거의 영광을 오늘의 에너지로 소중히 여
기며 긍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영국
영국의 국명은 대브리튼 왕국과 북아일랜드이며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이
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으로 통칭되는 까닭은 5,800만 인구 중 5분의 4가 잉글랜
드 지방에 살고 있으며, 영국이란 명칭 자체가 잉글랜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방마다 독특한
문화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기에 일반적으로 영국을 말하기는 어려운 만큼, 이 책에
서 이야기하는 영국이란 물론 잉글랜드를 지칭하는 것이다.
영국'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창
우리는 서양을 주로 미국 중심으로 이해한다. 그만큼 미국은 우리와 여러 면에서 밀접한 관계
를 맺고 있고, 또 가장 자주 접하는 '서양인'이다. 오늘날 미국 문화는 나름대로 독자성을 지니고
세계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뿌리를 거슬러 더듬어 올라가면 영국이란 원
천에 도달하게 된다. 비록 오늘날 영국이 늙은 왕국이며 미국에게 세계 주도권을 넘겨주었다고
는 하나, 사실상 오늘의 세계는 이미 영국식으로 기본 포맷이 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전세계의 컴퓨터가 IBM시스템과 매킨토시 시스템으로 양분되어 다른 시스템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듯, 지구촌화한 오늘의 세계는 영국식이 대세를 이루고, 약간의 프랑스 스타일이 가미되어 있
다고 볼 수 있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호텔 장식, 세계인들의 복장, 에티켓, 테이블 매너, 비즈
니스 양식 등은 영국식이라는 뿌리를 인정하지 않고는 정확하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영국은 오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창이며, 서양을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로서 그 역할을 언제
까지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가 미국 주도 아래 미국화되어 가고 있다고는 해도 기본 틀
자체를 그려놓은 사람들이 영국인이므로, 영국인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나아가 미국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고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의 얼굴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외국인 기피증과 외국인 동정증
영국은 섬나라다. 섬나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외지인,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영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섬이건, 대륙이건 잉글랜드가 아닌 곳에서 온 사람들은 영국인
특유의 체질적인 거부반응에 부닥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 섬은 수 많은 이민족들에 의해 유린
되어 왔다. 로마인, 켈트족, 앵글로색슨족, 노르만족, 덴마크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민족이 이 땅을 침략했고, 그들은 번번이 영국인(토착민)화된 같은 이주민 출신들에게 철저히 거
부당하고 냉대받았다. 노르만디공 윌리엄이 정복왕으로 브리튼 섬을 침략하여 오랬동안 노르만
족 통치시대를 열었지만, 그 역시 영국인들에게 배척당했다. 그 이유는 그가 정복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섬나라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기피증
(xenophobia)이 강하고, 이 정서는 천 년이 넘도록 의식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지난 세기에 전세계를 그들의 발 아래 굴복시키고, 유니언 잭이 나부끼는 곳엔 해질 날이
없다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외국에 대한 우월감을 이 섬나라 국민들의 잠재
의식 속에 깊게 심어주었을 뿐 아니라, 과거와는 달리 외국인에 대한 동정심까지 지니게 해주었
다. 광대한 식민지의 종주국답게 갖가지 인종이 이 나라에 건너와 살게 되었고, 자연 영국인들은
복합문화 및 다수 인종과 뒤섞여 공존하는 데 익숙해졌으며, 서구 나라 가운데 방문자든 거주자
든 외국인들에게 가장 관용적인 국민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절한 미소를 띤 얼굴 이
면에는 입밖에 내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외국인 기피라는 표현보다 외국인을 긍휼히 여기는 정서
를 지니고 있다고 애기한다면 영국인들은 흡족해할 테지만 말이다. 이는 곧 영국인이 가장 우수
한 민족이라는 긍지를 저변에 깔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이 결코 언어화되어 입 밖에 나
오는 경우는 없다 하더라도 '영국인 못지않게' 우수한 외국인에 대한 그들의 아쉬움 섞인 다음과
같은 촌평은 외국인에 대한 그들의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런 친구
가 외국인이라니... 정말 유감이군." 영국인에게 외국이란 섬 밖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잉글랜드
지방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부분을 뜻한다. 같은 잉글랜드 안에서도 수도 런던으로부터 멀리 떨
어진 곳일수록 그들에겐 낯설고 '이국적'이다. 공식적으로는 한 나라지만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
아일랜드는 당연히 외국이며, 이는 월드컵에 브리튼 단일팀이 아니라 반드시 독자팀을 출전시키
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그네들이 만든 월드컵 규칙이긴 하지만, 아일랜드인은 그네들
이 보기엔 좋게 평해서 야만인이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완전히 '맛이 간' 광기의 민족이다. 스코
틀랜드인들은 음흉한 계략을 지닌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민족이고, 웨일스인들은 행동이 거칠고
사람과의 사귐에 있어 정당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영국인이 전세계 외국인 가운데
오직 하나,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정하여 대접하는 나라는 프랑스뿐이다. 또 그만큼 경쟁의
식이 강하여 미워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영국인은 프랑스를 사랑한다. 맛있는 요리, 향기로운
와인, 따뜻한 기후와 빛나는 태양... 그러나 영국인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아름다운
땅에 바로 프랑스인 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결코 그런 값진 땅에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확고한 견해이다. 그 시끄럽기 짝이 없고, 위생관념도 없으며, 그저 여자 꽁무
니만 따라다니기 바쁜 색광 같은 민족이 그 기름지고 아름다운 땅에 살고 있는 데 반해, 자신들
같이 절도 있고 근엄한 민족이 언제나 비가 오는 음산한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영국인들에겐
참으로 불공평한 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인 들이 하는 짓거리에 대해서 사사건건
보이지 않는 신경질적(물론 절제된) 반응을 보이며, 프랑스인에게만큼은 결코 져서는 안된다는 게
영국인들의 공통된 견해다. 독일인들을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시선은 상당히 착잡하다. 일반적으
로 독일이란 나라는 형편없는 음식과 맥주와 소시지만 먹고 사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고, 독일인
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가장 먼저 히틀러를 떠올린다. 전쟁 이야기는 독일인들 앞에서 절대 꺼내
서는 완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독일 젊은이를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독일 병정을 연상하
는 체질을 버리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정확성, 근면성, 질서존중 등 여러 면에서 자신들과 가장
비슷한 면을 지닌 민족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떨떠름한 감정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적지 않
은 영국 왕실이 독일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인데, 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절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영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길이다. 통일 이후 인구 8,000만 대국으로 팽창한
독일을 바로보는 영국의 시선에서 두려움 또한 제거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영국인들은 독
일,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탈리아인들은 신경질적이
고, 스페인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인식 정도가 고작일 뿐, 스칸디나비아, 벨기에, 네덜란드, 스의스
같은 나라는 아예 관심 밖으로, 별로 언급되는 일조차 없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영국연방
(Commonwealth of Nation, 과거에 영국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국가들로 구성된 연합체) 중에서,
미국인과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너무 천박하고, 캐나다인은 지루할 정도로 재미없는 사람들이고,
방금 돌려준 홍콩을 비롯한 모든 아시아 나라의 사람들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족속들이라 결
코 믿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도 영국인들은 점잖은
미소를 띠며 대하겠지만, 그들의 의식 밑바닥에 뿌리깊이 자리잡은 외국인 기피증과 외국인에 대
한 동정심(격하심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기피증과 불신은 영국 안에서
도 마찬가지로, 남북 잉글랜드 사이의 상호 불신과 기피 또한 심각한 지경이다. 잉글랜드인들의
지역감정은 런던의 북쪽 경계를 사이에 두고 남부와 북부로 크게 증폭된다. 남부 잉글랜드인들
의 눈에 북부인들은 허옇고 벌건 얼굴색의 털복숭이들로, 추운 날씨 속에서 거칠고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야만인들이다. 반면에 북부인들의 남부인들에 대한 반감도 대단하여, 북부의 모든 괴기
스럽고 잔인한 옜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예날 옛적 남쪽에서는...."
철저하고 청교도적인 생활양식
전세계에서 영국인들처럼 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양식을 존중하고, 전통적으로 짜여진 삶의
틀에 스스로를 맞추어 행동하며, 이를 긍지로 여기는 민족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다
른 민족과 달리 엄격한 생활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결코 여기에서 이탈하거나 바꾸려 들지 않고,
자식들도 이 규격에 맞추어 교육시킨다. 자신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이 규격에서 이탈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이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면 분노에 찬 참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외
국인의 입장에서는 영국적 생활양식을 인정하고 종중할 필요가 없을지 몰라도, 이를 무시했을 경
우에는 철저한 이단자로 배척될 뿐 아니라 반(反)문화인, 수준 이하의 인간으로 격하된다. 승자
가 패자로 둔갑하는가 하면, 패자도 이를 존중할 땐 승자 대접을 받는다. 영국적 생활양식을 이
해하려면 그들의 의식구조 저변에 짙게 깔린 청교도 정신을 주목해야 한다. 올리버 크롬웰의 철
권통치 기간 중 영국 전역에 강요된 절제, 근엄정신은 오늘날 영국인들의 생활과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바로 이러한 청교도 정신이 "침묵은 금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우리는 즐기
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철저한 자기절제 원칙이 되었다. 그래서 영국에서
흔히 자조적으로 인용되는 눈 가리고, 귀 가리고, 입 막은 세 마리의 원숭이는 영국인들의 절제된
행동원칙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영국인들의 생활양식은 다음 몇 가지 원칙 위에 그 틀이 짜여
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호들갑을 떨지 마라
영국인의 국민성을 상징하는 말로 'stiff' upper lip'이란 것이 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윗입술
을 떨지 마라'라는 뜻이다. 즉 턱을 앞으로 내밀고 윗입술을 떨지 않으면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
밀고 똑바로 선 모습. 윗입술을 떨지 않는다는 것은 경박하게 보이지 않도록 근엄한 표정을 지
으라는 뜻이며, 쓸데없이 수다를 떨거나 입을 벌려 갖가지 다양한 표정으로 내면의 감정표현을
드러내지 말라는 뜻이다. 굳게 다문 입은 절제된 내면의 상징인 것이다. 프랑스인들처럼 희로애
락의 모든 감정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손짓, 발짓까지 동원하여 별의별 표정을 다
지어가며 '호들갑 떠는' 것은 영국인들에겐 있을 수 없는 천박하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태도가 아
닐 수 없다. 감정을 의지로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영국인에겐 미덕이다. 능력
이라기보다는 의무겠지만 말이다.
지나친 감정노출은 금물
분수를 넘는 일,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삼가야 하는 것이 영국식 생활양식의 기본이다. 아무리
격한 상태라 하더라도 감정을 지나치게 노출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무리 기뻐도, 슬퍼도, 화가
나도, 즐거워도 절제된 행동과 표정으로 감정의 끝자락만을 희미하게 보여주는 것으로도 족하다.
술은 즐기되 지나친 음주는 안 되며, 공공석상에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젠틀맨이 취할 행동
이 아니다. 아무리 우스운 이야기를 들어도(물론 노골적인 표현이 아닌 은유적인 방식으로 애기
하겠지만)큰소리로 웃으면 천박한 짓이며, 자신이 지닌 작위나 학위를 거론하는 것도 지나친 행동
이다. 아무리 자랑스럽더라도 학위나 작위는 편지봉투 외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또 아무리 지
루한 얘기를 듣더라도 지루한 표정을 짓거나 아무런 화답도 하지 않고 덤덤히 앉아 있는 것도 신
사로서는 '지나치게' 상대방의 존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행동이다. 그래서 간간이 "oh, how
nice"라든지 "isn't it a shame?"(어째 그런 일이)이라는 말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기본 예의다.
추악한 승자는 패자로 인정한다
스포츠란 말은 운동경기를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태도, 예의, 매너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a
good sport'란 '멋진 사람' '멋진 행동'이란 뜻을 지닌 말로 영국사회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든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a good sport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
서 운동경기에서든 시험에서든 "Don't be bed sport"란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곧 페어플레이 정
신을 일컫는다. 승자든 패자든 양쪽모두 나름대로의 미덕과 겸손을 지녀야 하며, 이를 통하여 아
름다운 패자가 승자가 될 수도, 추악한 승자가 패자가 될 수도 있다. 승자는 패자에게 최대한의
겸손과 관용을 베풀어야 하고, 잘 싸운 데 대한 칭찬을 아껴서는 안되며, 이겼다고 노골적인 표정
이나 행동으로 기쁨을 나타내선 안된다. 승리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
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a bed sport'가 된다. 패자는 패자다운 겸손과 승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고, 승자의 탁월한 능력을 최대한 인정해야 한다. 복수를 다짐하며 이를 악무는 것은 'the
worst sport'가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테니스 경기로, 윔블던 구장 같은 경우 선수
는 물론 관중들까지 한없이 점잖음을 유지해야 한다. 이겼다고 길길이 날뛰는 선수는 찾아보기
도 어려울뿐더러, 그런 선수는 관중들의 경멸에 찬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영국
인들이 승부근성이 없는 민족이냐 하면 천만에 말씀이다. 삼각관계에서 애인을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테니스 경기에서 지는 것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게 영국인들이다. 다만 이를 표현하
지 않는 것뿐이다.
옛 것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집착
영국인들은 전통을 존중한다. 이는 우리도 들어 잘 알고 있는 얘기다. 그들은 어떠한 변화도
즉시 받아들이기를 꺼려 하며, 특히 현대의 감각적인 유행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과거의 전
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단 나빠진다고 생각하며(Different is worse), 변화를 요구할 때 가장 먼
저 나오는 질문은 "도대체 옛 것에 잘못된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이다. 이러한 영국인들의 전
통 존중, 옛 것에 대한 애착심 이면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 있다.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연한 현실인 영국의 사양화. 과거의 화려함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지만
영국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으며, 모든 세계는 자신과 영국을 축으로 돌아
가고 있다고 믿는다(믿고 싶어한다). 그런 만큼 전세계를 지배했던 지난날을 뼈에 사무치게 그리
워하며, 그런 시대를 이룩한 선조들에 대한 존경심과 자랑스러움은 그들이 남겨준 물건, 물려준
제도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되었다.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보아도 영국처럼 골동품상이 많고 또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은 찾아보기도 어렵고, 옛 가구를 몇대째 대대손손 물려주는 나라도 드물다.
영국의 고가구는 가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 선조가 물려주었기 때문에 일종의 고귀한 문화유산이
된다. 그러므로 결코 완전히 망가지기 전엔 버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흔히 근
검절약 캠페인에서 내세우는 절약정신이라기보다는 옛날에 대한 강한 향수가 더 큰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옛 것에 대한 애착은 영국인 가정에서 흔히 눈에 띄는 낡은 양탄자나
도자기, 가구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선조들이 남겨준 것이면 생
활양식이건 제도건 신앙적으로 따르는 게 영국인이다.
만반의 준비는 상식이다
차가운 돌 위에 앉으면 치질에 걸리기 쉽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갈 수
도 있는 일, 그리하여 의사, 간호사 앞에서 바지를 벗고 내복 차림으로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순간 꼬질꼬질한 내복을 입고 있다면 얼마나 곤혹스러울 것인가. 이럴 때를 대비하여 항시
깨끗한 내복을 입는 것, 이것도 상식이다. 이처럼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사전에 모두
점검하여 만반의 대비를 해야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상식이라고 영국인들은 믿는다. 트로이가 멸망한 것도 상식에 어긋난 작전 때문이었고, 영
국 함대가 스페인의 아르마다(무적함대)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도 상식적인 영국 참모진 덕이었
으며,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것도 정부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상식에
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틀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며, 지나치게 감정적인 접근은 금물이라는 의미다. 자연 정열적이고 과격한 행동이나 감정은 금
물이다 보니 밋밋하고 차갑고 무표정하며, 온갖 쓰잘데없는 잡동사니를 싸짊어지고 다니는 영국
이란 비아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신사는 언제나 우산을 들고 다닌다.
언제고 비는 올 수 있으며, 우산을 들고 다니는 편이 옷이 젖는 것보다 낫고, 이것은 역시 상식이
니까.
자연스러운 계급사회
현대가 아무리 민주주의 시대요 계급 없는 평등한 세상이라고 해도, 어느 사회든 지배계층과 지
배당하는 계층으로 구별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계층 간의 괴리는 일반
적으로 극히 부정적인 면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회갈등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
주주의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사회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훨씬 더 확
연한 계급사회인데도, 이러한 계급의 차이가 별다른 사회적 저항 없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들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계층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살아간다. 과거의 사회는
귀족과 약간의 기업자본가 중심의 중산층, 그리고 대다수의 노동자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중산층의 급격한 팽창으로 인하여 노동자 계급이었던 행정 . 관
리직 화이트 칼라, 기술자 등을 비롯하여 상인, 제조업자 또는 자영 중소기업인들까지 대거 신분
상승을 이룩함으로써 삼각형 구도는 귀족 1%, 중산층98%, 하류 노동자층 1%의 새로운 구도로
바뀌게 되었다. 이들 세 계급은 각기 귀족 및 거대기업가 등 상류계급, 절대 다수의 중산층, 그
리고 이른바 힘든 육체노동을 하며 주로 3D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 계층으로 나뉘며, 각 계급은
그 계급의 고유한 생활양식대로 차별화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영국 사회는 하류계급이 상류계
급인 양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스노비즘이 없고, 오래 전부터 계급 나름대로의 자연스러운 스타일
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다. 상류사회 사람들은 우선 옷차림부터 다르다.
유명 재단사들이 손수 지은 맞춤 양복을 잘 맞춰 입어, 옷차림만 보아도 상당히 고귀한 신분이란
사실이 한눈에 드러난다. 주로 교외나 지방의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저택에 살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며, 계절에 따라 상류사회의 '특권'인 여우사냥을 한다. 고래사냥을 못하도록 목청을
높이는가 하면, 모피제품을 입지 말자고 동물보호 캠페인에 앞장서는 영국이지만, 상류층의 여우
사냥은 사냥 차원을 넘어 이 신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전통이며 사회적 문화라고도 주장
한다. 1997년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물학대라는 이유를 들어 여우사냥을 폐지하는 정책을
내놓았으나 상류층의 강력한 반발에 무딪혀 표류하고 있다. 여우사냥을 금지하는 것은 곧 영국
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상류층은 언어의
경우에도 어휘와 표현에 있어 자신들만의 고유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R 발음의 경우
혀를 살짝 굴리는 듯하면서도 약간 콧소리가 들어가는데, 이는 여타 영국인들의 발음과 다르다.
영국인들은 한 인간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발음, 특히 억양에 대단한 가치를
둔다. 이른바 옥스퍼드 발음 또는 BBC 발음이라고 일컬어지는 표준 발음의 정확도뿐 아니라, 적
절한 어휘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속한 계급은 물론 교육 정도까지 대번에
판단하는 것이다. 가령 화장실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water closet(WC)으로 표현하며, 서구 사회
에선 주로 Clo(클로)라는 약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의 경우 상류층에서는 'loo'(로),
중산층에서는 'lavatory', 노동자 계급은 'toilet'이란 말을 쓴다. 그러니 영국에서 토일럿이란 말
을 쓰면 대번에 하류층 취급을 받게 되는데, 프랑스나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화장
실에 toilet이라고 붙어 있다. 중산층은 상류층과 전혀 다른 일개미족, 좋게 말해 나뭇가지 열심
히 물어다 끊임없이 집을 쌓는 비버족이다. 시간만 나면 담장을 고치고 정원을 손질하며, 수도꼭
지를 새로 갈고 선반을 달며, 문짝에 페인트 칠을 한다. 최신 소재로 된 디자인 부엌을 선호하
며, 옷차림도 유행에 신경을 쓴다. 아이들 교육에 대단히 관심이 많고, 시골을 동경하며, 평생 소
원이 정원이 딸린 아담한 오두막집(cottage, 아담한 단독주택)에서 사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출퇴근하느라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야 한다. cottage는 중상층의 상징으로, 영국 중상
층의 소원은 상류층이 아니라 중상층으로의 신분상승이며, 그렇게 보이려고 항상 자신을 관리한
다. 노동자 계급은 전혀 다른 생활문화를 지니고 있다. 일과가 끝나면 단골 술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TV 축구경기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하찮은 일에 내기를 거는가 하면, 생선튀김과
감자튀김(fish & chips, 영국의 대표적인 스낵)의 주고객이기도 하다. 이들의 언어는 은어와 속어
등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서 외국인들은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이러한 영국 사회의 계급의식은
술집의 구조만 봐도 금방 나타난다. Pub(public house의 준말)으로 불리는 술집은 대개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홀은 노동자 계급, 즉 서민을 위한 말 그대
로의 대폿집이다. 여기는 떠들썩하기 이를 데 없으며, 다른 나라와는 달리 웨이터가 술을 테이블
로 날라다 주지 않는다. 영국 술집에서는 테이블에 앉아 하루 종일 기다려도 결코 맥주 한잔 얻
어 마실 수 없다. 반드시 카운터에 가서 돈을 선불로 내고 짜주는 맥주를 손수 들고 와야 한다.
이 홀 옆에 붙어 있는 아늑하게 꾸며진 방은 중산층을 위한 클럽 룸이며, 2층에는 더 아늑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상류층을 위한 살롱이 있다. 지금은 아무나 들어가더라도 제지하지는 않지만
단골이 아닌, 특히 신분이 어긋나 보이는 사람이나 외국인이 들어가려면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한다.
어휘와 발음은 신분의 바로미터
영국은 큰 나라는 아니지만 오랜 역사를 지녔고, 그런 만큼 지방색도 강하며 자연 사투리도 심
하다. 영국에서 사투리를 쓰는 것은 창피한 일에 속하지 않는다. 사투리도 문화에 속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정확한 발음과 어휘 구사는 곧 말하는 이의 인격과 신분, 그리고 교육 수준을 가늠
하는 잣대가 되는 만큼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약 정확하지 않은 발음을 사용하거나,
억양 및 어휘 선택이 적절하지 못하거나, 같은 단어라도 신분에 걸맞지 않은 단어를 구사하는 사
람은 영국 사회에서 출세하기 어렵다. 고등교육을 받고 상류사회 출신일수록 단어, 어휘를 엄선
하여 사용하며, 영어 단어가 있는 경우 가급적 외래어를 쓰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물론 영
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마당이니 굳이 애국심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외래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겠
지만, 교육받은 영국인들에게는 외래어라는 말 자체부터가 거부감을 주는 제노포비즘
(xenophobism,외래문화 기피주의)인 셈이다. 신분에 맞지 않은 어휘나 외래어 남발은 그네들에
겐 '귀에 대한 폭력'이다.
테이블 매너는 인격의 바로미터
우리는 자주 예절과 에티켓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다른 것이
다. 예절이란 가령 축구선수에 비유할 때, 신사적인 경기를 한다든가 상대방 선수에게 폭력적으
로 대하지 않는 등의 경기 태도를 일컫는 데 비하여, 에티켓은 축구 경기의 규칙과 같이 일상 생
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인 것이다. 예컨대 골라인 아웃 되면 골킥, 패널티 에어리어에서 반칙을
범하면 패널티킥을 선언하듯, 에티켓이란 포크는 왼손, 나이프는 오른손에 쥐는 것을 비롯하여,
식사 중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을 때 오른손은 식탁 밑으로 내리는 등(프랑스식은 언제나 두 손
다 테이블 위에 놓아야 한다) 작게는 식사 에티켓부터 시작하여 작별인사 하는 법, 편지봉투 쓰는
법에 이르기 까지 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지켜야 하는 생활의 규칙이다. 식사 때 에티켓을 테
이블 매너라고 하는데, 영국은 세계에서 테이블 매너가 가장 엄격한 나라이며, 이는 한 인간의 인
격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수프 접시를 기울일 때 수프가 튀지 않도록 앞쪽을 들고 기울여야
한다든가 나이프를 연필 잡는 식으로 쥐면 안된다는 등, 까다롭고 복잡한 테이블 매너를 철저히
다지는 게 영국인들이다.
옷차림은 교양의 바로미터
옷이란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 것이지만, 영국에는 옷차림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한다. 그
러므로 옷차림은 곧 그사람의 인격이자 신분이고 교양의 바로미터가 된다. 상류계급의 패션 감
각은 영국 신사(젠틀맨)라는 표현에 걸맞는 전통적 감각을 중요시한다. 젠틀맨이란 지방 영토(젠
트리)의 영주들을 일컫는 말로, 영국 상류층의 본거지가 주로 지방인 만큼 자연의 색조와 조화를
이루면서 평민들과 차별화된 옷차림이어야 한다. 갈색과 회색이 주조색을 이루되 정장이 아닌
평상복은 그린 색조를 즐겨 택한다. 우리나라의 어느 옷 광고에 인용되었듯, 영국에서의 의상은
"새로 사입은 옷은 1년 된 듯, 1년 된 옷은 새옷인 듯" 해야 하며, 갓 사입은 티가 나는 패션은
한마디로 젠틀맨에 걸맞지 않은 '촌스러운' 옷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싫증이 나지 않는 패션이
어야 한다. 유행에 다르지 않으면서도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즉 언제나 유행이 되는 그러한
패션에다 품위까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버버리, 닥스 등 유행을 타지 않고 싫증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유행이 되는 브랜드는 거의 모두 영국산임을 상기하면 이해하는 데 도
움이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행해지는 티 타임
매일 오후 4~5시면 전국민이 어김없이 치르는 의식, 티 타임. 이는 일과를 잠시 멈추고 가볍게
차 한잔 마신다는, 차 한잔의 휴식의 차원을 훨씬 넘어 마치 이슬람교도들이 하루 다섯 번 정확
히 메카를 향해 경배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생활의 의식이다. 영국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티 타임엔 예외가 없다. 영국인들이 말하는 티는 주로 인도나 스리랑카 차이며, 조금 생
활수준이 높은 가정에서는 중국산 차를 즐겨 마신다. 일본에서도 다도(茶道)를 일본 정신을 상징
하는 문화라 하여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듯 까다롭지만, 영국의 다도 역시 엄격한 규칙에 따라 이
루어진다. 우선 사기 찻주전자를 데운 다음 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는 몇 분 동안 차를 우
려낸다. 이때 너무 빨리 따르면 싱겁고 너무 늦게 따르면 진해지므로 '적당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찻잔에 밀크를 따르고 차를 부은 다음 기호에 따라 약간의 물을 부어
연하게 한 뒤 마시기도 한다. 맨 마지막에 설탕이나 레몬 조각을 넣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순서가 절대 뒤바뀌면 안된다. 이러한 티 타임 전통은 영국 내에서는 물론 영국인이 가는 곳이
면 어느 곳이나 따라 다니는 가장 영국적인 의식 중 하나이다.
신체 접촉은 질색
영국에서는 가급적 신체 접촉을 피하라. 영국 민족은 남의 신체와 접촉하는 것을 극히 꺼린다.
이 습관 도한 청교도 정신과 관계가 있는 것일 테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끼리 툭툭 치고받는 장난이나 남녀끼리 부둥켜안고 쓰다듬는 장면은 보기 어려우며,
이런 장면을 보는 영국인들 또한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것이다. 악수할 때에도 손을 오래 잡고
있지 않는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How do you do?"란 짤막한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
을 놓아 버리니까. 뺨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지만 있을 수 있는 인사법이다. 그러나
뺨에 입술을 대고 '침을 묻히는' 비위생적인 키스가 아니라 미스 키스(miss kiss)라 하여 키스하
는 척하면서 볼에 대지도 않은 채 귀 근처에서 '뽀!' 소리를 내는 금붕어식 키스를 하는 것이 예
의다. 프랑스에서는 양 뺨에 세 번, 심지어 네 번까지 키스를 하지만, 영국에서는 남녀가 인사로
키스할 경우 아무리 미스 키스라 해도 두 번 이상 했다간 큰 낭패를 당하는(?) 여성 쪽은 딱 한
번만 계산하고 있으므로 한 번 뽀! 소리가 나면 당연히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버리기 때문에 다른
뺨에 키스하려던 남자의 입술과 여성의 입술이 정면출동(!)하여 진짜 키스가 되어버리는 일대 사
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입장이 대단히 곤혹스러워진다. 옆에 선 남
편은, 내색은 않지만(해도 안되지만)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것은 고사하고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성폭행(!)에까지 해당되는 것이다. 남자끼리의 포옹은 골인 후 축구선수들이나 하
는 것이지 영국인들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으며, 더더구나 남자끼리의 키스란 동성연예자가 아
니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십여 년 전 구소련의 수상 브레즈네프가 동독의 호네커와 만나 뜨
거운 구구(口口)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TV에 방영되었을 때, 열렬한 공산주의식이자 동유럽식 사
나이들의 인사법에 대해 잉글랜드 섬 전체가 아연실색, 몸서리를 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신
체접촉은 오직 만원버스나 지하철 등 피할 수 없는 경우에 국한되며, 이 경우에도 비록 몸은 닿
더라도 눈길까지 마주쳐서는 안된다. 의도적으로 눈길을 맞추면 호모나 치한, 둘 중 하나로 의심
을 받는다. 그러므로 영국에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우리 식으로 어깨나 팔을 툭툭 치는 등
의 애정 표시는 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영국인들은 모든 인관관계에서 직접적인 감정표
출은 최대로 억제하며, 신체의 경우 더더욱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섹스는 내면의 적
그렇다면 영국인도 아이를 낳는가? 물론 낳는다. 그러나 그들이 섹스를 통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성에 대해 엄격하다. 겉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섹스에
대한 영국인의 견해는 다른 민족과 달리 엄격하고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다른 민족에겐 인생의
즐거움인 섹스가 영국인들에게는 '내면의 적'이다. 이는 허리띠 아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못하도록 엄금했던 크롬웰 시대의 청교도적 사고방식의 영향이 크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아주
다르다. 그래서 기성세대들(특히 나이가 많을수록)과 견해차이가 극심하여 세대갈등의 주요 요인
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섹스에 대하여 보수적인 나라인 만큼 섹스에 관한 학문적 연구도 가장
뒤쳐저 있으며, 자연 아직도 섹스에 관한 미신, 오해, 편견, 터부가 활개를 치고 있다. 아직도 많
은 사람들이 섹스를 종족번식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니 성행위에 대한 편견이 사
라질 리 없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위에 여자는 아래에'라는 고정관념이 굳게 자리잡고 있다고
어느 통계자료를 밝히고 있다. '불은 반드시 끄고'라는 전제도 물론 붙는다. 아마 이웃 나라 사
람들이 영국인을 조롱하기 위해 '조작한' 것인지, 사실이 그런지는 몰라도 영국인들은 섹스를 할
때까지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고 한다. 즉 남자는 여성이 무거워하지 않도록 여자위에서 팔꿈치
로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며, 끝난 뒤에는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말을
여성에게 해야 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방문(?)'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
대신 판치는 옐로우 저널
이처럼 섹스에 대해 엄격한 척(?)하지만 인간의 본능과 본성이 영국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있
을까? 그래서 영국인들은 남의 정사 훔쳐보기(voyeurism)의 챔피언들이다. 왕실이나 유명인사의
스캔들은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최대의 관심사로, 선정적인 흥미 본위의 잡지들은 매일같이 주
먹 같은 활자로 끈질기게 추적한다. 이를 보며 킬킬대고 수군대는 것이 영국인들의 국민 스포츠
처럼 되어, 영국 유명인사들은 눈에 불을 켠 기자들의 사냥감으로 24시간 감시를 당하다시피 한
다. 아마도 다이애나비가 이혼을 하지 않고 전혀 스캔들도 없는 그리스 출신 스페인 왕비 소피
아 같은 여성이었다면, 그토록 집중적인 영국 매스컴의 연속 드라마 주인공은 되지 않았을 것이
며, 그녀가 입었던 옷 한 벌이 100만달러(!)에 경매되는 일도 어뵤었을 것이다. 섹스와는 한참 거
리가 있는 듯한 영국인들 사회에 그 숱한 포르노 잡지와 사도마조 (sadomazo, 사디즘, 마조히즘)
화보집이 깔려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인들은 자신은 엄두도 못 내는 변태행위
사진을 열심히 뒤적이면서 지금도 말세를 한탄하고 있다.
넘치는 예의 넘치는 교양
영국에서는 아이들 교육의 제1장이 "Mind Ps and Qs!"이다. 이는 "Please saying and Thank
you saying, Excuse me saying"을 줄인 말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뭐 그리 부탁할 게 많고 뭐
그리 감사할 일이 많으며, 뭔 죄를 그리 많이 지었나 싶을 정도로 이 말을 자주 그리고 연속해서
몇 번씩 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많이 사용해도 좋으며, 적게 쓸수록 예의 없고 교양 없는 인
간처럼 취급된다. 영국 사회는 분명히 대륙과 판이하게 다르다. 생활양식, 사고방식, 표현방식이
'영국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런 영국인들이 미국 사회의 모
태를 이루었고, 글로벌화하는 세계문화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 문화를 통해 서구의
대표인 듯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 그것은 영국은 유럽의 별종이라는 것
이다.
영국의 역사
세계제국의 여명과 황혼
영국의 역사는 세 가지 면에서 주목해야 할 특징을 지닌다. 첫째, 비록 거의 모든 유럽 북방민
족이 이 섬을 유린했지만, 1066년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이민족의 침략을 당하지 않았다는 점. 둘
째, 1215년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서명 아래 영국은 전세계에 의회민주주의제도 도입의 효시가
되었다는 점, 셋째, 이젠 비록 미국에게 세계의 주도권을 넘겨 주고 사양길을 걷는 노제국이지만,
과거 식민지국가들의 염합인 영연방의 맹주로서 아직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점이
다.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라고 명명한 이 섬에 온 로마인은 AD 400년경까지 머물며 로마문명
을 전파했고, 북방 스코트족으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은 그대로 지금까지 영국(잉글랜드)과
스코틀랜드의 경계선이 되었다. 로마인이 물러간 뒤 브리타니아 섬은 수없이 외적의 침입과 약
탈의 표적이 되었는데, 이들과 맞서 용감히 싸운 브리튼족의 황약은 훗날 많은 영웅담과 전설을
창조해 냈다. 8세기에는 작센의 왕 오파(offa)가 섬 서쪽에 건너와 서쪽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 이것이 곧 웨일스와의 경계이고, 웨일스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금까
지 유지하고 있다. 1066년, 브리타니아 섬은 노르만디공 윌리엄(정복왕 윌리엄)에게 정복되고, 영
국은 노르만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가혹한 세금과 십자군 전쟁 등으로 불만을 품은 귀족들
은 국왕을 위협하여 오늘날 민주주의의 주춧돌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에 서명
시켰다(1215). 50년 뒤, 지방귀족(Gentry)들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기구인 'House
of Commons'를 설치하였고, 중앙 귀족들도 역시 'House of Lords'를 구성함으로써, 영국에는 이
제도가 하원, 상원으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영국 역사의 큰 전환점은 헨리 8세 때였
다. 그는 자신의 이혼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자 로마교황과 결별, 스스로 수장(首醬)이 되는 영국
교회(성공회 : Anglican Church)를 설립하고, 이에 저항하는 카톨릭교도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하였으며,카톨릭교회재산의몰수는물론 대대적인 파괴를 감행하였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
시대는 영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던 비약기였으면, 영국 전성기의 막이 열리던 시대였다. 그녀는
함대를 양성하고 해군을 키워 당시 최강국이었던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고(1588) 유럽 최강의 해
상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로부터 스페인, 포르투칼 등 한 발 앞서간 식민지제국은 물론 프랑스와
도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을 본격적으로 벌이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영국에는
큰 혼란이 찾아왔다. 강력한 권력을 구사하려는 왕과 이를 저지하려는 의회가 정면충돌, 왕당파
(Cavaliers)와 의회파(Roundheads)의 내전으로 이어지고, 의회파의 승리로 국왕은 참수되었으며,
의회파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이 호국경이 되어 전권을 장악했다. 크롬웰 시대의 영국은 철권독
재에 의한 공포정치에 떨어야 했고, 크롬웰은 영국 사상 유일한 독재자로 기록된다. 크롬웰이 죽
은 뒤 왕권은 복귀되었지만 의회의 충돌을 막기 위해 영국은 입헌군주제로 변신한다. 1679년, 인
신보호법이 제정되는데, 이는 왕권 남용을 막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3대 헌장의 하나다. 이 와
중에도 영국 함대는 계속 해외에서의 경쟁자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1763년에는 인도 동부와 북아
메리카를, 177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소유하는 등 영국 국기 유니언 잭을 전세계에 나부끼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의 시련기이자 더욱 그 세력을 힘차게 뻗는 계기였다. 1850년, 넬
슨 제독은 나폴레옹의 함대를 트라팔카르 해전에서 격멸시킴으로써 영국 함대가 세계 최강임을
괴시했고, 1815년, 웰린턴 장군은 프러시아와 연합,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대군을 무찔러 한 시
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폴레옹을 무찌른 이후의 영국 세력은 하늘을 찌를 듯하여 해외에서는
그 어느 나라도 영국 해군에 대적하지 못했고, 유럽 대륙에서도 영국은 전쟁 뒤의 유럽 세력 판
도 재편성 과정에 주도권을 행사했다. 18세기에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을 기폭제로 일
어난 산업혁명은 상품의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고, 원료 공급, 상품시장을 위한 식민지 쟁탈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막강한 해군력을 뒷받침으로 영국은 아프리카 대륙, 중동, 아시아 할 것 없
이 전세계에 방대한 식민지를 경영하게 되었고, 19세기 말~20세기 초,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영국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잇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새롭게 판이 짜인 사회는 노동
자계급과 노동조합이라는 새로우 저항세력과 맞부디치게 된다.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착취와 비
인간적 노동조건은 그들을 단결시켰고, 투쟁의 대열에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첫
대표를 의회에 입성시키는 것은 1892년에야 가능했고, 노동당이 처음으로 집권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32년 뒤인 1924년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민족자주독립의 소리가 높아지고 영국의 식
민지들은 독립을 요구하며 투쟁을 가속화했다. 이 요구를 억지로 누르고 맞은 제2차 세계대전!
영국의 식민지들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맞서 싸우는 영국에 큰 도움이 되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므로, 1945년, 2차대전이 끝나면서 차례차례 독립시켜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거에 전세계적으로 방대한 식민지를 상실한 영국은 전쟁 승리의 주역이면서도
차츰 세계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미국의 패권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971년, 영국은 아시아에선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는 아시아의 주도권을 미국에게 넘긴다는 선언이었으며,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은 영국이 소유한 아시아 최후의 식민지가 사라진 것으로, 이제 동아시
아와 영국은 170년 전의 역사로 되돌아간 것이다. '젖과 꿀을 갖다 바치던' 식민지의 상실은 당
연히 영국 경제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영국 경제가 급격히 약화된 위에, 식민지 분쟁에 개입함으
로써 영국의 경제난은 더욱 가중되어 갔다. 1980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이 등장하여 어
느 정도 경제가 회복되는 듯했고, 그 뒤 영국 정부는 적극적인 시장경제, 개방경제와 해외기업의
유치 등 경제활성화 노력을 거듭하여, 90년대 들어 영국 경제는 서서히 상승 곡선을 그리며 체질
개선을 해나가고 있다. 영국 역사, 영국 문화의 의미는 영국 자체 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영국에서 건너간 영국인들이 미국을 영국식으로 건설했고, 오늘날 미국은 절대 강대국으로 세계
를 지배하고 미국화해 가고 있다.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영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
면 안된다. 여기에 바로 거대한 날개를 접은 독수리가 한 마리 비둘기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역사, 영국의 역사를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도이칠란트
게르만 민족의 본고장, 독일
베토벤, 괴테, 칸트, 하이네 등 추상적으로만 알려졌던 독일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
작한 것은 1960년대에 우리나라 간호사, 광부들이 그곳에 진출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간간이
독일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와 갖은 분단국가로 이데올로기 대결을 하고 있다는 점에
서, 그리고 2차대전의 패망을 딛고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나라라는 점에서 일종의 동료의식
같은 것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선망의 감정을 느끼는 '먼 나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던 독일
이 통일을 이룩하자 통일을 앞둔 우리에게는 우리보다 한 발 앞선 '개인교사' 격으로 다가왔고,
유럽최강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EU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세계 경제판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독일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는
있지만 독일은 아직도 우리에겐 편린 같은 정보만이 알려져 있는 추상적인 나라일 뿐이다, 유럽
이라는 대륙이 전반적으로 그렇지만. 몇 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한 백인 세계는 라틴족, 슬라브
족, 게르만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백인 세계에서도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종이 바로
게르만족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라틴계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주도권을 잡
고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나가는 계층은 주로 게르만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다. 또한 유럽뿐
아니라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또 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도 사실상 게르만계와 그
후예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인류 문명과 역사에서 게르만족은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민족임이 분명하다. 독일은 그 게르만 민족의 본고장이다. 나라 이름만 하더라도 '게르만
족의 나라'(Germania)라는 뜻의 Germany이며, 독일인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지칭하는 도이칠란
트는 게르만족 가운데 중심이 되는 도이치(Deutsch)족의 나라라는 뜻이다. 따라서 독일인과 독
일에 대한 이해는 백인사회의 근본 틀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역사가
진행되면서 지역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타민족과 융화되는 과정에서 다원적인 문화가 형성되었
다고는 하지만 게르만족의 기본적인 특성은 역시 독일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인과 그 이웃들
분단 45년 만에 재통일을 이룩함으로써 독일은 마지막 적대관계였던 동 . 서대립마저 극복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우방'으로 둘러싸인 나라가 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이래 끊임
없이 벌어졌던 전쟁, 전 인구의 3분의 1이 줄어드는 대참사였던 30년전쟁(1618~1648), 나폴레옹
전쟁과 최초로 프랑스를 꺽은 프러시아-프랑스 전쟁,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등 독일은 항상 적
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근대 이후엔 주변 국가들에게 가장 두려운 적 그 자체이기도 하였다. 그
러나 오늘날 국가이성 시대의 독일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이며, 전쟁에 대해 가장 큰 혐오와 공
포를 지니고 있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이다. 또한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통일을 이룩하면
서 일약 8,000만의 인구 대국(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이 되어, 이웃 국가들의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도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는 '멋대가리 없는' 국민이기도 하다. 융통성
없는 로봇 같은 민족, 하수구를 흘러 내려가는 구정물 소리 같다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언어, 멋진
자동차를 뿜어내면서도 다른 차를 앞지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오만 등으로 백안시당하지만,
외국인들이 보는 독일인은, 물론 표현하지는 않지만 거의 진 적이 없는 축구팀처럼 결코 꺾기 어
려운 민족이라는 경외감의 대상이기도 하다. 질서와 제도를 무엇보다 중요시하여 조직적이고 공
사가 엄격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는 평을 받는 독일인들, 외국인들
한텐 맥주와 소시지를 즐기는 '병정' 같은 국민으로 보이지만 한번 사귀어보면 인간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느낄 수 있다. 즉 말 그대로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별하지만 한편으로
는 또 다른 세계를 지녔다는 의미이다. 이들이 철저하게 원칙을 따지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직업, 공무, 비즈니스, 사무 등과 관련된 일이고 친구 및 가족 관계나 여가시간에는 상당히
융통성이 있는 너그러운 면을 지니고 있다. 영국인들은 독일인을 '대륙'(유럽)에서 가장 쓸모 있
는 민족으로 꼽는다. 영국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굴복시키기는 했지만 결코 만만
히 볼 수 없는 '야만인'임을 확인했고, 철저하고 조직적이며 능률을 중시하는 독일의 민족성이 자
기네들과 가장 흡사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영국의 대중신문들은 독일
인들을 맥주와 소시지만 먹는 야만인으로 즐겨 표현한다. 독일인들은 이런 영국인들의 멸시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유대인 학살이라는 원죄 때문에 타민족에 대한 공격을 크게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여서 그저 떨떠름한 눈으로 흘겨보기만 할 뿐이다. 다만 영국인들이 섬겨온 왕 중에 얼마
나 많은 왕이 독일에서 건너갔는가를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는 데 대해 돌아서서 혼자 빙그레 미
소짓는 것으로 자위할밖에.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증오는 정말 대단했다. 영국에 대한 감정이
경제적 경계심이라면 독일에 대한 것은 '증오' 그 자체였다. '위대한 프랑스'가 역사적으로 치욕
적인 패전을 겪어 수도 파리를 점령당한 것은 중세기 백년전쟁 이후 1870년, 비스마르크의 프러
시아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이 치욕의
역사가 1940년 히틀러에 의해 반복되자 프랑스인들의 독일 증오는 그 절정에 달해 파리가 연합군
에 의해 해방되자 나치 협력자에게 무자비한 보복을 가했다. 그러나 2차대전 후 반세기가 지나
는 동안, 두 나라는 유럽 건설의 쌍두마차로 긴밀한 협조를 해오는 한편, 두 나라 지도자들의 현
명한 행동으로 적대감정은 크게 줄었고 진정한 우방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관계가 진전되었
다. 그러나 여기에는 독일이 프랑스를 문화국가로 인정하여 고개를 숙이는 겸손함을 보여주었기
에 망정이지, 만약에 독일이 자신의 문화를 세계 으뜸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면 두 나라의 적대
관계는 결코 청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 경제적으로 두 나라 사이가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프랑스인들은 번번이 깨지는 축구처럼 독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항상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이
탈리아인은 모든 면에서 독일을 좋아할 수 없는 나라로 생각한다. 특히 문화적으로 '깔볼 수밖에
없으며' 또 너무 멋대가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뇌물 없이도 모든 일이 제대로 굴러가는 독
일 사회는 이탈리아인들에겐 영원한 불가사의다. 바로 이웃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이라면 넌더
리를 낸다. 아주 멀리멀리, 가능하다면 남극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싶은 나라다. 같은
핏줄인 게르만족이라고 해도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의 국민성은 달라도 너무 다른 탓에 결코 좋
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수백만 명의 독일인이 와서 떨구고 가는 엄청난 마르크 때
문에 대놓고 오지 말라고 밀어낼 수도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에 반해 독일인이 이웃을 바라보
는 시각은 비교적 겸손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눈엣가시와 같
이 적들의 편에서 주도권을 발휘했던 영국은 지고 난 전쟁, 그것도 결코 정당한 이유로 일으켰다
고 할 수 없는 전쟁 때문에 미워할 수만은 없는 나라이다. 오히려 영국은 모든 면에서 게르만
민족의 속성하고 비슷한 행동을 취하는 모범국가로 보이며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독일인
이 존경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나라다. 특히 19년이라는 전후 최장수 수상이 건재하는 보수적인
독일의 눈에는 역시 십여 년의 토리 정권을 밀어내고 승리한 영국의 노동당이 새로운 시대의 장
을 여는 기수로서 존경과 찬탄의 대상이며, 특히 영국인들의 절제 있는 태도와 예의범절은 귀감
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과 진심 없는 호들갑으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실용적인 사고와 행동은 돌일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전쟁에서 진 나라답게 전체 유럽에서 가장 미국화된 나라가 독일이다. 이
는 미국 영화 수입국가 1,2위가 일본과 독일이라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독일은 인구밀도가 극
히 높기 때문에 광활한 서부로 상징되는 넓은 대륙 미국에 대한 동경심이 대단하여 말보로 사나
이가 멋진 사나이의 대명사로 비칠 만큼 친미국적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과 뿌리깊
은 문화의식 속에는 미국 문화의 천박함과 경박함에 대한 거부감 도한 적지 않다. 독일인들은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일종의 '동료의식'을 느낀다. 이탈리아인들은 결코 그렇게 느끼지 않지만.
왜냐하면 가깝게는 2차대전 당시 동맹국으로 함께 싸웠으며, 멀리는 같은 시기에 국가통일을 이
룩한 역사(이탈리아 1870년, 독일 1871년)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문화와 요리,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은 독일인을 열광시켜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가 마르크를 뿌리고 돌아
온다. 그러나 '잠깐' 다녀올 만한 나라이지 결코 가서 살고 싶은 나라는 아니다. 엉망진창인 질
서의식, 풀어질 대로 풀어진 생활방식이 잠시 경험하기엔 환상적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독일
인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대한 돌일인의 정서는 크게 두 부류로
갈라진다. 하나는 이른바 프팔코필리아로 불리는 열성적인 프랑스 팬이고(국경지대일수록 많음)
다른 하나는 제멋대로이고 저 잘난 척하는 프랑스인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부류이다. 이웃 민족
가운데 그래도 독일인들이 인정하는 사람은 스위스인들이다. 비록 그 사투리나 편협한 지역성으
로 웃음거리가 되기는 해도 스위스인들이 지닌, 독일인을 훨씬 능가하는 완벽주의와 철저함, 정확
성, 질서, 청결은 독일인의 찬탄과 존경을 금치 못하는 요소들이다. 또 스위스와는 한 번도 전쟁
을 해본 적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스위스를 미워할 이유가 없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베를린 장벽보다 높은 오시와 베시의 갈등
통일독일 이후 독독문제, 즉 동 . 서독 간의 문제가 새로 등장했다. 1990까지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사실상 외국으로 존재했던 구 동독이 어느 날 아침 '우리나라'로 둔갑해 버리자, 자연히 두
지역 사이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통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국을 둘로 가르는
장벽이 독일 민족의 눈엣가시였으나, 장벽이 허물어지자 불현듯 옛날이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양쪽 지역 사람들 머리에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서독인들은 좀더 큰 시장을 원했고, 동독은
파리 여행을 할 수 있는 서독 마르크를 원했기에 동 . 서독은 서로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통일비용이 그렇게까지 많이 들어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1마르크가 채 안되
던 휘발유 값이 60% 이상 오르고(그중 대부분을 통일비용으로 충당)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동독
지방에 돈을 퍼부어 대도 동독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동 . 서독 수준 평준화 요구로 날로 높아만
간다. 오시(Ossi, 구동독인에 대한 속칭)와 베시(Wessi, 구서독인에 대한속칭)로 양분된 두 지역
주민들의 갈등은 아직도 베를린 장벽보다 더 높게 자리잡고 있다. 베시는 모든 오시가 게으르고
불평불만에 가득 차 있으며 분수도 모르는 채 끝없이 베시들 호주머니만 노리고 있다며 화가 나
있고, 오시는 모든 베시들이 사기꾼이며 자신들을 2등 국민 취급하며 멸시한다고 분개한다. 이
두 주민들 사이에 자리잡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라질 날은 아직도 요원하다. 독일의 통일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좀더 현실적인 길을 찾도록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절대 안 통하는 적당주의
독일어를 읽기만이라도 배워본 사람은 우선 '정직한' 읽기에 대단히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알파벳 발음대로, 씌어진 그대로 읽으면 되지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au, eu 등의 예외 같은
경우도 있으나 읽는 방식이 확실해서 결코 예외일 수 없고, 예외로 읽히는 단어는 외래어 뿐이다.
Walk(걷다)의 영어발음은 '워크'로 l자가 묵음이 된다. esprit란 프랑스어는 '에스프리'로 t자는 발
음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을 독일인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어째서 써놓은 글자를 읽지 않
는 것인가! 지나치게 원리원칙에 집착하는 융통성 없는 사고지만, 그래서 적당적당 살아가는 사람
들에겐 너무 답답해 견딜 수 없는 사고지만, 여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예외투성이 사회, 적당
주의 사회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대한 엄격함은 독일인들의 철저한 준법
정신에서도 나타난다. 법을 정해 놓고 그 법을 따르는 한 이 사회에서 인간은 자유롭다. 이렇게
엄격한 법의 준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철저한 법과 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완벽
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연 여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고 인간의 행위를 모두
법으로 규정해 놓을 수는 없는 만큼,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독일 사회의 경우 허가되지 않은
것 외엔 모두 금지되어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이는 융통성을 중요시하는 프랑스 사회와 크게 달
라 금지되어 있는 것 외엔 모두 허가되어 있는 사회의 반대 개념이다. 즉 화장실이라고 '허용'된
장소 외에는 절대 용변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 독일 사회라면, '이곳에서 소변을 보지 마시오'란
특별한 표시가 없는 한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아도 되는 곳이 프랑스 사회다. 비록 여기에는
'상식'이라는 기본적 판단 기준이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이처럼 원칙을 중시하는 사회인 만큼
독일에서 적당주의란 결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전에 '우연'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날림'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위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외국의 사고들이 이들
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독일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함을 중요시하는 사회다.
'횡재'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모두가 광부(鑛夫)와 같은 정신으로 파낸 만큼의 석탄만 얻
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기대하는 유일한 횡재는 복권뿐으로 평생 푼돈을 투자해 복권을
사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스페인, 그리스같이 열광적으로 복권을 사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원칙
을 존중하고 철저함을 중요시한다는 전제를 깔면 그들의 사고를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
독일인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에 "알레스 인 오르트눙"(Alles in Orenung)이란 게 있다. 말
그대로 옮기자면 모든 것이 질서 속에 있다, 즉 모든 것이 정상이며 아무 문제 없다는, 영어의
OK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만큼 질서는 그들에게 중요하다. 이 질서의 의미 속에는 모든 것의
긍정적인 배열과 효율성, 조직능력, 청결, 정확성, 완벽성 등이 어우러져 마치 깨끗이 정돈된 책상
과 같이 만사가 잘 처리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독일인의 질서에는 적당하고 순수하고
예측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가령 정치적 질서란 정정당당하고 부정부
패는 물론 음모나 음해가 개입되지 않은 깨끗한 정책대결과 제시된 정책이 확실히 시행된다는 보
장과 가능성이 예측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그들의 눈에 한국 정치는 혼돈 그 자체로
비칠지 모른다. 사실 독일 정치가 전세계에서 부정부패와 스캔들이 가장 적은 깨끗한 정치로 인
정되는 것도 원리원칙과 질서를 중요시하는 독일의 국민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
일의 기계부품, 특히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계는 확실하게 작동해야
기계다. 구입한 지 여섯 달도 못 돼 고장이 나는 기계는 소비자를 화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사
회질서, 경제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다. 이런 날림으로 적당히 만든 기계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청소가 안된 집, 쓰레기로 뒤덮인 거리, 닦지 않아 더러워진 차도 질서에 어긋나는 것으로, 독일
인들은 그냥 보아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집이건 거리건 자동차건 언제나 쓸고 닦고 광을 낸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거리와 가정집을 독일(스위스도)에서 볼 수 있는 데서 증명된다. 모
든 것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며 이유 없이 위치를 옮겨서는 안된다. 유능한 인재가 지장을 자주
옮기는 것은 나라에 따라 능력(커리어)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독일에서는 극히 부정적인 시각으
로 바라본다.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마구 변화시킴으로써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독일
가정을 방문해서 옷장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내복, 외출복,
식탁보, 침대 시트 등 모든 것이 깨끗이 다림질된 상태로 종류별로 분류되어 있다. 더구나 송곳
처럼 각지게 접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은 군대의 사물함을 방불케 한다. 독일인들은 질서
파괴 행위를 보아넘기지 못한다. 교통신호를 위반하거나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치면 경찰에 적
발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신고를 한다. 질서를 어기는 행위는 곧 자신이 지키는 질서에 대한
파괴이며, 자신의 권익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질서를 존중하는 만큼 다
른 사람도 질서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한다. 이런 독일인들을 프랑스인들은 오죽하면
'8,000만의 경찰'이라고 비꼬기까지 했을까.
극도의 두려움은 극도의 부지런함으로
고대 그리스를 위대하다고 하는 이유는 서구 사회의 기본 틀을 짜놓은 철학과 민주주의의 싹 때
문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사회의 민주주의란 귀족민주주의로 오늘날 애기하는 시민민주주의
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적 민주주의란 인간의 차등을 인정하는, 즉 노예계
급을 인정하는 귀족들 간의 평등을 뜻한다. 그리스 사회는 자유로웠든 민주생활을 누렸든 간에
귀족 및 시민계급과 오로지 명령 속에 살아야 했던 노예계급, 이렇게 두 계급으로 양분된 사회였
다. 이에 비해 게르만 사회는 크게 달랐다. 이른바 종사(從使)제도라 하는 다단계 계급사회로,
가장 기초 단위인 작은 부락부터 서열이 분명한 지배자와 복종자, 상관과 부하로 조직되어 사람
과 사람 사이에 서열이 있었으며, 이 조직이 확대되면서 부락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계급 피라
미드가 형성되었다. 게르만족은 그리스식 전통을 이어받은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 전역에
수많은 게르만 국가들을 일으키면서, 로마의 노예제도를 양분체제와 일부 귀족이 광대한 영토를
관리할 수 없는 데서 시행된 일종의 위탁관리제도 (은급제도), 그리고 게르만적 다단계 종사제도
를 결합하여 이른바 봉건제도를 성립시켰다. 봉건제도는 종사제도의 최말단 계급에 속해 있긴
했으나 동질(同質)의 사회구성원이었던 농민계급을 그리스, 로마 식의 노예계급으로 전락시켜 농
노로 만들었다. 이러한 봉건제도의 특징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농노, 즉 일반 주민들에겐 무조
건적인 절대복종을 강요하였고, 최고 지배자를 장점으로 말단 기사에 이르기까지 계단식 계급에
속하는 귀족들에게는 직속상관에 대한 계약적 복종을 요구하였다. 프랑스를 출발점으로 하여 구
축된 절대왕권은 귀족들을 관료화 . 신하화함으로써 지배 . 복종 관계를 더욱 강화했고, 이러한
관계는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급과 혁명에 의해 이른바 혈통적 민주주의(귀족 핏줄을 물려받은 자
들만이 누리던 평등과 자유로 그리스 . 로마 시대부터의 전통)에서 시민민주주의 시대로 대체되어
왔다. 이 와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봉건제도를 유지한 나라가 독일이었고(1871년 도이칠란트로
통일되기 전에는 프러시아를 비롯, 여러 개의 봉건국가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철저한 탄압 아래
역사를 통해 혁명다운 혁명 한 번 일으켜 보지 못한 국민이 독일 국민이었다. 질풍노도 시대, 시
민대혁명 시대였던 19세기, 온 유럽이 들먹거릴 때도 1848년 공화파 혁명이 반짝했을 뿐, 모든 혁
명운동은 무자비한 군홧발에 짓밟혀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좌절의 정서 위에 나름대로 희망을
품고(비록 시대적 착각이고, 환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일으킨 두 번의 세계대전 또한 처참한 패망
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독일 국민의 정서에는, 현재 유럽 최강의 경제를 자랑하는 주도국가
라고는 해도 좌절과 비애 그리고 공포가 내면 깊숙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 험난했던 역사적
체험이 그들의 안전지향, 질서지향, 순종적인 국민성을 형성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하인리히 하
이네는 독일인의 비애와 좌절을 적절히 꿰뚫고 있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이 세계적으로
식민지 경영을 확대한 데 비해, 뒤늦게야 해외 식민지를 얻으러 나섰다가 겨우 얻어낸 해외영토
조각마저 깡그리 잃어버리고 만 독일이고 보니 이런 좌절과 비애,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이 다른
민족보다 훨씬 강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또 역사를 통해 뼈아픈 일들을 많이 겪
어온 민족이라서 지금 이나마 차지하고 누리며 사는 것도 고맙기 그지없으며, 이 행복과 안정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나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면서 진단하고 점검하고, 또 그렇게 해놓고
도 불안해 마지않는다. 언제 세상이 뒤집히고 언제 세상에 종말이 올지 모르는 일, 도대체 지금
까지 이처럼 별일 없이 지내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결코 이런 행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이런 불안함은 타민족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불안
함은 질서 추구의 핵심 원인이다. 이 불안과 공포심은 모든 것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견제하고,
시험하고, 확인하고, 검사하고, 예약하고, 실험하고, 분류하고, 기록하고, 복사해 두고, 기획하며, 보
험에 들게 한다. 한 예로 독일인들의 휴가를 들어보자. 7~8월에 피크를 이루는 여름휴가는 대부
분 2월경이면 예약이 끝난다. 좋은 휴양지에 자리를 얻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의
이런 특징은 휴가지에 가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해면이나 호숫가의 좋은 자리는 대개 선착
순으로 차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일찍 일어나 좋은 자리를 맡으러 나가도 쓸 만한 자
리는 이미 모두 수건으로 점령되어 있다. 이런 점령자들은 거의 100퍼센트 독일인이다. 매일 새
벽 해도 뜨기 전에 수건을 들고 해변으로 유령처럼 몰려나가는 독일인들, 세계적인 불가사의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들 독일인들이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아
니다. 맥주집이나 바가 문 닫을 때까지 남아 맥주를 퍼마셨는데도 해가 뜨기도 전에 어김없이
일어나 좋은 자리를 맡으러 가는 유령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자리 맡기 행진은 오직 독일인들
만의 특징이며, 이 또한 좋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이 많은 만
큼 '목청도 크다'. 자신의 몫을 빼앗길까 봐 목청을 돋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인들에게 스스
로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나선다. 그러다 보니 자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
하려 들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만 직선적으로 내세우게 된다. 그래서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에서
'그 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 대신 '그것은 잘못이다!'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잘 길들여진 순종적인 국민
이웃 프랑스가 '한 명의 대통령과 5,700만의 왕이 사는 나라'인 데 비해 독일은 비교적 대단히
잘 길들여지고 순종적인 국민이 사는 나라다. 법에 순종하고 지도자에 순종한다. 오늘날의 독일
인은 과거와 달리 비판적인 면이 많아지긴 했어도 다른 민족에 비하면 순종적인 면이 훨씬 강하
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들은 지도자를 존경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며 그들의 권위를
존중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히틀러가 나타날 수 있었고, 비스마르크 같은 철권 정치가가 등장했
으며, 혁명다운 혁명도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드물었다. 노동조합의 파업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적다. 권위에 복종하고 지도자에 순종하는 국민들이었기에 아데나워 같은 지도자
를 따라 라인강의 경제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들의 순종의식의 한 예는1970년대오일 쇼크
때 극명하게 나타났다. 기름값이 치솟고 석유위기가 닥치자 정부는 자가용 승용차들의 고속도로
주행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였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단 한 대도 고속도로에 나타나지 않은
기적을 창조해 낸 민족이 바로 독일 민족이다.
세계 환경 챔피언 국가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잃지나 않을까 '두려워' 독일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환경정책을 개발
해 냈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들도 독일인만큼 환경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국민은 없으며,
독일만큼 다양한 환경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나라도 없다. 1980년대 초부터 환경문제가 비상
한 관심사로 부각된 이유는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독일 각지에 분산
된 공장들에서 배출되는 연기와 자동차 매연 때문에 산성비가 되고, 이로 인해 독일의 숲이 죽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숲은 독일인에게 '숲'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숲은 게르만족의 본거지이며
게르만의 혼(魂)을 상징한다. 숲에 살던 게르만족이 숲을 무대로 침략해 오는 로마군을 무찌르
고, 점차 대이동을 하여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 대륙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르만의 신화
와 전설은 모두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문화와 음악 등 모든 예술은 항상 숲을 노래하며 그
리고 있다. 숲은 게르만의 혼이자 신성한 존재이며 독일의 국가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숲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독일인은 경악했고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탁
상공론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을 차례로 개발해 냈고, 국민들은 성실하게 이를 따랐으며,
그 결과 독일은 세계 환경 챔피언 국가가 된 것이다. 독일인들이 얼마 전 플라스틱 쓰레기를 북
한에 수출하려다 여론의 반대로 실패한 것만 보아도 그들이 환경문제에 얼마나 철저한가를 알 수
있다. 독일에선 예컨대 일반 슈퍼마켓에서 플라스틱 음료 용기를 발견할 수 없다. 썩지 않는 재
료인 플라스틱 쓰레기는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음료수는 반드시 재활
용이 가능한 유리병을 사용토록 하고, 국제공항이나 기차역 등 여행객들이 무거운 유리병을 들고
다니기 힘든 장소에서만 플라스틱 용기에 든 음료수 판매를 허용한다. 독일의 환경의식을 상징
하는 또 한가지 사실은 세계에서 최초로 녹색당이 국회에 입성한 것이다.
완벽주의에 집착하는 독일인
독일 말에 '그만하면 됐다'(gut genug)란 것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말의 썩 흡족하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볼 때 완벽 이상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
지 끊임없이 개선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독일인들은 '이상적인 상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에게는 완벽함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기구, 조직이나 제품에서는 완벽하지 않
은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정신 때문에 메이드 인 저머니 제품은 세계적으로 인
정을 받고 있으며, 특히 독일 자동차는 세계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리스인이지만 독일인처럼 사고했던 인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외국인은 영원한 외국인
독일에는 700만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독일 땅에 뼈를 묻겠다는 외국인은
찾아보기도 어렵다. 십여 년이나 산 사람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살
겠다고 한다. 독일 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는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단히 다양한 피가 섞
여 있는 민족이다. 독일의 위치가 유럽의 한복판이니 만큼 동서남북에서 온갖 민족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피가 섞일 대로 섞였는데 식민지를 오래 가져보지 못한 까닭으로 백인들 사이에서만 피
가 섞여, 말하자면 비교적 철저한 백인국가인 셈이다. 그래서 아무리 오래 이 땅에 살았거나 독
일인과 결혼을 해도 피부색이 다르면 영원한 이방인이다. 온갖 인종이 혼재해 있으며 피부색이
달라도 영국인, 프랑스인으로 받아들여 지는 이웃 나라들과(이웃 네덜란드만 해도 수십만 인도네
시아계 네덜란드인(암보네제)이 있다) 달리 독일은 그렇지 않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외국인,
특히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 독일을 제2의 고향으로 느끼끼 어렵게 만드는 이유이며, 독일인 또
한 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은 외국인을 매우 조심스럽게 대한다. 왜냐
하면 히틀러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이라는 민족적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개방적인 젊
은 세대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자기 나라 안의 이방인들과 어울리고 편견 없이 교류하지만, 기
성세대들은 조심스럽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외국인 기피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
려고 노력한다. 스킨헤드족(skinhead족, 1970년대 초 장발족에 대항하여 삭발한 전투적인 보수파
청년)이나 신나치주의자 등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반외국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경계와 기피의 대
상이며 이들이 저지르는 외국인 테러는 항상 분노에 찬 언론의 질타를 받는다. 독일의 외국인들
중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터키인들이다. 1960년대, 독일 경제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일손이
크게 달리자 독일 정부는 인건비가 싼 터키인 노동자들을 손님으로 '모셔오기' 시작했다. 그후
그들이 차례차례 온 가족을 독일로 불러들여 오늘날에는 터키인이 25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베를린은 터키의 제3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수십만 명의 터키인이 살고
있다. 게다가 프로 축구팀까지 가지고 있고, 베를린 시장 선거에서는 터키인 표가 주요 변수가
될 정도이다. 터키인뿐만 아니라 동구권 몰락 이후 동구에서 몰려드는 경제난민, 아프리카 등지
에서 몰려오는 난민들로 독일 정부는 골머리를 썩고, 늘어나는 실업자 문제를 외국인 노동자 탓
으로 돌리는 반(反)외국인 정서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에 대한 눈길이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졌지만,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강령으로 들고 나온 정당이 의회에 입성하는 프랑스
와는 달리 그래도 가장 절제 있는 외국인 정책을 펴는 나라이다.
농담으로만 존재하는 지역감정
영국인들이 자신을 잉글랜드인, 웨일스인, 스코틀랜드인으로 소개하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인들
역시 자기 출신 지역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데 반해 프랑스인들은 당당히 프랑스인이라고 밝힌다.
프랑스는 이미 17세기에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확립한 역사로 보아 이탈리아처럼 여러 개의 나
라가 이탈리아라는 이름 아래 1870년에 처음으로 합쳐진 경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독일 역시
이탈리아처럼 프러시아 왕국, 바이에른 왕국 등 여러 개로 갈라져 살던 나라들이 1871년에야 도
이칠란트라는 이름으로 합친 것이다. 그런데 독일인들은 항상 자신을 독일인으로 소개한다. 이
점은 이탈리아인들과 정반대이다. 유럽에서 가장 늦게 통일국가를 이룩했고 오랜 역사를 통해
서로 격리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클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독일의
지역감정은 전혀 심각하지 않으며 지역의 특성이나 지역적 정서로 잘 순화되어 있다. 지역 간의
감정대립이란 통일 후 동 . 서독의 경우를 제외하곤 그저 유머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결코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가령 프리스란트(북부) 사람들은 어리석다는지, 프러시아인들이 바이에른
(남부) 사람들은 '촌닭'(?) 취급하는 데 대해 반대로 바이에른 사람들은 프러시아를 '자우 프라이
스!'(SauPreib, 돼지 같은 프러시아인)로 비하하기도 하지만 웬만큼 큰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는
농담으로만 인구에 회자될 뿐이다. 그러나 독일은 여러 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고 각 주
마다 잘 발달된 지방자치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지역문화를 지니고 있다. 가장 늦게 독
일 통일에 동참한(원한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해 강제로 합병되었지만) 바이에른(바바리아) 주엔 집
권당인 CDU(기독교민주연합)가 아예 존재하지도 못하고 사실상 이름만 바꾸어놓은 주의 독자정
당 CSU(기독교사회연합)가 절대지지를 받는 등 확연한 지방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
들이 자신의 정략적 목표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민족분열적 행동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뿐더러 용납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망국적 지역감정이 심화되기 전엔 하와이니 감자
바위니 문둥이니 하며 특정 지역을 노골적으로 희화화하는 농들이 오고 갔지만, 점차 국민들 스
스로 대놓고 이런 자극적 표현을 삼가해 왔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조작으로 지역감정이 날로 심
해져 지역 간 정서가 예민하게 대립되어 있다. 가장 뒤늦게 통일되었으면서도 분리주의란 상상
할 수조차 없는 융합된 지역정서로 지역감정을 극복해 낸 독일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지 않은가.
질보다 양이 우선인 독일 음식
프랑스인들은 300종이 넘는 치즈가 있다고 자랑하겠지만 독일인들은 가히 맥주에 관한 한 세계
챔피언이라는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맥주를 즐겨 마신다. '독일인=맥주'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독일에는 무려 4,000종류의 맥주가 있으며 전세계 맥주공장의 3분의
1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웬만한 마을마다, 수도원마다 맥주 양조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또
워낙 많은 지역으로 갈라져 살아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지역성은 350종류의 빵, 1,500
종류의 소시지를 만들어내게 했다. 얼른 듣기엔 참으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했을 것 같다.
하지만 국민 한 사람당 평균적으로 1년에 무려 145리터의 맥주를 마셔대는 맥주 세계 챔피언이라
는 것을 빼면 음식 면에서는 세계에 수준급이라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지역마다 다른 요리
문화를 지니고 있다 해도 알고 보면 결국 돼지고기와 감자의 다양한 응용일 뿐이다. 인간이 상
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돼지고기와 감자를 요리해 먹지만, 18세기에 구황식품으로 감자가
대대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에 독일인(범 게르만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요리문화가 극도로 빈약한 영국조차 독일 요리를 저질로 무시하는데, 하물며 이웃 프랑스야... 독
일 식탁의 특징은 무엇보다 양이 많다는 것이다. 필자는 독일 땅에 발을 디딘 후 20여 년이 흐
르는 동안 그토록 숱하게 독일 식당에서 식사를 했지만 제공된 고기를 다 먹어본 적은 다섯 손가
락도 안된다. 아직도 독일인들이 '아, 잘 먹었다!' 하는 식사는 질이 아니라 양이어서, 음식이 푸
짐하고 많이 나오는 식당을 좋은 식당이라고 한다. 물론 최근 들어 대식(gourmand, 구르멍)보다
는 미식(gourmet, 구르메)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역시 독일 음식은 아직 질보다 양이 앞선
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맥주
맥주에 관한 한 독일인들은 외곬으로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이른바 순수성 유지라고 하여 법
으로도 제정한 양조방식인데, 1516년 도입 이래 변하지 않은 것이다. 즉 맥주는 멀츠, 호프, 물
등 순수한 자연원료만 사용해야지 식용 방부제 같은 화학물질을 첨가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법이
다. 세계적인 시장을 가지고 있는 하이네켄(네덜란드), 크로넨베르크(덴마크), 버드와이저(미국)
같은 대규모 맥주회사가 독일 시장을 공략하지 못하는 것은, 수출 맥주는 물론 내수용 맥주도 유
통기간 때문에 상하지 않도록 약간의 화학물질을 참가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게 바로 독일의 순
수성 유지법뿐 아니라 '독일 맥주만이 깨끗하다'는 독일인들의 인식을 깨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누구나 자신이 즐겨 마시는 맥주를 평생 바꾸지 않으며, 외국에 나가서도 자신이 찾
는 맥주가 없으면(어느 곳에도 4,000종류의 독일 맥주를 다 갖춘 술집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반드
시 독일 맥주임을 확인하고서야 다른 이름의 맥주를 마신다. 다만 한 가지 예외라면 체코 맥주
인데, 체코는 세계에서 가장 독한 맥주 생산국으로 유명하여 우어크벨, 부트바이저(Budweiser, 원
래 체코 맥주인데 미국으로 건너간 버드와이저)는 독일인들이 즐겨 마시는 별미 맥주다. 독일인
들은 워낙 다양한 맥주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맥주에 관한 한 대부분 탁월한 미각을 지니고
있다. 맥주 마시는 문화도 다르다. 독일인들에게 맥주란 거품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맥주다. 술
집이나 식당에 가면 맥주는 반드시 잔으로 팔고 그 집에서 계약하지 않은 맥주를 주문할 경우에
만 병으로 갖다 주는데, 역시 반드시 잔을 가져다 준다. 맥주를 따른 잔 위에 소복이 쌓인 거품
은 '왕관' (Krone, 크로네)이라 하여 '맥주의 꽃'으로 불린다. 영국인들은 이 거품을 싫어해 걷어
내고 마시며, 네덜란드인들은 맥주를 짜낼 때 생기는 거품을 바텐더가 막대기로 싹 긁어내 버린
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한잔의 맥주를 따라 내는 데 거품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다시 따르고 하
여 8분이 걸리는 것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맥주를 주문할 때 당장 가져다 주기
를 기대해선 안된다. 독일인뿐 아니라 유럽인들은 맥주를 야외나 기차 안 등 잔이 없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병째 마시지 않는다. 병에 입을 대고 맥주를 마시는 것은 참으로 봐줄 수 없는 비문
화(非文化)인 것이다. 레스토랑이건 술집이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멀쩡한 잔을 놔두고 병째 마
시는 한국 젊은이들의 맥주 문화를 그들은 뭐라고 할까?
카니발리즘
리오 카니발과 함께 독일의 라인카니발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독일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는 축제로는 유명하지만 말 그대로 축제이지 카니발은 아니다. 카니발은 중세 때부터 유래된 종
교적 행사로서, 라인 카니발은 라인강 중류인 마인츠 시에서부터 네덜란드 국경에 이르는 라인강
을 따라 벌어지며, 라인강과 접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주에 속한 도시들은 모두 대대적인 행사를
벌인다. 라인 카니발은 하루이틀 동안 치르는 게 아니라 3~4개월에 걸쳐 치른다. 독일인답게 정
확히 11월 11일 11시 11분에 시작되어 광란의 장미의 월요일을 정점으로 하고 재(재)의 수요일을
끝으로 완전히 끝나는데, 끝나는 날짜는 매년 다르다. 카니발 기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백화점
이 일제히 카니발 분장용 도구 코너를 설치하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카니발 무드는 서서히 고조
되어 가다가 마지막 1주일에 드디어 폭발한다. 여인네의 목요일 (Weiberdonnerstag)은 말 그대
로 여성 천국이다. 거리거리마다 여인네들이 손에 가위를 들고 지나가는 신사들의 넥타이를 자
른다. 넥타이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수상 등 고위관리들은 뻔히 알면서도 매스컴용
으로 여비서나 여직원들 손에 넥타이를 잘리며 웃는다. 저녁이 되면 여인네들끼리 모여 밤새 춤
추고 퍼마시며 노는데 물론 남성도 낄 수 있다. 이 목요일 밤부터 다음주 월요일 밤까지는 그야
말로 퍼마시자판이고, 그 원리원칙 따지고 질서를 존중하는 독일인은 다 어디 갔냐 싶게 지역 전
체가 난장판이 된다. 장미의 월요일 (Rosenmontag)은 카니발의 하이라이트. 이때는 하다못해
얼굴에 색칠이라도 하고 나와야지 정상 차림으로 나서는 사람은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
된다. 인디언, 프랑켄슈타인, 미키마우스 등 남녀노소 누구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변장, 분장
을 하고 나선다. 이런 군중 사이로 카니발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인 대행진이 펼쳐진다.
회사, 동아리, 지역단체 등 희망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행진엔 악대와 치어걸이 흥을 돋
우고 모형, 인형 등을 동원해 온갖 정치풍자, 사회풍자가 이루어지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TV는
24시간 생중계로 카니발 축제를 중계하고 마인츠에서부터 네덜란드 국경까지 각 도시의 가장행렬
을 차례로 중계한다. 이날 밤은 술집이란 술집은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이고 직장 단위, 동아리
단위로 노래하고 춤추고 마시는 광란의 밤이다. 심지어 카니발 직후엔 임신이 급격히 늘어 카니
발 베이비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주지육림(酒地肉林)이다. 이날 가장 바쁜 이들은 경찰
관. 12월 31밤과 장미의 월요일, 이 두 날은 음주운전 단속이 가장 심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틀 뒤 수요일은 참회의 날인 재의 수요일 (Aschermittwoch), 정말 거짓말처럼 광란의 흔적
을 깨끗이 씻고 독일인들은 '완벽하게'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거리는 깨끗하게 청소되었으며 난
장판 파티가 벌어졌던 집안도 말끔히 정돈되었고, 직장이건 어디건 그 요란했던 카니발의 흔적은
완벽하게 사라졌으며, 독일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있다. 카
니발은 질서와 법을 존경하고 내면 깊숙이 두려움이 깔려 있는 독일인의 정서를 일년에 한 번 정
도 완벽히 카타르시스해 내는 정서 세척 장치다. 스트레스에 찌든 심신을 한 번쯤 완벽하게 풀
어놓고 잡념을 내동댕이친다면 그 정화 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다. 우리에겐 축제문화가 없다.
대부분이 말 그대로 문화적 차원에서 보여주는 축제이지, 보이고 또 자신이 즐기는 축제가 없다.
축제는 명절과 다르다.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정서적 카타르시스 장치가 축제인 것이다. 독일인
들은 사귀귀가 어렵다. 무뚝뚝하고 여간해선 짐심을 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의
'한번 사귐'은 평생 사귐으로 이어진다. 진지하고 속이지 않고 정직하며,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탐욕적이지 않으며, 공짜를 바라지도 않고, 계산이 정확한 민
족이다. 프랑스인들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민족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한 그들은 좋은 이웃인 것이다.
도이칠란트의 역사
게르만 민족의 본고장에서....
게르만 민족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후 1세기 로마 역사가 타키루스의 <게르마니아>에
서이다. 그러나 게르만족은 훨씬 이전부터 알프스 이북에서 살아왔는데, 그리스 . 로마 세력과
충돌하면서 이때서야 '문명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뿐이다. 게르만족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인
도유럽계 언어를 쓰며 남부 스칸디나비아에서 중부유럽에 걸쳐 널리 퍼져 살던 민족이라는 것
외엔. 게르만족의 대이동(AD 375-568) 기간 동안 50여개 개에 이르던 종족들은 언어와 민족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서로 격렬한 투쟁을 거듭하던 끝에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다른 종족과 합류,
동질화되어, AD 1세기경에는 대개 세 개의 커다란 줄기로 나뉘게 되었다. 이 동 . 서 게르만계
프랑크족이 오늘의 프랑스, 독일의 모태가 되는 프랑크 왕국을 세웠으며, 프랑크 왕국은 베르됭
조약(843)에 의해 동서로 분열되는데, 이것이 곧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를 여는 계기였다. 오늘날
독일 영토에 거주하던 다양한 민족을 통틀어 도이치족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들의 역사가 곧
독일의 역사인 것이다. 오늘의 유럽 지도가 생겨나기 전의 독일 역사는 그래서 상당 부분 네덜
란드, 오스트리아 등의 역사와 겹칠 수밖에 없다. 독일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지배자는 세습
왕제가 아니라 왕 자격을 부여받고 추대된(911)다는 점이 다른 나라 역사와 다르다. 첫 번째 왕
콘라트가 죽은 뒤 왕으로 '뽑힌' 하인리히 1세(919년 즉위) 작센 왕에겐 오토라는 영명한 아들이
있었다. 역시 선거에 의해 오토 1세로 왕위에 오른 그는 로마 교황을 한편으로 끌어들여, 선거로
뽑히는 왕의 자격을 혈통권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왕위 세습제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로마
교황으로부터 로마제국을 부활시킨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됨으로써(962) 비록 영토도 없는
제국이었으나 명목상 유럽을 지배하는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교황과 황
제의 이른바 교 . 속 투쟁에서 황제의 권력이 크게 약화되고 독일은 오래 왕위가 비는 공위시대
를 겪게 되는데, 왕권이 확립되던 1273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
을 차지했고, 15세기엔 아예 세습제를 확정지어버림으로써 선거로 독일 왕을 뽑는 선거제도는 사
라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로마 교황과의 갈등이 계속되었던 독일이었던 만큼 1517년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은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곧 유럽에 전파되어 신 .
구교 갈등에 불을 질렀고, 신교 . 구교로 갈라진 유럽 대륙은 독일을 무대로 처참한 30년 종교전
쟁을 벌이게 된다(1618-1648). 이 전쟁 결과 맺어진 베스트팔렌 조약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던
독일 내 제후 국가들의 주도권을 인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독일연방제의 시초이기도 하다. 여기
에는 물론 이웃에 강력한 통일국가를 두지 않으려는 프랑스의 외교전략이 작용하기도 했다. 독
일이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은 호엔촐레른가의 프러시아가 강성해지면서부터이다. 프러시
아는 계몽전제군주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하면서 강력한 부국강병을 시행, 합스부르크가의 오스
트리아를 굴복시키고 프랑스, 영국도 두려워할 만큼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하고 프러시아도 점령되었는데 나폴레
옹은 프러시아,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3백여 개 독일 제후국가들로 '라인동맹'을 결성하여 이들
을 견제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몰락 후 독일은 다시 39개 주권국가로 독일연방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아직 통일국가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독일 통일 운동은 프러시아에 빌헬름 1세가
즉위하여 철혈재상이라는 비스마르크를 등용하면서 힘차게 추진되었다. 프랑스를 전쟁으로 굴복
시킨 프러시아는(1870-1871) 1871년 1월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 성립을 선포함으로써 최초
의 통일독일을 건설하였다. 해외 식민지를 둘러싼 갈등 끝에 1914년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을
신호탄으로 1차대전의 막은 올랐고, 1918년 독일이 패전, 제2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패전 뒤 1918년 11월, 독일은 역사상 최초의 공화국을 선포한다. 바이마르 공화국(1918-1933)이
그것으로 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제헌의회가 바이마르에서 소집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새
공화국 정부는 경제 재건에 나서 착실한 성과를 거두어 독일 경제는 건강하게 새로 태어나고 있
었으나 1929년 세계를 휘몰아친 경제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 드디어 히
틀러의 나치 정권이 등장, 1993년 1월, 바이마르 공화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전무후무한
나치 군사독재정권의 미친 바람이 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독일은 또다시
전쟁에 지고 국토는 잿더미로 변한 채 동서로 분단되었다. 미소 냉전시대에 분단 독일은 세계의
화약고였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최전방인 독일을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미국은, 1947년부터 마셜 플랜이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경제원조를 시
작,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독일 경제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1947년, 독일 서쪽에는 독일
연방 공화국이, 동쪽에는 공산주의 정권인 독일 민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자유를 찾아
서족으로 향하는 동독 시민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잇자, 소련과 동독 정부는 베를린을 봉쇄, 악
명 높은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했고, 미국은 전쟁을 각오한 과감한 베를린 공수 작전
(48.6.24-49.5.12)을 감행, 제3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짙게 드리우기도 했다. 1969년, 독일 수상에
취임한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전개, 동서독 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했고, 1980년대에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주장한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의 해빙 무드를 타고 공산권이 흔들리기 시작,
드디어 1989년 동독은 붕괴되고 말았다. 서독 정부의 끈질긴 협상과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또다시 통일의 감격 속에 힘찬 새출발을 기약하게 되었다. 분단 45년
만에 이룩해 낸 재통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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