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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by Frais 2020. 5. 25.

1. 신문잡지의 두 줄짜리 구인광고를 주목하라

--두 줄짜리 구인광고 뒤에 숨은 평생의 후원자

 

20대의 인생은 신문잡지의 한쪽 구석에 있는 두 줄짜리 구인광고로 바뀔 수

있습니다.

나는 한때 '닛카쓰 로망 포르노'란 영화사의 기획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매달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보았던 나에게 있어서, 영화잡지 '피아'는 내

인생의 수첩이자 일기장이었습니다.

글자가 작고 페이지가 얇은 데다가 지금처럼 예쁜 잡지도 아니었습니다.

'피아'의 한쪽 구석에는 조촐하게 정보란이 있었고, 그 옆에는 독자가 투고한 유머

따위의 자질구레한 소식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정보란에는 독자가 보낸 광고가 실리기도 해서, 때로는 보컬그룹을 결성하고 싶은

사람이 멤버를 모집하기도 합니다.

'베이스, 드럼, 키보드 모집'

결국 광고를 낸 사람은 보컬을 하고는 싶지만 같이 할 동료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오는 독자 광고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당시의 나는 와세다대학 연극과에서 영화사를 전공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피아'의 정보란에서 영화사인 '닛카쓰'에서 기획부 아르바이트

사원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영화에 관계된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을 하던 나는 '이건

나를 위한 광고다!'하고 생각을 하면서 즉시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당시 닛카쓰의 본사는 노기자카에 있었는데, 전화로 문의했더니 본사의 6층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엘리베이터가 5층까지밖에 안 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6층이라고 했는데...'

다른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땀을 흘리며 찾아 다녔지만 5층 이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5층에서 내려 계단을 통해 올라갔더니 옥상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옥상에는 공사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가건물이 있었고, 그 가건물이 바로

새로 생긴 기획부였던 것입니다.

닛카쓰는 당시 초후에 촬영 스튜디오가 있었습니다.

마침 노기자카 본사의 기획부와 초후 스튜디오의 기획부가 둘로 나누어지자,

새로운 직원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기실에 응시한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 모두가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고 손꼽는 도쿄대학과 히토쓰바시대학, 게이오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뿐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 모집이 아니었나?'

아무리 봐도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정규사원을 모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언뜻 봐서는 찾지도 못할 두 쭐짜리 정보란에, 그것도 '베이스, 드럼, 키보드 모집'

옆에 광고가 실려 있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나는 청바지 차림이었습니다.

면접실에 들어갔더니 15명 정도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이거 진짜 면접 아니야?'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면접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고작 스물셋이었구요.

안내원이 15명의 면접관 중에서도 한가운데 앉아 있는 분 앞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직책이 가장 높아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덩치가 크고 얼굴도 큼지막한 그 사람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똑바로 노려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닛카쓰의 상무이사라는 것은 면접이 끝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지요.

면접 결과, 마침내 마지막 4명이 남았습니다.

히토쓰바시, 게이오, 도쿄대학, 그리고 와세다 출신인 나.

도쿄대학 학생이 홍보부로 가고, 히토쓰바시와 게이오대학 학생이 기획부로

갔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나는?'

"이보게, 밥이나 먹으러가세."

나는 상무님을 나는 상무님을 따라 식당으로 갔습니다.

"자네는 기획부에서는 채용되지 않았네."

태어나서 첫번째로 치른 면접시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요?..."

순간적으로 '영화에 대해 너무 건방지게 말을 많이 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한달에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보는 광적인 팬임을 자랑하기 위해 상무님이 묻지도

않은 영화 얘기를 신나게 떠들어 댔던 것입니다.

"그 대신 내가 자네를 개인적으로 채용할까 하네. 그러니 자질구레한 일은 하지

말게."

개인적으로 채용한다니,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동시에 '자질구레한 일은 하지 말게'라는 상무님의 말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자네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호랑이 같더군.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쁜 길로

내달리지 않도록 내가 키워야겠어."

나는 상무님에게 개인적으로 채용되었던 것입니다.

회사 면접에는 떨어졌지만 개인 면접에는 통과한 것입니다.

"자네는 이상한 책을 많이 읽었더군. 그러니 영화의 원작이 될 만한 이상한

책들을 찾아오게."

내 심장은 요란한 기적 소리를 토하며 언덕길을 향해 내달리는 열차처럼 격렬히

고동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

그것이 칭찬이라고 내멋대로 착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스물셋의 젊은이에게 그토록

자신감을 심어 주는 말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꿈에서도 그리던 바로 나의 일인 것입니다!

그 이후 나는 회사로 가지 않고 상무님의 집으로 출근했습니다.

상무님은 내 평생 그쪽을 향해 다리를 뻗고 잠들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지금의

내가 있게끔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모든 것에 반항적으로 임하는 고집불통,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 나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마음껏 꿈의 날개를 펴도록 도와 주신 분은 잡지에

두 줄짜리 광고를 냈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만일 그 당시의 내가 거대한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대기업의 큼지막한 광고에만

매달리며 취직을 꿈꾸었다면,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20대는 건방집니다.

모르기 때문에 건방진 것입니다.

모르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또한 알게 되면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20대는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런 때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을, 마음껏 앞을 향해 달려가도록

도와 주고 채찍질해 주는 후원자를 만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20대입니다.

보잘것없는 잡지의 한켠에 난 두 줄짜리 구인광고가 내 인생을 열어 놓았듯이,

당신도 오늘 당장 시도해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이 꿈꾸는 세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모르고 있지만, 누군가 이미 개척해 놓은 제3의 세계가 두 줄의 광고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큼지막한 광고의 위세에 눌려 숨을 쉴 수조차 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작은 광고에

땀과 눈물과 피가 담긴 누군가의 인생이 알알이 숨어 살아 있습니다.

20대인 당신이기에 그 세계를 알 필요가 있고, 그 세계로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숨을 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0대는 그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시기입니다.

20대는 바로 그런 후원자를 만나야 할 시기입니다.

@ff

2. 선거운동원이 되어 정신없이 뛰어 보라

--선거 현장에서 배우는 우리 삶의 이면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나는 어느 국회의원의 비서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닛카쓰 로망 포르노의 아르바이트생에서 일약 의원 비서가 되다니, 나는 세상이

다 내것인 양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당시 사촌이 도의회 의원을 지내고 있어서, 그 사촌의 소개로 국회의원의 비서

일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선거가 그토록 힘들고, 그토록 재미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세상에는 정치가의 목적이 순전히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이 돈이라면 아마 사업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정치가라는 직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다는 사실을, 비서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정치는, 정치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친구나 선배들 중에도 정치가가 되었거나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 역시 정치를 좋아하는 줄 알고 내게 정치 입문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의원 비서를 지낸 경험으로, 정치가라는 직업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자신이 입후보하지 않고 응원하는 편이 훨씬 즐겁습니다.

20대에 반드시 선거운동 아르바이트를 해보십시오.

요즘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와는 관계없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를 한번 도와

보십시오.

선거 결과를 알리는 뉴스에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선거를 치르기 한 달 전부터는, 운동원들은 선거 사무실에서 24시간을 꼬박

새워야만 합니다.

선거 공고를 하기 전부터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포스터 하나를 붙이는 작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시의 공고 기간은 2주일이었는데, 도중에 포스터를 바꾸어 붙여야 했습니다.

쉽게 떼어지도록 해두면 비바람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단단히 붙여야 합니다.

후보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인사를 하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대형강당에서 연설하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보통 일반음식점이나 동네 입구 작은 공터에서 아저씨, 아줌마 등 10명 정도를

상대로 연석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목욕탕 탈의실에서 연설을 한 적도 있습니다.

유명한 거물 정치인들조차도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민심을 얻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하루 종일 전화만 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날 아르바이트 여학생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름을 착각하고 무심코 말을 건넸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이 굉장히 화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전용 자동차를 타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목청을 돋구는 사람은 천천히 달리는

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반드시 차멀미를 합니다.

아침에는 역 앞에서 90도로 인사를 해야 합니다.

선거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반드시 얼굴을

내밀어야 합니다.

한번이라도 가지 않으면 벌써 다른 후보자 쪽으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후보자가 선거에 떨어지면 그토록 북적거리던 선거 사무실에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TV를 통해 낙선한 후보자의 사무실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아무도 없는 것은, 다른 곳에서 낙선 위로모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 그곳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흥분하던 사람이, 당선된 라이벌

후보에게 가서 만세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떨어진 곳에서는 후보자와 아내 단 둘이서, 선거 사무실을 정리해야 합니다.

참으로 잔혹한 일이지요.

그것이 선거입니다.

그것이 정치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원 비서를 지낸 사람들 중에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은 한 사람

있을까말까입니다.

개중에는 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선거의 노하우를 살려 비즈니스에서 크게 성공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도, 정치에서도, 이생에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진심을 다해 응원을 해보지 않으면 참다운 묘미를 알 수 없는

법입니다.

@ff

3. 아무도 청탁하지 않는 일에 매달려 보라

--남모르게 축적하는 삶의 에너지가 더 힘차다

 

나는 스무 번째 생일을 치른 이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책이 나온 것은 스물아홉으로, 서른이 되기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글을 쓰고 또 써도 책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20대는, 죽을 힘을 다해 써도 곧장 사장되어 버리는 원고에

매달리던 1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20대에 쓴 원고를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장된 원고가 지금의 내게 있어 너무도 크나큰 에너지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청탁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미친듯이 글을 쓰던 시절의 원고를 보면

솔직히 말해 두려운 마음이 솟구치곤 합니다.

그때마다 '그 무렵의 나와 지금의 나, 어느 쪽이 더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하는

또다른 나의 질문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20대의 나는 경험도 부족하고, 식견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20애의 나에 비하면 지금의 내가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능숙하겠지요.

경험으로나 식견으로나 지금의 나는 20대의 나에게 언제 경쟁해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파워는 어떨까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파워면에서도 뒤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20대에는 물론 원고 청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원고 청탁에 연연해 하지 않고 끊임없이 쓰고 또 썼던, 그 시절이 아니면

발산할 수 없는 파워가 그때의 내게 있었습니다.

청탁도 받지 않는 일에 죽어라고 매달리는 20대만큼 숭고한 시기는 없습니다.

물론 청탁이 온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러나 청탁받은 만큼의 일만 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청탁받은 원고를 쓰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입니다.

요즘은 일년에 마흔 권을 기준으로 책을 내려고 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워드 프로세서 앞에서 보냅니다.

해마다 마흔 권이나 되는 책을 써도, 그래도 쓰고 싶은 얘기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듯이 마르지 않고 튀어나옵니다.

왜냐하면 20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책을 내지 못한 원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재는 무한히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책에 대한 원한이 있습니다.

맨 처음 책을 낸 것이 스물아홉이었으니까, 그때까지의 매장량은 아마 여러분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라는 직업에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샐러리맨도 마찬가지입니다.

샐러리맨도 청탁을 받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0대는 아무도 주문해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청탁받지 않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30대에 들어서 청탁이 들어오게 되면, 청탁받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의 내 라이벌은, 아무도 청탁하지 않는 원고에 미친듯이 매달리던 무렵의

20대의 나입니다.

나는 매일매일 20대의 나를 옆에 두고,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라고 눈을 부라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ff

4. 하고 싶은 일을 분명히 정하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20대의 젊음을 투자한다

 

20대 젊은이 중에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알고 있군요.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됩니까?"

그러나 나는 한정된 것밖에는 모릅니다.

전문분야인 영화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 제각기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클래식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문학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도 사람과 만날 때마다 여러가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공부할 시간은 없습니다.

20대인 젊은이가 40, 50대인 사람과 공부의 양으로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40, 50대라면 이길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달려온 40, 50대에게는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온 크기가 다르고, 그것에 걸린 물리적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해야 할 일''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요?

당신은 10대에 구석구석 샅샅이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빼놓지 않고 속속들이 공부하는 것은 10대로 졸업합시다.

사회에서는 방대한 양의 공부, 즉 넓이의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도 적당히 할 수 있고, 저것도 적당히 할 수 있는 어정쩡한 힘은 세상에

나가면 통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지식을 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해야 할 것'이 무한히 밀려

들어옵니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사라지고 맙니다.

'해야 할 일'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신의 모든 시간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20대에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의미에서는 '해야 할 일'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20대는 일을 선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해야 할 일'이라면 언제든지 하십시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입니다.

당신에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즉시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

20대의 시간을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한다면, 그것은 이윽고 30, 40대의 당신을

지탱케 하는 가장 큰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20대에 우연히 선택한 직업으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마 대개 그럴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20대에 '해야 할 일''하고 싶은 일'을 잘 구분해서 선택하고, 그것에 일생을

소비하는 사람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즉시 그 일을 하십시오.

@ff

5. 10개 이상의 자격증에 도전해 보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중요하다

 

20대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가지 면에서 놀라운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째로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모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 되게 황당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은 아예 무시해 버리고, 50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100

꿈꾸는 것입니다.

"이 친구야, 정신차리게. 자네는 그렇게 할 수 없어!"

나의 고민은 이렇게 곧이곧대로 얘기해 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위치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너무 높은 곳에 꿈을 두고 있으면

실망과 좌절이 연속되어 50은커녕 그 절반도 이루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비하한다든지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20대 젊은이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태반이라는

사실입니다.

능히 100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절반의 절반도 점수를 주지 않는 그

인색함 앞에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이 친구야. 자네는 정말 뛰어난 인물이야!"

그에게 아무리 이렇게 얘기해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충고에 그가 오히려 화를 내면서, 얼굴을 찌푸리는 데에는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내가 이 사회에서 50을 할 수 있는지, 100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정확히 아는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나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10개 이상의 자격증에 도전해 봅시다.

운전면허증이야 기본이 되겠지만, 자동차 정비자격증 같은 것은 어떨까요?

의사 자격증이나 판검사가 되는 사법고시 같은 전문 영역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일반인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분야라면 조금만 노력하면 거뜬히 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내리는 방법에는 이런 것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을 테지만, 자격증에 도전해 보는 것이 특히 유리한 점은 타인과 자유경쟁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이 출발했을 때, 누가 먼저 골인 라인에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자유경쟁의 원리입니다.

문제는 뛰어보지도 않고 나는 안 된다고 스스로 판정을 내린 채, 출발 지점에

언제까지고 주저앉는 것입니다.

10개의 자격증에 도전했는데 5개밖에 따지 못했다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습니다.

10개의 자격증을 따는 동안 얻게 되는 성취감이 얼마나 당신을 도전적으로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오.

@ff

6. 원하는 인생의 모델을 찾아라

--그의 발자국을 쫓아가다 보면 내가 갈 길이 보인다.

 

당신은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이 말과 '당신이 숭배하는 인물은 누구인가'하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동의어입니다.

나는 스무 살 어린 나이 때부터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구로자와

감독을 존경했고, 그가 걸었던 삶의 행로를 그대로 좇으려 애를 썼습니다.

만일 내가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면 소크라테스나 니이체를 존경했을 테고

정치가가 꿈이었다면 링컨을 숭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자나깨나 영화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20대 전부를 찰리 채플린인

구로자와 감독과 함께 지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육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존경한 나머지 그분의 말투와 걸음걸이, 심지어 얼굴 표정까지

그대로 흉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영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내 인생의

장래를 영화에 던지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내가 가려는 분야를 먼저 밟고 지나간 사람을 흠모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예가 있습니다.

전후 영국 제일의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윌슨은 어린 시절에 수상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부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소년 윌슨의 꿈은 장래에 영국 수상이 되는 것, 그래서 소년은 아침마다 다우닝가

10번지의 수상 관저까지 달려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앞으로 40년 뒤에, 난 이 집의 주인이 될 거야!"

소년은 이와 함께 그 집의 주인이었던 사람들, 즉 역대 영국 수상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그들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그들처럼 큰 정치인이 되려고

몸과 마음을 닦아 나갔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한 가지 생각을 머리에 담아 두고, 자나깨나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면

이윽고 그것은 신체의 일부가 됩니다.

소년 윌슨이 후에 영국 수상이 되어,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피폐해졌던 영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소년 시절부터 가진 신념

덕분일 것입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밟고 지나간 선배들의 삶을 철저히 배우고 익힌

소년 윌슨의 노력 덕분일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당신이 꿈꾸는 분야가 무엇이건, 먼저 그 길을 밟은 선배를 마음의 모델로

삼으십시오.

어린 운동선수들은 자기가 흠모하는 선배 선수의 폼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으로

성장하면서 차츰 자기만의 고유의 폼을 만들어 간다고 합니다.

유능한 사업가가 되려는 사람은 선배의 경영 방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차츰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해 나가면 됩니다.

공부로 성공하려는 사람은 선배의 학습 방법을 연구해 보고, 영화배우가 되려는

사람은 선배의 연기 방법을 완전히 머리 속에 담아 두십시오.

그들의 발자국마다에 스며 있는 땀과 눈물의 의미를 그대로 흡수하고, 그들의 삶

속에 진하게 배어 있는 한숨과 절망의 의미도 있는 그것대로 당신의 소유로

만드십시오.

@ff

7. 정상에 있는 사람과 만나 보려 시도하라

--만나려는 시도 자체가 당신을 강하게 한다

 

어느 나라건 최고 정치 지도자는 아무나 만나 주지 않습니다.

아무나 만남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회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분야건 정상에 있는 사람을 20대의 무명청년이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번쯤 만나 보려고 시도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스컴을 통해서나 이따금 볼 수 있는 정상의 사람을 만나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만약 만나고 싶은 사람이 정치인이라면 선거 유세장에 가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재벌 회장이라면, 출근시간에 맞춰 회사 정문에 서 있으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직접 만나 보는 게 아니라 멀리서 얼굴만 잠깐 보는 것이니 아무런

감동도 소득도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를 직접 만나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보려고 시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시도도 안 해보고, 나 같은 사람이 그들을 만날 수는 없으리라고 지레

짐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화로는 안 됩니다.

비서가 아예 말도 붙이지 못하게 막아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써 보면 어떨까요?

그러나 이것도 비서에 의해 일언지하에 차단될 게 뻔하므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자택으로 직접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재벌 회장님을 찾는 엉뚱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들었고,

그분도 찾아오는 손님을 매번 다 만날 수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

정상에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안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것이 바로 당신을 강하게 하고 번쩍이는

아이디어맨으로 만듭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런 용기와 아이디어를 가진 20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젊은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오래 전부터 문호를 개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늘 한번 용기를 내어 최고 지도자를 찾아가 봅시다.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는 한 그들을 만나지 못할 까닭이 없으며,

그럴 수 있는 당신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ff

8. 현장에서 먼지에 덮인 아침밥을 먹어 보라

--현장에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동을 접하라

 

20대는 현자에 나가는 시대입니다.

현장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부디 자꾸자꾸 현장에 나가십시오.

현장에서 일하고, 현장에서 자고, 현장에서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샐러리맨은 회사에서 밤을 새워 보십시오.

무대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대의 노송나무 향기를 맡으면서 홀로 잠들어 보십시오.

영업하는 사람은 거래처 상점의 셔터 앞에서 잠들어 보십시오.

현장에는 현장에만 있는 독특한 공기가 떠다니고 있습니다.

현장이 최고의 교실인 것입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바둑기사는 젊었을 때 스승의 대국 상황에서 기록을 담당하게

됩니다.

상황을 직접 접하는 것만큼 젊은 기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젊은 바둑기사는 컴퓨터에 입력된 스승의 기보를 보면서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는 생각하고 있는 시간까지도 생생하게 재현해 줍니다.

그러나 컴퓨터로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흘러다니는 독특한 공기입니다.

정치인으로 출세하고 싶다면 정치 현장에서 전단을 나눠 주며 냄새를 맡으며 밤을

지새워 보십시오.

외교관이 되려는 사람은 외국을 직접 여행하면서 세계인의 생각 속에 당신을

몰입시켜 보십시오.

피를 흘리고 싸우고 있는 듯한 공기는 현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법입니다.

피가 흘러나오는 듯한 공기를 피부로 직접 느끼고서야 비로소 인간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세한 보고서라도 현장의 공기까지 담을 수는 없습니다.

지침서에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친절하고 좋은 스승이라고 해도 절대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 바로

현장의 공기입니다.

20대에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것이 바로 현자의 공기입니다.

현장에는 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현장에 가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진한 감동이 거기에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진실로 열망한다면, 지금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십시오.

단지 머리 속으로만 그리는 현장에서는, 당신은 어떤 성공의 열매도 따지 못할

것입니다.

@ff

9. 10년을 투자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을 시작하라

--평생을 걸쳐 해도 완성되지 못하는 것을 20대에 시작하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0대인 당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10년 뒤에 당신이 꼭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직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일을, 당신은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벌이가 되지 않습니다.

높은 평가를 받는 일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단계 한 단계씩 착실하게 밟아, 그것의 실현은 아마 20, 30년이

지나야 겨우 이루어질 것이라는 각오로 계속하십시오.

20대는 10년 이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10년을 투자해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일을 시작합시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평생을 투자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을 다시 찾아냅시다.

평생을 다 들여도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성되지 않는 일에 도전해 봅시다.

연극에는 완성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평생을 걸쳐서 만들어야 합니다.

한 번의 공연이 끝났다고 해서, 그것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종 공연이 끝나고 나면, '다음에는 이것을 이렇게 할까?'하고 의논하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입니다.

공연은 이미 끝나 버렸습니다.

다음 공연은 언제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반성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배우입니다.

세상에는 1년 만에 완성되는 일도 있습니다.

한달 만에 완성되는 일도 있고, 하루 만에 완성되는 일도 있습니다.

하루 만에 완성되는 일은, 어차피 누가 해도 하루 만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쁨도 고작해야 하루 정도의 크기일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일생을 바쳐서 매달리고, 그래도 끝내 완성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을 만납시다.

@ff

10. 극장에서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해보라

--손전등 하나로 타인의 발끝을 비추어라

 

신주쿠에 있는 기노쿠니야 빌딩 옥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다음에 기노쿠니야 빌딩 앞을 지난다면 한번 올려다보십시오.

무대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명 시절에, 기노쿠니야 빌딩 옥상을

올려다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기노쿠니야 빌딩 옥상에는 커다란 크레인이 있습니다.

연극을 상연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올리기 위한 크레인입니다.

언젠가 그 크레인을 사용해서 커다란 도구를 들어올려 내 연극을 공연하겠다는

.

그것은 꿈을 들어올리는 크레인인 것입니다.

파르코극장의, 그 아름다운 미술세트로 닐 사이몬의 연극을 해보겠다는 꿈.

연극배우를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스토리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무대 그 자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무대의 노송나무 냄새를 맡는 것입니다.

그 무대에서 공연하는 미래의 자기 모습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연극을 상연하는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공연장에 늦게 도착한 관객의 발끝을 펜라이트로 비추면서, 관객을 좌석까지

안내하는 일을 해보십시오.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역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똑같은 연극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게 됩니다.

장차 좋은 연극배우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펜라이트로 관객을 잘 안내해 주는

사람입니다.

연극을 공연하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고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대본이 완벽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20대인 당신은 장차 당신이 꿈꾸는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 작디작은

펜라이트라도 갖고 있습니까?

그 펜라이트로 타인의 길을 안내하면서 동시에 당신 자신의 길도 비추려고

노력하십니까?

펜라이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30, 40대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은 고작해야 타인의 발끝을 비추고 있지만, 미래의 어느날에는 당신도 저

높은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만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으리라는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무대 위의 주인공 역시 20대의 어느날에는 그런 보잘것없는 일을 통해 자신의

꿈과 신념을 채찍질한 것입니다.

극장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복잡한 지하철역이나 소란스런 시장 모퉁이, 위험천만한 건설현장, 어디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머리 위에 꿈을 들어올릴 커다란 크레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 안에는 아주 작은 펜라이트가 들어 있습니다.

크레인과 펜라이트.

당신의 꿈과 그 꿈에게 가도록 만들어 줄 당신 자신의 의지의 눈.

다음에 연극을 보러 가면 안내하는 사람도 세심히 관찰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살며시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ff

11. 인생의 시간표를 작성하라

--확실한 계획을 세우면 확실한 방법이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다고 합니다.

기껏 꿈이라고 말하는 것이라 해봐야, 텔레비전의 화려한 연예인정도이거나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직업이 대부분인데 그나마도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태반입니다.

", 되는 대로 그럭저럭 사는 거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20대를 보면, 도대체 그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어 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물론 20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막연합니다.

확실히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은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어느

회사든 취직을 하겠지요."

이렇게 자기 인생을 남의 것처럼 관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일단 이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기회가 되면 장사라도 해야죠. 무슨

장사를 할지는 더 두고 봐야 되겠어요."

이렇게 결정을 뒤로 미룬 채 시간을 허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님한테 자금을 지원받아 조그만 슈퍼마켓이라도 해볼까 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요."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불행한 일은, 이렇게 자기 인생에 대한 확고한 시간표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 채로 20대의 대부분을 허비하게 되고, 그렇게

20대를 보낸 사람은 30, 40대 역시 아무런 소득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20대에는 자기 인생에 확실한 시간표를 준비해 둡시다.

난 아직도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받아 두었던 일주일 시간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무슨 과목에 어느 수업을 받는다, 화요일은 어떻고, 수요일은 어떻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표대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고 여러분이

있습니다.

30, 40대가 되면 무엇을 하고 무엇은 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시간표를 정해 놓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엄청난 차이가 날 것입니다.

되는 대로 20대를 살았던 사람의 30대는 자기 의지라고는 전혀 없는, 되어지는

대로 되고 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너무도 막연해서, 마치 안개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20대 인생일지라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깃과 자신이 닿고자 하는 목표 지점은 확실히 해놔야만 합니다.

그런 시간표를 짜기 위해, 당장 한 자루의 연필과 한 장의 종이를 준비합시다.

남들이 보면 그 목표가 허황되다고 비웃을지 몰라도, 그런 시간표가 있는 한

당신의 20대는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ff

12. 부모와 함께 여행을 떠나 보라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인간애의 시작이다

 

20세 이상이 되면, 대부분의 젊은이가 이제 나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외치면서 자나깨나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꿈꾸게 됩니다.

부모의 관심도 거부하고, 심지어 부모라는 존재마저도 무시하려는 경향이 요즘

20대의 생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풍조는 서구사회의 인습이나 가족관이 동양사회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생긴

잘못된 것으로, 우리는 우리 나름의 훌륭한 가족관계를 더욱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가정은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려면 훌륭한 가족관계부터 배우고 익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요즘의 20대 젊은이들 중에서, 과연 부모와 단 며칠이라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나를 이 세상에 오게 만든 부모와 서로의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 보는 것도 당신의 20대를 매우 기름지게 만들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의 지식 수준이 당신보다 현격히 떨어져서 도저히 대화상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당신에 대한 편견도 무시할 수 없어서, 일방적인 명령의 자리가 되거나

의견 충돌의 장이 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 것입니다.

부모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맨 처음 만남 스승이자 맨 마지막까지 남을

스승입니다.

대부분의 스승은 한정된 기간 동안만 가르치고 헤어지지만, 부모님은 평생 당신을

가르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제 광활한 생의 들판으로 나아갈 당신에게 있어 진심어린 누군가의 조언은 꼭

필요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때, 이 세상 누구보다도 당신을 잘 아는 부모님과의 대화는 서로의 지식

수준을 떠나서 정말로 오래 기억될 대화의 시간을 제공할 것입니다.

20대가 시작된 이후로, 당신은 부모님과 얼마나 자주 당신의 꿈에 대해 대화를 해

보았습니까?

20대가 된 이후로, 당신은 얼마나 자주 부모님이 안고 있는 그분들 나름의 고민에

대해 얘기해 보았습니까?

당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에 대해, 부모님이 들려주는 그

진솔한 얘기에 귀기울여 본 적이 있습니까?

이제 20대 후반이나 30대가 되면, 당신은 원하지 않아도 정말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고립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애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20대 어느날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바로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게 만드는

계기를 줄 것입니다.

오늘 저녁 귀가하기 전에, 여행사에 들러 부모님과 함께 떠날 수 있는 관광

티켓을 구입해 보는 게 어떨까요?

@ff

13. 혼자만의 노래를 만들어라

--착각하기 때문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얘기를 들으며, 누군가에게 혼쭐이 난 기억이 없습니까?

20대는 착각의 시기입니다.

인생은 착각하는 편이 오히려 즐겁습니다.

착각하는 것에도 재능이 필요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자신이 껴안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여자들의 특기입니다.

언제나 주체를 자기 자신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이야기한 다음에, 당신에게 리포트를 내주었다고 합시다.

나는, 내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쓴 사람에게 50점을 줍니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한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쓴 사람에게는

100점을 줍니다.

그 사람과는 액면 그대로의 말보다도 내가 가진 무엇인가가 통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대답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아니, 그것은 자네가 발견한 것이네."

대답은 당신의 머리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힌트를 얻어, 당신의 머리 속에 있던 대답을 발견한 것입니다.

영화 감상문을 쓸 때 줄거리를 쓰는 사람은 50점짜리입니다.

물론 자기 멋대로 쓴 사람은 잘못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못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나는 영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책에도 자주 쓰고 있습니다.

내가 쓰는 영화 이야기는, 이렇게 이야기하긴 존 쑥스럽지만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재미있느냐 하면, 이야기를 듣고 보러 간 사람이 "속았다!"고 화를 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러 갔더니, 너무나 시시하더라."

나도 어릴 때는 영화평론가들에게 감쪽같이 속아서 영화를 보러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평론은 최고로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도 재미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내 영화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내멋대로 착각하면서 보기 때문입니다.

대학 연극과 시절의 친구들은 곧잘, '자넨 영화 이야기를 지나치게 재미있게

쓰더군'하고 놀리곤 합니다.

이것은 칭찬입니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줄거리가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이야기가

영화보다 더욱 흥미진진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 모두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라도, '우아! 이거 정말 대단한

영화로구나! 정말 재미있어!'하고 혼자서 감동하곤 합니다.

영화는 진지하게 보면 참으로 따분하고 시시합니다.

따라서 제멋대로 착각하면서 읽으십시오.

책도 마음껏 착각하면서 읽으십시오.

음악도 마음껏 착각하면서 들으십시오.

노래방에서 엉터리 가사로 태연하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멋진 사람이 아닐까요?

때로는 원래의 가사보다 제멋대로 바꾸어 부르는 가사가 훨씬 더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노래방에서는 마음껏 착각하면서 노래를 하십시오.

당신은 '착각하면서 볼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착각하면서 보는 힘이 당신의 재능입니다.

착각하면서 보는 힘이 당신의 창조 능력입니다.

그것이 당신을 보다 넓고 깊고 높은 또다른 세계로 안내합니다.

@ff

14. 음지식물의 강건함을 배워라

--모두에게서 무시당하는 20대가 30대에 혜성처럼 나타나는 스타가 된다

 

어떤 젊은이들은 내게 때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많은 일을 하고 계시지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단 한 가지 일밖에 하고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20, 30대에 새로 시작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계속해온 바로 그 일입니다.

다만 내 스무 살 때부터의 노력을 당신이 모를 뿐입니다.

작가라고 불리기 전부터 나는 죽을 만큼 기진맥진하면서 원고를 써 두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당신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작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어느날 갑자기 배우가 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연출을 공부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광고회사에서 뒤로 벌렁 넘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매일매일 연출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소극장에서 단역배우로 연극을 했다는 것도 아무도 모릅니다.

20대 시절 내 일인극을 보러 온 적이 있는 사람은, 작디작은 소극장에 들어갈 수

있는 극히 한정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것이 내 20대였습니다.

아무리 연극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소극장에 출연하는 연기자까지 알 수

없습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유명작가라도 '저 사람은 신인인가?'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20대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사람의 20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게도, 처절하고도 비참한 20대가 있습니다.

20대는 어느 누구에게나 무시당하는 시대입니다.

무시당하는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만이 이윽고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무시당하는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아는 어느 유명한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현재의 나만을 부러워하고, 현재의 내가 누리는 부와 명예를 시기하는

걸 보면 때려 주고 싶다'고 말입니다.

10대 후반부터, 황량한 세상의 들판을 홀로 달려온 그의 고독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공들여 쌓았던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좌절의 순간이 그에게도 있었음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좌절의 뒤편에서 홀로 눈물지으며 세상의 벽을 실감하고 아파하던 순간순간이

있었음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20대에는 영광의 열매만이 보이는 시기입니다.

20대는 고독과 눈물과 좌절의 전면에 드러나는 화려함만이 보이는 시기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왜 무시만 당하고 실패만 거듭하면서 저 사람처럼 될 수 없나하고

자기 무덤을 파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무시당했다는 그것 자체로 이미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20대에는 인정받기보다는 무시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양지식물보다는 음지식물이 더 강하고, 온실 속의 꽃보다는 황량한 들판의 이름

모를 꽃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ff

15. 100권의 책을 1년 목표로 독파하라

--책 속에 길이 있음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지독한 책벌레가 아닌 바에야, 1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1주일에 두 권의 책을 읽어야 1년에 100권 내외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친구와 만나야 하고, 서클활동도 해야 하고, 다른 할 일도 많이 있는데 매일

매시간을 책에만 매달려 살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사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데에는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손과 발이 미치는 곳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한다고 해봐야 20대의 10년 동안에 얼마만큼 사회적 체험을

할 수 있겠습니까.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간접체험이란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더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20대에, 1년에 100권씩 책을 읽는다면 10년 동안 1000권의 책을 읽은 것이

됩니다.

가히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쯤은 된다 하겠습니다.

20대 전반까지는 교육에 의해 지배되지만, 30대 이후의 삶은 지혜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한번 격차가 벌어지면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책에 인생의 모든 지혜가 다 들어 있다고 는 말할 수 없지만, 아직은 책만큼 많은

지혜를 담고 있는 매체도 없습니다.

1년에 100권씩, 하루도 거르지 말고 책의 양식을 섭취하십시오.

어느 분야, 어느 위치에 있건 간에 최고가 된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속해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확실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한 가지 진리를 믿고 있었습니다.

바로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진리입니다.

20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중에서 가장 필요하고 가장 쉬운 일이 바로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ff

16. 전자제품 하나를 완전 분해해 보라

--분해했다 다시 조립해가는 과정의 소중함

 

어릴 때 보면, 유난히 손재주가 있어서 라디오 하나쯤은 거뜬히 분해했다가 다시

원상 복구시키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일인데, 내 친구 하나는 오토바이를 완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게 취미인 녀석도 있었습니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기만 하면 헛간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이고 오토바이 조림에

매달리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경건함이랄까 모골이 송연해지는 싸늘함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나는 원래 그런 것에는 소질이 전혀 없어서 하다 못해 전구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허둥지둥 남의 손을 빌립니다.

그래서 손이며 얼굴이 온통 기름투성이가 되어 기계 부품을 만지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면서 사내 자식이 그럴 시간이 있으면 밖에 나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는

게 낫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20대 시절에 전자제품 하나쯤 완전 분해 완전 조립을 시도해

보지 못한 게 여간 아쉽지가 않습니다.

조그마한 라디오 하나라도 수백 개의 작은 부품이 모여 한 개의 완성품이

나옵니다.

지금은 공정이 완전자동화되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기계에 의해 진행되지만,

가끔은 순전히 수작업에 의해서 전자제품이 완성되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그런 전자제품을 혼자 힘으로 뜯어냈다가 다시 원상으로 복구시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더구나 특별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디에 무엇이 어떻게 결합되고,

어느 위치에 놓아야 하는지도 따로 꼼꼼히 적어놔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제품에 지식이 별로인 사람은 아무리 따로 자세하게 적어 놓는다 해도

착오를 일으키기가 쉬워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꿰맞추다 보면, 언젠가는 원상에 비슷하게 되어 나름대로

완성되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 그럼 스위치를 올려 볼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살그머니 스위치 버튼을 올려 보니 이게 웬일,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어딘가의 부속이 잘못 자리잡은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하나의 완성품을 탄생시켰을 때, 그때 느끼는 쾌감은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의 일이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에야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것, 수많은 실패를

맛봐야만 비로소 진정한 내 것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20대엔 가장 복잡한 전자제품 하나를 분해해 봅시다.

텔레비전 하나쯤 완전히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봅시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몇 번이고 실패해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너무나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ff

17. 하루에 원고지 한 장을 채워라

--하루에 한 장을 쓰면, 365일 만에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된다

 

나는 대학 시절의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행사에는 도무지 인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진을 찍어 줄 친구도 없었습니다.

겨우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상당히 박진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원고를 쓰는

사진입니다.

그 유일한 사진은 도쿄까지 나를 찾아온, 고교 시절의 친구가 찍어 준 것입니다.

물론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원고를 쓰고 있는 자세를 취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자정 이후의 내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대학 4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밤 그렇게 원고와 씨름을 했습니다.

모처럼 고교 시절의 친구가 도쿄까지 찾아왔는데, 이야기도 하지 않고 글만 쓴

것이지요.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더군요.

그래서는 친구가 생길 리가 없습니다.

원고를 쓰는 모습을 보고 그 무렵부터 작가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훌륭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밤을 새우고 또 새워 아무도 봐주지 않는 원고를 쓴 것입니다.

그 무렵 영화감독을 꿈꾸던 나는, 어떻게 하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지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매달 100편의 영화를 본다는 기준을 부과한 것도, 하루라도 빨리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방법이었지요.

영화에 관련된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내가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구로자와 감독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더군요.

'영화감독이 되는 지름길은, 좋은 각본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좋은 각본은

언제든지 부족하다. 하루에 원고지 한 장을 쓰면 1년이면 365장을 쓸 수 있다.

그것으로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나는 무릎을 탁 치며 감동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는 보통 200자 원고지를 사용합니다.

200자 원고지를 365장 채우면, 충분히 2시간짜리 영화가 됩니다.

구로자와 감독도 조감독 시절에, 일이 끝나면 밤마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그 글을 읽고 나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좋아, 나도 매일 밤 글을 쓰자. 하루에 한 장이 아니라, 매달 시나리오 한 편을

쓰는 거다!"

그리고 매일, 낮에는 영화 3편을 보면서 밤에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내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구로자와 감독은 아무리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도, 집에만 가면 반드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나도 그 흉내를 내어, 가령 친구가 시골에서 놀러 와도 시나리오를 썼던 것입니다.

사진 속의 나는 부드러운 펜을 독특한 자세로 잡고 있습니다.

글을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건초염에 걸려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펜을 붓처럼

잡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 이후 몇 번이나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쓴,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그 시나리오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 창작의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에게도 똑같은 방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꿈이 작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운동선수라도 좋고, 과학자라도 좋고, 사업가라도 좋습니다.

당신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원고지를 하루 한 장씩만 채워 나가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의 꿈을 적으십시오.

거기에 당신의 부족함, 당신의 장점, 당신이 갖고 싶은 것, 이미 놓쳐 버린 것을

적으십시오.

시를 써도 좋고, 시나리오도 좋습니다.

완전한 작품이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20대에 완전한 작품이 탄생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하루 적어 나가는 동안에, 20대가 끝나 갈 무렵에 이르러서는

이윽고 작품성이 뛰어날 뿐더러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는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공자가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장씩 원고지를 썼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ff

18. 가능한 한 많은 나라에서 똥을 누어 보라

--우물 안의 개구리는 한뼘의 하늘밖에 모른다

 

당신은 몇 개의 나라에서 똥을 누어 보았습니까?

내가 맨 처음 미국을 일주한 것은 스물두 살 때였습니다.

닛카쓰 로망 포르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1년 전이었지요.

요즘 젊은이들에 비하면 늦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광고회사인 하쿠호도에 들어가서 광고를 만들게 된 이후에도, 내게 해외 업무를

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광고회사 사원이라면 CF 촬영을 위해 늘 해외에 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입사 3개월 만에 타히티에 한 달 동안 가 있던 운좋은 녀석도 있었지만 나는

입사해서 얼마 동안은 국내의 시골구석만을 돌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해외에 나가기 시작하자 뒤를 이어 해외촬영이 쏟아져서 나 역시

많은 나라에 가 볼 수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을 해외에서 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해외에는 20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깔려 있습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든지, 타지에서는 변비에 걸린다고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개와 마찬가지로, 똥을 눈 곳이 바로 당신이 정복한 땅입니다.

재벌기업의 후계자 수업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해외경험을

쌓게 하는 것입니다.

유학을 보낸다든지, 장기간 여행을 보낸다든지, 아무튼 기회만 있으면 해외로

내보내 가능한 한 많은 나라에서 똥을 누게 만듭니다.

재벌기업의 후계자라면 회사 안에서 경리장부라도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 경영수업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아는 어느 기업의 회장님은 외동아들인 후계자에게 단돈 몇백 달러를 손에

쥐어 주고는 해외로 쫓아 버리는 일을 20대 초반 때부터 시켰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똥을 누었다는 것은 비단 자신의 세계를 그만큼 넓혔다는 사실

이외에도 다른 많은 상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접했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선뜻 입에 넣는 일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건 한번쯤

경험한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부득부득 자기 나라 고유의 음식만 찾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대단히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나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나라의 음식을 즐겨 보십시오.

음식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그 나라 국민들의 성격과 취향을 엿보는 것도 귀중한

체험이 될 것입니다.

20대에 가능한 한 많은 나라를 돌아보게 되면,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는 면에서도 또다른 소득을 얻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만큼 불행한 존재는 없습니다.

우물 밖으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20대만큼 불행한 젊은이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당신이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사회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들과 당신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특히 당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그 나라의 20대 청년을 만나서 그가 구축해 놓은

세계와 당신이 이제까지 터를 닦아 놓은 세계를 냉정하게 비교해 보십시오.

20대의 눈에 비치는 다른 세계의 모습은 평생 동안 당신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당신을 움직이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다른 나라를 가 보십시오.

지금 당장 그럴 수 있는 형편의 20대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많은 다른

지방이라도 찾으십시오.

20대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이 시기에, 남보다 훨씬 많은 땅을 밟았다는 게 얼마나

큰 인생의 자산이 되는지를 당신은 30, 40대가 되면 절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똥을 눈 곳은 이미 당신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ff

19. 외국인과의 대화에는 언제나 용감하라

--국제화시대의 경쟁자는 나라 밖에 있다.

 

대학 시절에 마틴이라는 탐험가 교수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 교수님은 강의를 모두 영어로 했는데, 너무나 흥미롭고 가슴을 들뜨게 만드는

내용들이었지요.

교수님은 탐험 이야기를 하다가 마치 인디아나 존스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는, '다음

시간에'라고 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첫 수업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자신의 영어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 영어는 100%50%는 브로큰 잉글리시이고, 나머지 50%는 커리지

잉글리시입니다. 커리지 잉글리시의 커리지는 대학의 'college'가 아니라 용기의

'courage'입니다."

즉 절반은 엉터리 영어이고, 절반은 용기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이지요.

그래도 나는 외국에 가면 언제나 영어로 인터뷰했습니다.

내 영어가 통한 것입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취재를 하기 위해 왔다고 하면, 상대방이 오히려 나보다

더 긴장하곤 합니다.

돌아와서 편집할 때 비디오를 보면 내 영어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게 되지만,

상대는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에 언제나 정확히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용기의 승리입니다.

하와이에서는 일본일 할머니들이 발도 안 되는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이것 역시 용기로 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어디에서나 외국인과 마주쳐야 하는 국제화 사회에서, 아직도 외국인만 보면

주눅이 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내 주변의 같은 또래의 동족 젊은이뿐만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의 20대가 당신의 경쟁자가 됩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사사건건 우리에게 도전해온다면 사정은 훨씬

쉽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할 바에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여겨봐야만 합니다.

그들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고, 웬지 한뼘쯤 작아지는 듯한 느낌에 빠져든대서야

무슨 경쟁이 되고 무슨 시합이 되겠습니까.

외국어가 질색이 아니라 외국인이 질색인 것입니다.

외국어가 두려운 게 아니라 그 나라의 힘에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자기 나라 언어라도 상관없으니까, 외국인과 말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외국인 선생님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유치원 때 고베에 있는 록코교회에서, 그 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오사카에 있는 예수교 교회에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입시 영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외국인을 만나도 전혀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인을 접촉한 것이 두려움을 없애 준 것이지요.

나는 회사에 다닐 때 마루노우치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했는데, 그 지역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말도 안 되는 영어로 길을 가르쳐 준 다음에는 웬지 기분이

들뜨곤 했습니다.

되는 대로 가르쳐 준 다음에 항상, 다음 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영어로 길 안내를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컴퓨터가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는 시대는 더욱 가속적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갈

것입니다.

컴퓨터의 언어는 다름 아닌 영어입니다.

영어를 알아야만 다음 세기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어를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만, 언제나 작심삼일의 실패로

끝나고 있다면 오늘 당장 내 말대로 해보십시오.

우리말이라도 좋으니, 외국인에게 말을 건네 보십시오.

@ff

20. 자신의 무례함을 매일 밤 반성하라

--자신의 무례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무례한 법이다

 

나는 20대의 젊은이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20대의 젊은이들에게서 강연을 해달라는 의뢰가 많이 들어옵니다.

강연을 받아들이는 원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나는 글을 쓰거나 작품을 만드는 것이 본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강연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정열이 있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반드시 간다.

가령 듣는 사람이 단 세명밖에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먼 곳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간다.

강연을 듣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은 다만 포스터나 잡지를 보고 강연장에 와

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강연을 실현하기 위해 담당자는 기획을 하고, 회의를 하고, 업무 분담을 결정하고,

교섭을 하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그것은 상당히 힘든 작업입니다.

20대에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강연을 부탁해야 좋을지 전혀

모릅니다.

따라서 담당자는 저명한 선생님에게 강연을 요청하다가 호되게 야단맞은 경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좋은 공부입니다.

야단을 친 저명한 선생님이 결코 심술궂은 사람은 아닙니다.

야단은 친다는 것은 여러분을 어린애 취급하지 않고 어른으로서 대접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일반상식이나 일반적인 예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린아이 같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만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은 예의도, 도덕도, 상식도 모두 다른 사람만큼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자기가 예의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신은 전혀 객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음치와 똑같습니다.

자신이 음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자기 노래를 냉정하게 듣는

모니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래방에 가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자기 목소리를 듣고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도 노래를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고 나서 자기 노래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음정이 빗나가거나 틀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은 모니터가 나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노래를 못 불러도 좋으니까, 자신의 음정이 얼마나 빗나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일반상식이나 예의를 모르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지

똑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20대의 젊은이들에게 대단히 관대합니다.

왜냐하면 예의는 앞으로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예의나 일반상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관대하게 봐주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지, 결코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예의를 모르는지 자각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향해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ff

21.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라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말할 수는 있어야 한다

 

20대는 자신의 일을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일을 선택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이 20대입니다.

20대에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까닭에 더욱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구애되어야만 합니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데, !'라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좋아하는 일을 포기한다면, 이윽고 30대가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되었을 때는 예전에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떠올릴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함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이렇게 묻습니다.

"자네는 어느 것을 좋아하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나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법입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자네는 어느 것은 좋아하지?'하고

물었습니다.

성실해 보이는 20대 여성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저 혼자는 결정할 수 없어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자기 혼자서 결정할 수 없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니, 결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좋아하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네."

"...회사에 돌아가서 의논해 보겠습니다."

자신의 기호에 대해 왜 윗사람에게 물어야 하는 것일까요?

20대인 그녀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하기 전에 싫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좋아하는 것을 물었을

뿐입니다.

그녀는 가여울 정도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성실하면 좋아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너무나

기본적인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정할 권리가 없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는 습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결정해 달라고 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고

말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 결정해 달라고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결정을 맡기면 아주 편안합니다.

마지막에 불평만 하면 되니까요.

상사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자 별로 잘 되지 않았다, 그럴 때는 '상사가 이렇게 하라고 했다'라고 간편한

도피처를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일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과 일을 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과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억지로 참으면서 일을 하가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20대는 물론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이것이 좋다'라고 마음속으로

정해둡시다.

그렇게 정해두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빨리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ff

22. 뱀의 이빨처럼 날카로워라

--가만히 앉아서 홈런을 치겠다는 허황된 꿈을 버린다

 

나는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기를 바라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사람 정도는,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말이 통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 진심을 모두 담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던지고 있는 공에 대해 당신은 헛방망이를 휘둘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는 이야기라도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듣고 있는 사이에, 내 공을

멋지게 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스치기만 해도 상관없습니다.

파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연속 삼진을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방망이를 휘두르십시오.

그러나 뻔히 보면서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삼진을 당하는 일만은 저지르지

마십시오.

당신이 목적하는 바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홈런타자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일랑은 아예 버리십시오.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파동을 어떻게 잡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파동을 잡을 수 있는 고성능 안테나를 갖도록 합시다.

쉽게 '알아서'는 안 됩니다.

'모르기 때문에 듣지 않는다'는 자세도 안 됩니다.

지금은 모르더라도 언젠가 아는 날이 올 때까지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지 공짜로 얻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20대에 공짜로 얻은 것은 30, 40대에 커다란 부채가 되어 당신을 짓누를

것입니다.

여기 가난하지만 꿈만은 부자인 20대가 있다고 합시다.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매일매일 헛방망이질을 계속합니다.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껏 비웃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젊은이는 부질없이 헛방망이질을 계속하는 20대의 시간은 보냈습니다.

그가 20대의 문턱에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좌절의 쓰디쓴 잔만을 거푸 마셨다는 사실이 그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었는지,

그를 비웃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30대가 되어서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의 생을 펜스 저쪽으로 날려보낼 방망이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누군가는 일찍 홈런은 치고 열화간은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헛방망이질을 계속하면서, 마침내 2군으로 밀려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당신이 얻어내는 것이 있습니다.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당신의 유니폼 속에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숨어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있던 것.

좌절의 한숨과 실패의 그늘 속에서도 당신이 놓치지 않고 꼭 붙들고 있던 것.

그것은 실패했기 때문에 더욱 강건해진 당신의 육체요, 정신입니다. 30대는 그런

것을 더 요구하는 시기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이 다 이같은 이치에 따라 좌우됩니다.

끈기 있게 물고 늘어져서, 끝내는 내것이 되었을 때의 쾌감.

뱀의 이빨과도 같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십시오.

그런 쾌감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맛보느냐 하는 게 성공과 실패의

차이입니다.

@ff

23. 사흘마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라

--작심삼일이 목적지에 닿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이어트처럼 외국어 공부를 합시다.

만약 다이어트를 한다면 누군 우선은 시작은 해볼 것입니다.

'어디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시도해 보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작심삼일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시작해 보지 않으면 작심삼일로 끝날지 더욱 지속할지 모르는 법입니다.

작심삼일로 끝나 버린 것에 대해, '무엇을 해도 작심삼일로 끝난다'고 자신을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깨달은 것만

해도 작심삼일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작심삼일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자꾸만 작심삼일을 하십시오.

시작하기 전부터 너무 수단의 효율 따위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100%의 수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해보면 어떨까 하는

30%정도의 수단으로 시작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사이엔가 수단 자체가 저절로 성장해갈 것입니다.

나는 체육관에서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데, 3개월마다 '지금까지 해온 방법보다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욱 좋겠다'하고 새로운 사실을 저절로 흥미진진하게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좋은 방법으로 자꾸자꾸

진화해가는 것이지요.

문제의 핵심은 우선 시작하라는 것이지요.

실패할지언정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작심삼일은 분명히 나쁘지만, 작심삼일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더 나쁜 법입니다.

작심삼일을 시작하지 않는 한 수단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외국에 가 보고서 가장 크게 얻는 성과는 진지한 마음으로 영어공부에 착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맥도날드에서 옆사람이 햄버거 사는 소리를 듣고, 그토록 간단한

표현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배운 정중한 표현은 사용했지만, 그보다 간단한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자리에서 메모하십시오.

메모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외우는 것은 아닙니다.

10개를 외웠지만 그 다음날에 10개 모두를 잊어버리는 일도 있지만 그렇게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외운 것을 잊어버린 것 같지만, 결코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당신의 머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겉보기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은, 체육관에서의 트레이닝과 마찬가지로 3개월이

지나야 합니다.

변화가 눈에 보이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은 좌절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효과가 보이는 3개월 후까지 계속 노력한 사람이 이기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성공의 열쇠는 길모퉁이를 돌아나가야 비로소 숨어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길모퉁이를 돌아나가야 비로소 숨어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몇 발짝만 더 가면 열쇠를 손에 넣을 수가 있는데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손을

들고 맙니다.

작심삼일이 쌓여야만 비로소 일주일이 되고, 열흘이 되고, 일 년이 됩니다.

삼일 동안의 노력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선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행동하십시오.

@ff

24.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잊지 말라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작업의 기쁨을 깨닫는다

 

모든 소박한 작업에는 소박한 작업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멍청한 일을 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소박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은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려한 일을 꿈꾸고, 그곳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박한 일에서 생기는 기쁨은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소위 '미쳤다'는 것입니다.

나는 체육관에 가기 전까지는 세상에 그토록 무의미한 행위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역기를 들어올리거나 내릴 뿐, 아무런 생활 활공이 없습니다.

한 달을 다녔다고 해서 근육이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회사의 상사가, '역기를 10번이나 들었다 내렸다 했다네'라고 했을 때는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체육관에 가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것에 푹 빠지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즐거운 일이 이토록 많이 있는데, 사람들과 사귀지도 않고 왜 혼자

틀어박혀 저런 일을 하는 것일까?"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사람들이 단숨에 알 수 있는 효과가 나오기 전에, 자기밖에

모르는 한없는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나 온 삶의 행로 위에서, 정말이지 한 번이라도 미친듯이 어떤 일에

매달려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성공으로 끝났건 실패로 끝났건 관계없이 혼신의 힘을 다 모아 집중해 본

적이 있습니까?

뼈가 으스러지도록 힘을 쏟아서, 마침내 탈진을 할 만큼 지쳐 쓰러져 본 적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단 한번이라도 있다면,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현재 위치에 관계없이 당신은 성공의 월계관을 쓸 자격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특징 중에, 지나치게 타인의 이목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일에 이렇게 빠져 있는 걸 다른 사람이 안다면 날 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요?

항상 이런 생각이 앞서니, 어떤 특별한 일에도 손을 대지 못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일에만 하려는 겁니다.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특별해져야만 합니다.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한테는 비록 미쳤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특별한 일에 고집스럽게 손을 대야만 합니다.

특별한 일이라 해서, 무조건 화려한 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주 소박하고 작은 일이라 해서, 그것에서 성취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성취의 기쁨은 성취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라도 한 번도 성취의 기쁨을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성공의 맛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전의 묘미를 알 까닭이 없습니다.

@ff

25.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사랑에 빠져 보라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해 봐야 비로소 인생은 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은 합니다.

사랑으로 태어났고, 사랑하기 위해 성장하며, 사랑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설령 그것이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나 버렸을지라도, 정말 생명과 맞바꿔도

좋다고 생각될 만큼 영원히 가슴에 자리잡은 그런 혼신의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습니까?

20대에는 반드시 이런 사랑에 한 번쯤은 빠져 봐야 합니다.

그 사랑의 결론이 어떤 식으로 나건 관계없이, 그 혼신의 경험은 당신의

정신세계를 굉장히 크게 넓게 깊게 확대시켜 놓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시인이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작가가 사랑의

슬픔에 대해 아무리 많은 원고를 쓴다고 해도 거기에 공감하는 독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랑에 눈이 먼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령 완전히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지라도, 그런 경험은 당신을

또다른 세상으로 안내하는 좋은 선생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것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상을 또하나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가장 큰 힘은 용기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라도 다 하겠다는 용기,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불 속이든 물 속이든 뛰어들겠다는 각오,

부디 이런 사랑을 한 번쯤은 경험하십시오.

내 친구 중에는 스무 살이 어린 시절에 어느 소녀와 나누었던 사랑의 추억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어."

그 소녀를 떠올리고, 그때의 추억을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친구는 말합니다.

당시 재수를 하던 친구는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년 동안 하루에 거의

한두 시간 정도밖에 안 자고 공부를 해서 다음 해에 동경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공부와는 거의 담을 쌓고 있던 친구가 '내년에 우리 대학에 합격하면 사랑을 받아

주겠다'는 소녀의 말에 힘을 얻어 정진한 결과, 마침내 일본 제일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친구는 그 소녀와 참으로 마음 아프게 헤어졌다고 합니다.

소녀가 부모님과 함께 야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대형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바람에 불구자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소녀는 스스로 친구 곁은 떠났다는 것입니다.

불과 3년 남짓한 기간이지만 정말로 순수한 열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내 친구는

소녀의 얼굴마저 희미해진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끝없이 저며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뭔가 크게 힘든 일을 당하면, 소녀와 나누었던 약속을 지키려고

발버둥쳤던 재수생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인간은 누구나 아름답게 됩니다.

추악한 사람은 추악한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매일 매시간마다 선한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선한 것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만 머리에 담고 있기 때문에 악한 법입니다.

사랑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것은 또한 무한한 자기 희생입니다.

사랑에 자기 자신은 모조리 던질 수 있는 사람만이 일에도 모든 걸 던질 수

있습니다.

세기의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일지라도, 그런 사랑의 수렁에 깊이깊이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인생의 참맛을 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도 이런 사랑에 빠져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하십시오.

부디 전심전력 모든 걸 던지는 사랑에 빠지십시오.

@ff

26. 자신의 꿈 앞에서 항상 눈을 번쩍 떠라

--아무리 캄캄한 어둠이라도, 눈을 뜨면 보인다

 

나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영화감독이 되려는 꿈을 가진 학생은 영화학과에 진학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학생은 다른 나라 학생과 달리 대개 대학을 선택하는 단계에서

장래의 일을 결정합니다.

장래의 일을 결정하지 않고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사정상,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에서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을

분명히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학 졸업이 코앞에 다가와도,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잘 모르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탓입니다.

취직할 학생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묻는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다.

스스로의 앞길을 결정하도록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니까요.

질문을 하는 사람도,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없었을지 모르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우선 어느 회사에라도

들어가 놓고, 그러고 나서 천천히 생각하겠다는 느긋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들 남의 돈 먹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회사에 들어가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하다가 어렴풋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를 무렵에는 이미

정년 퇴직이 코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당신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서 움직이도록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지 못한 나라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만 하면 그만큼 꿈을 빨리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웬만한 노력으로는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에 눈을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모두가 잠에 취해 있으니까, 남보다 일찍 눈을 뜨면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기회는 오히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우리나라에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하고 싶을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지금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20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당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ff

27. 마음의 샤워를 즐기는 법을 익혀라

--좋아하는 일을 반복하면 언젠가 내것이 된다

 

처음에는 영화를 볼 때마다 감상문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그만두었지요.

감상문을 쓰고 있자니 어느 사이엔가 감상문을 쓰기 위해 영화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영화를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감상문을 쓰는 것은 부수적인

목적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감상문을 쓰기 시작하자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때로는 한 번 본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잊어버리면 다시 보면 됩니다.

실제로 봤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몇 번이나 본 영화도 있습니다.

잊어버리고 두 번째 보면, 전에는 느끼지 못한 재미를 깨닫는 일도 있습니다.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는 다음 상황을 알고 있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두세 번을 본 영화도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영화는 두 번째도, 또한 세 번째 볼 때도 한껏 즐기면서 볼 수

있습니다.

몇 번을 봐도 인상에 남지 않아서 다시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영화는 대부분

도중에서 잠이 들기 때문이죠.

나는 한 달에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본 탓에, 극장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비결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장면이 시작되면 퍼뜩 눈을 뜹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할 수 없겠지요.

20대의 나는 밥도 영화관에서 먹고, 잠도 영화관에서 잤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영화로 샤워를 한 것입니다.

지금의 내 직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작가와 배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가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배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대학시절에 본

4,000여 편의 영화의 샤워가 귀중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잊어버린 것 같아도 몸이 기억하고 있고, 마음이 기억하고 있고 영혼 속에 녹아

있습니다.

기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록해서 기억하는 것으로, 이것은 이성적으로 의식해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기록에 남지 않지만 피 속에 흐르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감성적이고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잊어버린 듯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와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모든 창작활동은 감성적 기억의 화학반응으로 나타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대인 당신이 지금 훈련해야 하는 것은 피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기억

방법입니다.

피 속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기억하기 위해서는 영화에서도, 음악에서도,

미술에서도, 그리고 책에서도, 마음의 샤워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십시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20대에는 그런 반복을 통해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의 핵심들을 완전히 몸 속에 용해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의 샤워가 30, 40대가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ff

28. 불행한 자들의 후원자가 되어 보라

--불행이 무엇인지 알아야 행복도 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여자친구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학 4년은 강의실과 현장 학습의 연속으로,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곳에서 보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첫번째 책이 나온

감격이 한참 나를 들뜨게 할 무렵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가 볼 데가 있어. 잠시 시간을 내주지 않겠어?"

그녀의 손에 이끌려 내가 간 곳은 중증 지체부자유자를 수용하는 복지시설

기관이었습니다.

손과 발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뒤틀린 아이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머리통 하나가 상체를 전부 차지할 만큼 커다란 아이 하나가 눈만 멀뚱히 뜬 채

나를 바라봐서 흠칫 놀라기도 했고, 얼굴이 온통 침투성이로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이상한 표정을 짓는 아이가 갑자기 내 손을 잡는 바람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거기에 가기 전에는 그런 아이들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런 시설기관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들과 함께 한 두세 시간 동안, 나는 도대체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이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친구가 왜 나를 거기까지 안내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돌아오는

길에서였습니다.

세상에 음지가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세상에 대해 모든 걸 아는 양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는 진심어린 충고였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들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행복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 말에 진실로 공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따뜻한 충고이기도 했습니다.

20대인 당신이 알아야 할 생의 무대에 그들을 후원하는 자원봉사자가 되어

보십시오.

가슴에 전류가 으르듯이 찡 하고 울리는 무엇인가가 당신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당신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단지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손길을 뻗어 보기만 해도, 당신은 이미 그들에게

희망을 준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전한 몸을 그들을 위해 잠시 한 순간이라도

던졌다는 그 사실이 당신을 굉장히 성장시킬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교과서에 적혀 있는 그 말만으로 누구나 따뜻한 감성을 갖게 되지는

않습니다.

도덕 교과서에 적혀 있는 그 훌륭한 말들을 아무리 달달 외운다고 해도 직접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행복이 뭔지를 알려면, 불행에 도전해 보십시오.

불행의 늪에 빠진 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당신의 행복을 향한

발걸음은 더 힘차게 되는 것입니다.

20대에 이미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남보다 훨씬 넓은 생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됩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 이웃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여자친구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누구나 스승입니다.

@ff

29. 기력의 완전한 탕진을 경험하라

--분출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에너지가 당신 속에 있다

 

요즘의 20대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활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에게는 활력이 있습니까?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면 아무래도 다 좋다는, 조금은 자포자기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떨까요?

당신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활력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스스로도 기력이 없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어요."

아닙니다, 이 책일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분명히 기력이 있습니다.

기력이 없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기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에게 기력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자각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젊은이에게는 기력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언뜻 보면 기력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결코 기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밖으로 분출하지 못할 뿐입니다.

왜 기력을 밖으로 분출하지 못할까요?

당신 내면에 기력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 기력을 모조리 짜내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기력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기력을 분출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력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섹스와 마찬가지입니다.

섹스는,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전혀 전해지지 않습니다.

기력을 분출하는 것은 곧 쾌감입니다.

기력을 분출해서 어떤 성공을 이루는 것도 쾌감이지만,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기력을 분출하는 것 그 자체가 곧 쾌감인 것입니다.

한번이라도 기력을 분출한 쾌감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쾌감을 더욱 강렬하게

맛보고 싶어하는 법입니다.

요컨대 이것은 기력을 모조리 짜내는 듯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기력을 분출한 쾌감을 모르는 사람이 손해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자신이 모른다는 불행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나 역시 기력을 짜내는 쾌감을 아는 게 인생의 묘미를 안다는 말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자신에게는 애당초 기력 따위는 없다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20대는 사람의 일생 중에서도 가장 원기왕성한 시기입니다.

그런 최정점의 시기에, 시들어 버린 잎사귀처럼 축 늘어진 채로 인생이라는 벽에

도전해 보기는커녕 멍하니 쭈그리고 앉아서 기력 탓만 한대서야 그에게 무슨 성공의

열매가 맺어지겠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끝마다 낮은 점수를 매기는 젊은이를 흔히 봅니다.

결코 겸손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예의를 차리기 위해 그러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자기비하입니다.

지나친 열등감이고 패배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기력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은 기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기력을 제대로 꺼내 본 적이 없을 뿐입니다.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20대가 아니라, 활기에 넘치고 또 넘쳐서 도저히 주체하지

못할 에너지를 가진 20대가 되십시오.

@ff

30. 성경책을 완전히 독파하라

--성경을 통해 최선을 다한 인생의 표본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당연히 성경책을 독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 신자이거나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20대에는 반드시

성경책을 완전히 읽어 보기 바랍니다.

나는 성경에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다거나 삶의 지표가 되는 훌륭한 말이 듬뿍

들어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는 진부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인생의 진리로 말하자면야 철학책이 성경보다 나을 것이고, 삶의 지표 역시 다른

책을 통해 얼마든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성경책을 읽어 봐야만 할까요.

그 이유는 성경이 한 위대한 인간의 생애를 포괄하면서도 그 생애를 관통하는

정신이 너무도 고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생애는 타인을 위한 헌신의 일생입니다.

예수의 생애는 또한 자기 삶의 최선을 다하는 전력투구의 일생입니다.

믿는 바 신념에 따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전진하는 자의 일생이 어떤

귀착점을 맞이하는가에 대해서 성경보다 더 극명하게 묘사되고 있는 책은 달리

없기에 당신에게 성경책을 꼭 한 번 독파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한 번쯤 읽으려면, 첫째로 필요한 것이 인내심입니다.

성경책을 완전히 읽는 일을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 한동안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왜 이 책이 전세계 수억의 기독교

신자들을 움직이는 마음의 양식이 되고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흘러들어 온 문물이나 습속, 종교 중에서 기독교만큼 동양인의

의식 깊숙이 침투해온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의 과연 무엇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을 얘기하는 책 중에서도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종교 경전이 인생의 참뜻을 구명하고는 있지만 사랑을 얘기하는 데에는

부족합니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습니다.

내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대다수의 사람들 틈에서, 사랑의 마음을 가진 빛나는

눈동자가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언제나 제자리에 서있다면 그를 배척하고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가슴,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빠르게 성공에 이르게 하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요.

성경책을 통해 사랑의 진리를 배우십시오.

20대의 어느 한때를 성경책에 푹 빠져 보는 것이 중요한 까닭을 이해하시겠지요?

@ff

31. 평생의 친구를 찾아라

--20대에 만난 친구가 평생의 친구가 된다

 

평생의 친구란 반드시 20대에 만나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마음에 맞는 친구를 인생 황혼녘인 60대에 만날 수도 있고, 10대 이전에

만난 친구가 평생 동안 동반자가 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러나 역시 진정한 친구는 20애에 만나는 게 일반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친구가 많아서, 그들과 신나게 놀다 보니 황금의 20대가

훌쩍 지났다고 털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친구가 고작해야 한두 명에 불과해서 언제나 그들과만

어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친구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20대에는 진정한 친구 하나를 반드시 찾으십시오.

살아가면서, 기쁨은 기쁜 대로 슬픔은 슬픈 대로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갖기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당신은 어떤 친구를 갖고 있습니까?

그는 당신의 어떤 면을 좋아합니까?

당신의 어려움이나 슬픔, 고난이나 불행까지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그런

친구입니까?

진정한 친구란 상대의 단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친구의 단점까지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가장 좋은 친구를 얻는 길은 내가 먼저 누군가의 단점까지 껴안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평생의 친구를 찾으려면 당신이 먼저 누군가의 평생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어느 기업이든 면접시험에서 단골로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교우 관계는?'

이런 질문은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는지 어떤지를 물어 보는 것이지만, 나는

진짜 질문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평생의 친구가 있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교우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입니다.

친구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내게도 술잔을 함께 기울이고 싶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순전히 일을 할 때만

함께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일년 동안 전혀 만나지 못하다 갑자기 만났어도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처럼

언제나 정겨운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매일 같이 만나도 그의 집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 중에서도 가나 소중한 사람은 역시 캄캄한 어둠 속과도 같이 어려울

,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0애에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으로 '좋은 친구'가 첫째라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그런 친구를 찾아 헤매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ff

32. 팽팽한 긴장의 순간을 즐겨라

-벼랑끝 위기감을 맛본 사람의 눈빛은 다르다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당신의 눈동자가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기 때문이지요.

당신에게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에게서 강렬한 기운을 받는 것 같습니다.

나는 재수생이나 취업 준비생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의 눈동자는 항상 반짝반짝 빛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유감스럽게도 그토록 강렬하던 눈빛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회사에 들어가면,

순간 사라지고 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당신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습니다.

그 빛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지하철에 타고 있는 대학생이나 샐러리맨들은, 어째서 죽은 물고기처럼 칙칙한

눈으로 다니는 것일까요?

그토록 형형하던 눈동자가 죽은 물고기 같이 생명력 없는 눈으로 바뀌는 것은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옛부터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입니다.

죽은 물고기 같은 그런 눈으로 희망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는 자신의 존재조차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짝거리던 그 눈빛을 생명력 없는 죽은 물고기의 눈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재수생이나 취업 준비생은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위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 궁지에서 탈출하려는 조바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대로 대학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지?"

"이대로 취직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들은 참으로 진지하게 고뇌하고 있습니다.

눈동자의 번뜩임은 긴장감에서 생깁니다.

그리고 긴장감은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나 꿈을 갖는 것으로 해서 더욱 힘차게

솟구칩니다.

"이러이러한 것을 꼭 하고 싶은데, 지금의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겨우 실마리를 찾아 노력하고 있는데 잘 되지 않다니, 정말 한심하군."

그런 열등감에서 긴장감이 솟구칩니다.

"어째서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일까?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군."

이러한 수치심에서 긴장감이 생기는 법입니다.

긴장감은 줄다리기에서 솟아납니다.

당신은 지금, 밧줄 하나를 잡고 있습니다.

밧줄의 끝은 희미하나 안개로 감싸여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꿈과 줄다리기를 합니다.

당신이 잡고 있는 밧줄은 꿈과 이어져 있습니다.

당신의 밧줄 끝에는 꿈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꿈으로 이어진 밧줄을 단단히 붙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밧줄은 더할 수 없이 팽팽한 상태입니다.

그것이 바로 긴장감입니다.

당신이 손을 놓으면 밧줄은 축 늘어집니다.

꿈을 잃어버려도 밧줄은 축 늘어집니다.

지금 잡고 있는 밧줄을 절대로, 절대로 놓치지 마십시오.

@ff

33. 틀려도 좋으니 당신 생각을 말하라

--결심을 미루는 사이에 어느새 환갑이 된다

 

20대에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우물거리다 정신을 차리면, 눈 깜빡할

사이에 환갑 나이가 됩니다.

20대에는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환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등을 대고 있는 것이 20대임을 알아야 합니다.

커피숍에서 주문할 때, 당신은 흔히 뭐라고 하는지 기억하십니까?

'일당은 커피!'라고 했습니다.

'일단은...'이란 말은 무엇일까요?

당신의 말 속에는 이런 식의 '일단은...'이라는 말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일단은 지금 있는 회사에 조금 더 있다가...'

'일단은 유학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일단은 자격증 같은 것도 필요할 것은 같은데...'

'일단은 커피'라는 말은 커피에 대한 실례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단은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신발 자국이

선명히 남는 상태로 차이고 말겠지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일단은 지금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 일은 성공할 리가 없습니다.

당신의 인생 전체가 '일단'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학교를 졸업하면 '일단'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

회사에 들어가면 '일단' 적당한 상대를 찾아 결혼한다.

아이가 생기면 '일단' 좋은 학교에 입학시킨다.

이렇게 '일단'이라고 말하는 사이에 환갑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일단'이라는 것은 결론을 뒤로 지연시키는 인생관에서 나옵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그 일입니까?"

누가 이렇게 질문한다고 합시다.

"가장 좋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이 정도라면 괜찮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해도, 머지

않아 좋은 일을 찾을 때까지 한다고나 할까?"

이런 대답이 '일단'입니다.

"AB 중 어느 것은 좋아하지?"

이런 질문에 '일단은 A라고나 할까?'라고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A를 좋아하는군."

"아니, 그래서 일단이라고 하지 않았나?"

당신에게는 'A를 좋아한다'라고 단언할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A를 좋아한다'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합니다.

하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두 가지 중에서는, 지금으로 보면 A가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이지'하고 도망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런 삶의 연장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일단'이라고 결론을 지연시키는 사이에 눈을 뜨면 환갑이 된 자신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틀려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결단을 내리십시오.

틀리는 것이 두려워 우물쭈물 회피한다면, 그러는 사이에 당신의 20대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황량한 박토가 되고 맙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만 반드시 극복하고 말겠다는 자세가 당신의 뼈를

튼튼히 하고 당신이 밟고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ff

34. 평생건강의 뼈대를 세워라

--평생건강의 기초는 20대에 완성해둬야 한다

 

내가 아는 70대의 노교수님 한 분은 지금도 아침마다 새벽길을 힘차게 달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분의 아침 운동은 벌써 40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어서, 해외에

나갈 경우에도 운동화와 운동복은 필수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새벽 다섯 시, 새벽공기를 가르며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시작하는 그분의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듣노라면 누구나 삶에 대한 경외감마저 든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합니다.

"건간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에, 그분은 선뜻 대답하십니다.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젊었을 때부터 착실히 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건강한 것이라네."

그분이 말씀하시길, 사람은 20대 시절에는 무엇보다도 건강한 신체를 위한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놔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나이가 들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대는 누구나 건강합니다.

그래서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건강에 대해선 자신있어 하기 때문에 자기 몸을 마구 써버리는 것도

20대에는 자랑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 한때 운동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 20, 30년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위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운동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던 사람이 불과 몇 년 사이에

피골이 상접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다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지요.

어떤 사람은 건강에 대해 과신한 나머지 매일같이 폭음을 하고 비정상적인 생활에

빠져들었다가 덜컥 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자신하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건강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20대가 너무도 많습니다.

20대에는 건강을 도모하기 위한 운동을 하나쯤은 반드시 익혀 두십시오.

최근에 어느 재벌기업의 간부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요즘 20대들이 자기 몸을 챙기는 데는 최고인데 그것은 대개가 편한 것만 찾는

심리에서 오는 것이지 진실로 건간을 챙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이 얘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편한 것만 찾는 마음과 자기 신체를 단련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20대에 자기 건강의 성벽을 확고히 쌓아 놓으십시오.

20대에 건강의 뼈대를 쌓는 작업을 한 사람이 30, 40대에 가서 갑자기

게을러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20대에 마음껏 게을렀던 사람이 30대에 들어서서 느닷없이 건간의 의미를

깨닫고 헬스클럽으로 달려가 신체를 단련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법입니다.

문득 얼마 전에 보았던 텔레비전의 다큐드라마가 생각납니다.

20대 전부를 연구실에서 보낸 젊은 과학도가 생명공학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기기 일보 직전에 병마에 쓰러지고 말았다는 얘기 말입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일반인들의 이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 여론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었지만, 나는 좀 다른 측면에서 그의 20대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생명공학을 연구한다면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관리는 소홀히 한다는 게 어쩐지

모순으로 비쳤습니다.

아무리 그의 업적이 위해하다 해도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이르러서 그렇게

허무하게 쓰러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이런 질문을 그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20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인생의 기초를 착실히 다지는 시기이지만 특히 건강의

축대를 확실히 해두십시오.

지금 당장 운동화를 갈아 신고 밖으로 나간다면 더욱 좋겠지요?

@ff

35. 가슴이 터질 듯한 불안을 사랑하라

--불안이야말로 에너지의 최대 원천이다

 

당신은 견디지 못할 만큼의 큰 불안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20대는 그야말로 불안덩어리입니다.

일생을 통해 가장 많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시기가 바로 20대 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텐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은 찾았지만, 내게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늦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대로 평생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희망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20대의 에너지는 불안이 창출해내는 에너지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이야말로 당신이 가진 가장 큰 재산인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30대에게도 우리만큼의 불안이 있습니까?"

물론 30, 40대에게도 불안은 넘칠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원래 불안투성이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끝장입니다.

불안이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지요.

불안이 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솟구치게 만들고 싶으면 불안을 잔뜩 껴안아야 합니다.

불안이 없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중간한 행복에 만족한다면 불안은 즉시 사라집니다.

'인생은 어차피 이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중간하게 깨닫고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망설이는 동안에도, 만일 불안을 껴안고 있다면 당신에게는 에너지가 철철

넘쳐흐를 것입니다.

망설이고 망설여서, 마침내 그 망설임에서 빠져나갑시다.

젊은이들 중에는 마음에 불안감이 쌓이게 되면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사시험에 떨어지는 게 두렵다 해서 자살을 하는 20대가 있는가하면 연애에

실패하고 목숨을 끊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근무시간에 개인적인 일을 하다가 상사에게 들켜 심하게 꾸중을 들은 20대가

회사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투신자살한 사건이 얼마 전에 매스컴의 한구석을 장식한

적도 있습니다.

요즘의 20대가 얼마나 유약한지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정도까지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할 말을 잃게 되고 맙니다.

아무런 불안도 없는 인생에 에너지가 솟아날 리 없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는데 의욕이 솟구칠 리도 없습니다.

있는 힘껏 불안을 껴안고서 화염 속으로 몸을 던지듯이 그 불안의 불 속으로

뛰어들어 보십시오.

가슴이 터질듯이 큰 불안일수록 당신의 에너지를 펄펄 끓게 한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 불안을 어떻게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안을 불안 자체로 끝내 버리거나, 불안의 울타리 안에서 노예가 되어 버리면 안

될 것입니다.

불안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중간한 만족에 안주하면서 제 자리에 서

있으면 더욱 안 됩니다.

불안을 스스로 떨쳐 버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 그게 바로 20대가 가진

힘입니다.

그렇게 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20대의 특징입니다.

아무리 높은 빌딩이라도 기초공사를 착실히 다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그 다음

공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초공사를 다지는 동안에 아무리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도 그다지 큰

타격이 없지만 골조공사를 끝내고 내장공사까지 마무리된 건물에 하자가 발생한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인생도 기초공사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20대의 불안은 기초공사와 같습니다.

기초공사는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차라리 이때 문제가 많은 것이 그 건물의

나중을 위해 이로운 법입니다.

@ff

36. 유비무환의 정신을 일상화하라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질문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요즘 젊은이들은 질문하는 것이 서툽니다.

나는 강연회 맨 마지막에 질문시간을 갖곤 하는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질문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손을 들고 질문하기보다 나중에 몰래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질문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강연회가 끝난 다음에는 따로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나중에라도 질문을 받으면, 그런 호의가 대중들 앞에서 손을 들고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리광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취업을 위한 활동에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정열이 없는 사람은 이미 취직한 학교 선배를 아무리 찾아다녀 봐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후배의 방문을 받은 입장에 있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묻고 싶은 게 있나?'라고 성의를 보여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답답하게 앉아 있는

학생이 대단히 많습니다.

지금까지 강의실에서 교수의 이야기를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내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들의 말만 일방적으로 들어온 것이 당신이 받아 온 교육의 문제점입니다.

당신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20여 년간을 학교에 가면 상대가 제멋대로 이야기를

해주는 형태의 교육을 받아 왔고, 이미 그것에 완전히 물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는, 적극적인 자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흘러나오는 것을 열려 있는 귀를 통해 듣는 것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은 '듣는다'라기보다는 차라리 '들린다'에 가깝습니다.

강의실에 가면 교수의 이야기가 흘러나와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 소리가 들릴

뿐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매우 주체적이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행동입니다.

당신은 그런 훈련을 받아 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책임은 아닙니다.

당신은 그런 나라의 그런 젊은이로 만들어 버린 잘못된 교육 정책의 희생자에

불과합니다.

강연을 많이 다니다 보면, 질문을 하려고 참가하는 사람의 얼굴은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늘, 뭔가 있나 보군'하면서 마지못해 참가하는 사람도 얼굴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취직한 선배를 찾아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회사에 대해서 진심으로 알고 싶은 열의가 있다면, '이런 것을 물어도

될까요?'라고 전제한 다음 마구 질문을 퍼부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군, 질문을 많이 하면 되는구나'하고 생각해서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 질문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어서

질문하는지는 금방 탄로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대에 대해서 모르면 절대로 질문을 할 수 없습니다.

,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라고 할 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하는 대답은, 어떤

질문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학문에서도 그러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은 것은 알고 있고, 많은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당신 마음속으로 꼭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선생님의 저서에는 이런 식으로 쓰여 있습니다만...'하고

물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무엇을 물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취재차 나에게 오는 사람들 중에도 '어떤 책을 쓰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때는 그 사람의 취재를 괜히 허락했다는 낭패감이 듭니다.

그는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다만 윗사람의 명령 때문에 억지로 취재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모르는 것이 많이 나오고, 묻고 싶은 것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지금 공부가 제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것은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선 상대에 대해서 속속들이 공부합시다.

상대가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최선은 다해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유비무환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ff

37. 주제파악은 처음부터 무시하라

--당신의 꿈은 4지선다형 답안 속에는 없다

 

당신은 자신의 꿈을 객관식 4지선다형 답안 속에서 찾으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당신의 꿈은, 4지선다형 답안 속에는 없습니다.

당신은 객관식 문제에는 아주 강합니다.

그러나 미리 주어진 답안이 없는 주관식 필기시험은 딱 질색을 하며 싫어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한결같이 4지선다하여 답안 속에서 골라 왔기 때문입니다.

20대는 선택형 답안이 없는 시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20대는 객관식 시험이 아니라 주관식 시험이 연속되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정답이 제시되는 의존적 해답찾기의 시기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주체적 해답찾기의 시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신 앞에는 주어진 4개의 답안 가운데 정답 하나를 찾는 확률 25%의 게임기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 그것을 꼬박 채워야 하는 확률 0%의 완벽한 백지가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주관식 시험은 확률 0%에 지나지 않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선택형 답안이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으로, 그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당신을 위해 모처럼 무엇이든지 채울 수 있는 백지를 펼쳐 놓았는데도, 당신을

골머리를 썩히며 4지선다형 답안을 찾고 있습니다.

선택형 답안 속으로 도망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때에도 '나는 oo대학에 가고 싶다'고 확고하게 제1지망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내 성적으로는 어디를 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네 성적 같으면 이만한 곳에는 갈 수 있을 거다'라는 4지선다형 답안이

나오면 그 안에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당치도 않는 성적표를 들고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일류대학에

가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자신의 분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것은 정보화사회의 산물입니다.

사회의 정보화가 발달하면 할수록, 전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 되는지

극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의 분수를 잘 파악하게 됩니다.

그 때문인지 지망하는 학교를 오히려 한 등급 내리는 풍조가 유행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는 게 아주 현명한 짓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댑니다.

이것은 낙방의 충격에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 윗자리를 양보하고 나는 내 분수에 맞게 아예 처음부터

꼬리를 내리고 아랫자리로 가겠다는 식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든지 이것을 좋아한다고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면,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의 충격을 두려워하는 게 오늘의 20대입니다.

슈퍼마켓으로 콘돔을 사러 왔으면서도 책을 사러 온 척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네 분수를 알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기 분수를 아는 것과 4지선다형 문제에서 해답 하나를 찾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0대에는 가능한 자기 분수에 신경을 쓰지 않고, 더욱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자기의 분수 따위는 한번 멋지게 무시하고서,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달려가 봅시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 윗자리를 양보하겠다는 건, 양보도 아니고 겸손도

아닙니다.

그것은 패배주의입니다.

매번 이렇게 자기 분수를 차리면서 뒷전으로 물러나야 한다면, 그런 인생은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ff

38. 궁지에 몰릴 때까지 손을 뻗어라

--모든 일이 잘 되지 않았기에 정말로 할 일과 만날 수 있다

 

20대는 멀리 길을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멀리 돌아가는 게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능한 멀리 돌아가는 편이, 가장 빨리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광고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취직시험에서 광고회사밖에 붙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대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그렇다면 왜 졸업하고 나서 즉시 작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나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입사시험에 붙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것이 늦어

버렸다네."

"자가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습니까?"

작가라는 일은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길이 전부 막혀 버린 사람이 아니면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20대는 가능성을 확대시키는 시기입니다.

수많은 가능성에 도전해 보십시오.

나도 여러가지 가능성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잘 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많았습니다.

내 뜻대로 잘 된 것은 극히 일부분으로, 꿈꾸는 대부분이 잘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20대가 가능성을 확대시키는 시기라니, '그것은 거짓말이다'하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닙니다.

누구나가 자신의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바로 20대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고, 더구나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잘 되지 않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은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이것도 잘 되지 않았다.

저것도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수없이 벽에 부딪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저절로

보이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도 20대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30대가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20대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되는, 바로 그것과 만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에 있는 벽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좁히면서, 결국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이 20대입니다.

30대를 지나서도 40대를 지나서도,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낮에는 편의점,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면서 작가를 목표로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작가의 세계는 혹독합니다.

이것은 작가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작가가 되고 싶어서 작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작가밖에 될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잘 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려서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ff

39. 자기만의 칼을 준비하라

--좋은 20대를 보낸 사람만이 좋은 30대를 보낼 수 있다

 

'승부는 결국 30대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30대에 하고 싶은 일은 20대에 시작해야 합니다.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적어도 10년이 걸려서, 30대에 하고 싶은 일의 토대를

20대에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30대에 하고 싶은 일을 30대가 되어 시작해서는 이미 늦어 버립니다.

30대에 시작한 것은 30대가 되어야만 가까스로 이루어집니다.

좋은 20대를 보낸 사람만이 좋은 30대를 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좋은 20대를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10대를 잘 보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라도 10년은 걸립니다.

결국 10년을 계속 노력한 자가 이기는 법입니다.

재능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10년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곧 재능입니다.

지금 조바심을 내고 걱정하지 않아도, 한 가지 일을 10년 동안 계속한 사람이

반드시 이기는 법입니다.

당신의 경쟁자는 10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100명 있다고 가정합시다.

1년이 지나면 50명으로 줄어듭니다.

2년이 지나면 25명으로 줄어듭니다.

어차피 싸움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꾸준히, 착실하게 계속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상대를 밀어낼 필요도 없습니다.

밀어내지 않아도 경쟁 상대는 '아아, 난 역시 틀렸구나'하고 쉽사리 하차해

버립니다.

따라서 오로지 자기 길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바보 6같다고 할 정도로 계속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0대는 조급해 하는 사람이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0년을 계속한다면 반드시 당신의 꿈이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형태가 되어 나타날 때까지는 10년이 걸리는구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느긋하게 기다린다면, 좀처럼 형태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조금도 조급함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는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의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지나치게 기를 써서는 안 됩니다.

너무나 조급하게 굴며, 지나치게 기를 쓰면 10년 동안 계속할 수 없습니다.

'20대는, 어떤 일도 기를 써서 하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말에는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어느 정도라면 기를 쓰는 것도 좋습니다.

, 지나치게 기를 쓰면 지쳐 버리게 됩니다.

지나치게 기를 쓰지 않도록 조심 합시다.

느긋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단칼에 승부를 내려는 사람은 자기 칼의 날카로움에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기만의 칼을 갈되, 그것으로 단번에 승부를 결판 짓고 말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20대는 그렇게 자기의 칼을 가는 시기입니다.

@ff

40. 뒷뜰에 한 그루 나무를 심어라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배운다

 

한 그루 나무를 심어도 좋고, 그럴 만한 공간이 없다면, 화분에 작은 꽃나무를

재배해도 좋습니다.

20대에는 한 그루의 식물을 키워 보십시오.

한 마리의 애완동물을 키워 보십시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힘이 솟아날 것입니다.

내 집에도 화분이 몇 개 있습니다.

아침마다 물을 주고 있지만, 간혹 잊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꽃나무들이

예외없이 시무룩해집니다.

활기를 잃고 고개마저 푹 수그리고 있습니다.

사정을 깨닫고 즉시 영양분인 물을 주면, 금세 활기를 되찾고 발랄해집니다.

처음에 화분에 씨를 심고, 녀석들이 싹을 틔우기를 기대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딱딱하고 검은 빛이 나는 작은 씨앗들은 작은 화분 속의 흙 속에 심을 때에는

이것들이 도저히 자랄 것 같지 않습니다.

설령 자라나더라도 예쁜 꽃을 피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미심쩍으면서도 매일 물을 주고 맑은 공기를 호흡하도록 도와 줍니다.

지금 나는 다섯 개의 화분에 제각각 다른 빛깔 다른 형태로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생명의 신비감에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게 됩니다.

어렸을 때, 우리집의 개가 새끼강아지 두 마리를 낳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작은 핏덩이가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는 사이에 어느새 어른 강아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생명의 신비에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20대인 당신도 이런 눈부심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20대에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게 된다면 싫어도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겠지만 이 경우와 한 그루 나무를 심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나는군요.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대학교수 한 분이 교정 한구석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며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글입니다.

그 나무는 35년 전에 교수님이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이 학교에 처음으로

부임해왔을 때 심은 것입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성으로 나무를 가꾸었고, 나무를 가꾸는 정성으로

학생들을 아꼈다고 합니다.

제자 중에는 유명한 정치인도 있고, 큰 기업의 간부도 있고, 같은 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도 있습니다.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는 제자도 있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들의 그런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비바람 속에서도 제자리를

굳굳이 지킨 것은 오직 하나 나무뿐이었습니다.

교수님마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제 정년 퇴직을 할 만큼 늙어

버렸는데, 소나무는 더욱 강건한 모습으로 교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20대인 당신도 나무 한 그루를 심으십시오.

당신이 밟고 서 있는 땅 어디라도 좋습니다.

정성을 다해 물을 주고, 비바람을 피해 소중히 가꾸다 보면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돌려 줄 것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제목의 어느 책이 생각나는군요.

@ff

41. 두려움을 주는, 그런 사람은 만나라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을 만나면, 2의 자신이 눈뜨게 된다

 

20대 한복판에서 반드시 해두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2의 자신'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제2의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이 20대를 인생의 한복판에 배치한 목적은 바로 제2의 자기 자신에 눈뜨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2의 자신에 눈을 뜰 수 있을까요?

갓 스물이 되면 서른까지의 10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집니다.

주변사람으로부터 어린아이 취급받는 게 싫어서 빨리 서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드는 게 20대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 깜짝할 사이에 20대가 끝나고

맙니다.

'중요한 꿈'을 전혀 실현시키지 못하고 20대를 황폐하게 마감해 버리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은,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뿐입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기만 했다면 20대의 그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0대에 반드시 해야 할 일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이외에도 중요한 일이야 수없이 많겠지만, 더 중요한 이 한 가지를

이루어 내면 이미 승부에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 서기만 하면, 어쩐지 두렵고 기가 죽는 그런 사람을 결코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십시오.

그가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는 스승이겠지요.

어쩌면 선배일지도 모르고,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알게 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일지도 모르고, 같은 학교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냈다면, 당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만난다면, 그리고 진실로 그를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 다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에너지가 불쑬불쑥

솟구칠 것입니다.

그런 에너지를 느끼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저절로 경정되고,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을 저절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라면, 결코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면 결코 겁나지 않을 것입니다.

뭔가 대단한 면이 있기 때문에 두렵고 겁나는 것이지요.

그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 보십시오.

틀림없이 앞으로의 당신 인생에 귀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ff

42. 당신을 침묵케 하는 사람을 만나라

--만나서 편안한 사람만 택하지 말라

 

20대에는, 그 사람 앞에만 서면 긴장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괴물을

만나십시오.

나는 아직도 존경하고 싶은 멋진 사람 앞에 가면 긴장되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20대에는 반드시 그런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면, 그건 바로 당신 책임입니다.

그런 상대가 앞을 다투어 당신을 찾아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내게도 가끔 질문할 것이 있다고 찾아와 놓고는,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나중에 만나면 내 마음을 너무도 예리하게 꿰뚫고 있어

놀라곤 합니다.

만나는 시간은, 극히 짧고 나눈 말도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사이에 수많은

자양분을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순간에, 그로서는 마음속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아무 말을 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식은땀만 흘려도 좋습니다.

그 사람만 만나면 긴장감으로 인해 아무 할도 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사람을

만납시다.

그런 경험은 나이에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는 예술가는 음악가, 작가 등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립니다.

흔히 남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태연한데도 그들 앞에 서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곤 합니다.

대기업의 사장이나 정치가들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고 아주 태연히 말할 수

있지만, 내 경우 창조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뛰고 입이

다물어집니다.

내가 그들에 비해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만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나의 이성과 감성은 맹렬히 활동해서, 안테나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에,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가슴에 풍부한 영양분이 되어 고입니다.

당신은 긴장감으로 벌벌 떨면서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을 만난 것이

있습니까?

상대하기에 편안한 사람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편안하지 않은 사람에게 도전하십시오.

어릴 때부터 당신 주위에는 편안한 사람만 있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 자체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편안한 사람만 골라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긴장감을 주는 사람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들은 누구라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겠지요.

바로 연애감정입니다.

앞으로는 연애감정 이외에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런 사람을 만나십시오.

@ff

43. 삶의 목표에 관한 한 불효자가 되어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면, 부모의 인생의 일부가 된다

 

나는 대학입시에 게이오대학 경제학과와 와세다대학의 문과에 합격했습니다.

도쿄대학 경제학부의 합격자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졸업을 하면 대장성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다른 일이 없었다면

아마 게이오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해서 지금쯤 평범한 직업관리가 되어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가서 합격한 와세다대학 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기대를 배반한 것이지요.

나의 어머니는 아들의 도쿄대학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게이오대학을 졸업해서

대기업에 입사하기를 원했으니까요.

그런데 촌스러운 와세다의, 그것도 경제학과가 아니라 취직도 기대할 수 없는

문과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어머니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머니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나 자신도,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과대학은 여학생의 신부수업을 위한

학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고교 시절의 동급생 중에서 교토대학 문과대학에 간다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땅을 치고 한탄하시겠군'하고 동정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나는 문과에 가느니 차라리 깡패가 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내가 문과대학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문학부에 대한 나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는 후배들에게서 '문과대학에 가면 취직할 때 불리합니까?'라는 질문을 곧잘

받습니다.

그러면 난 반드시 이렇게 대답하지요.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절망적이라네."

왜냐하면 문과대학은 세상을 버려야 하는 사람이 택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게이오대학의 경제학부를 물리친 시점에서, 나는 세상을 버리는 길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 무렵 와세다대학의 문학부는, 1학년은 교양 수업을 받는 기간이고 2학년부터

18개의 학과로 나누어졌습니다.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나는 또다시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문학부 중에서도 영문과나 불문과는 그래도 사화와의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영문학과나 불문학과에 간다면 대기업은 어렵다고 해도

아사히신문이나 NHK에 취직할 수 있는 길이 남아있었고, 아사히신문이나 NHK

부모님이 안심할 수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부모님의 아들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구요.

당시 세상을 버리는 사람이 가는 3대학과는 바로 연극과, 문예과, 그리고

동양철학과라는 말이 공공연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연극과였습니다.

그것으로 세상을 버린 사람으로서 삶을 완전히 확정한 것이지요.

문과는 솔직하기 때문에 학과 설명서에 '취직에는 반드시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즉 취직할 수 없다는 간판을 미리 내건 것이지요.

당시 와세다대학 연극과를 졸업하면 고작해야, 인형극을 할 때 몰래 숨어서

인형을 조종하는 그런 일거리가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의 눈에 이 아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는지, 당시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는 아마 평생 후회하면서, 내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거야."

부모님의 명령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것이 인생에 성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는 어머니 세대에게는 아들의 고집이 이해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나의 결정에 후회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 부모님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의 목표나 그것에 이르는 방법까지도 철저하게 부모님의 말에 따른다는

것은, 엄밀히 얘기해서 부모님의 일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원하니까, 난 그렇게 할 수 없어'하고 말하는 사람은 부모님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인형극 속의 인형이 아닙니다.

당신 삶에 관한 한, 불효자가 되십시오.

부모님의 실망이 따를지 모르지만, 당신의 신념이 탄탄하기만 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20대는 자기 삶의 길을 선택할 책임이 따르는 시기임을 잊지 마십시오.

@ff

44. 10년 후의 나와 대화해 보라

--미래의 내가 가장 확실한 조언자이다

 

10년 후의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대라면 누구나 가지는 의문입니다.

10년 후에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대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항은 없습니다.

30대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됩니다.

대개 자기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어느 만큼 발전된 모습을 그려보면

즉시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에 첫발을 내놓기 시작한 20대로서는 모든 게 오리무중입니다.

가능하다면, 남보다 앞서갔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기의 10년 뒤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10년 뒤를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확고하게 자기 길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지금 즉시 10년 뒤의 자기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십시오.

저기 어디쯤에 10년 뒤의 당신이 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그곳으로 가면 안 돼."

"지금 하고 있는 게 좋겠어. 그래, 그렇지!"

그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좋은 조언자가 되어 줄 것이고 모든

시간을 함께 해주는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10년 뒤의 당신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는 지금의 당신에게 이것이 최선의

길인지 가르쳐 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건, 10년 뒤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이 선택한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10년 뒤에 당신이 어디에 있건, 그것은 당신이 지금 그리기 시작하는 그 모습

그대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30대가 이 책을 읽고 있다면, 당신의 지금 모습은 10년 전에 당신이 그렸던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은 인정하실 겁니다.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뭔가 특별해지고 싶었다구!'

이렇게 반박하고 싶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내가 10년 전에 꿈꾸었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는 위치에 있다고 털어놓는

사람도 있으리라는 걸 잘 압니다.

그러나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의 당신을 만든 것은 누구입니까?

오늘의 당신보다 더 나은, 당신이 10년 전에 꿈꾸었을지 모르는 그 모습이 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나요?

인생에 있어서 꿈을 열망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는 이 책에서도 수없이

얘기했지만, 분명한 것은 열망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0년 뒤의 당신에게 약속하십시오.

앞으로 10년 동안 최선을 다하여, 지금 그리고 있는 그 모습에게로 반드시

다려가겠노라고.

그 약속을 지킬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그 약속을 할 사람도 당신뿐입니다.

@ff

45. 가장 위험한 작업 현장에 가보라

--그곳은 밑바닥이 아니라 가장 치열한 생의 현장이다

 

세상에는 위험한 직업이 많습니다.

탄광촌의 막장은 대단히 위험한 곳이어서, 매년 큰 사고가 끊기지 않습니다.

제철소의 어마어마한 용광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자칫 실수라도 할라치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가 하면 파도를 헤치고 먼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라는 직업도

위험합니다.

새벽의 미명을 헤치며 거리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부라는 직업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대에 이런 험난한 작업 현장에 한 번쯤 나가 보는 것도 30대 이후의 삶에 크게

유익합니다.

그런 작업 현장이 생의 밑바닥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곳이야말로 생의 치열함이 가장 번쩍이는 장소로, 20대가 아니면 결코

맛보지 못할 깨달음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대기업에서는 매년 신입사원을 선발하면, 그들을 이런 험난한 작업 현장으로

보내어 극기심을 배우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극기심만이 아닙니다.

생의 치열함으로 팽팽히 긴장되어 있는 그 현장에서, 사회 초년병들은 자신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오는 동안에,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구나하는 깨달음도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게

분명합니다.

그 기업의 간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빛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훈련이 된다. 연수원에

가둬 놓고 한달 동안 교육을 시킨다 해도 결코 줄 수 없는 교훈이다."

연극배우가 직업으로 멋지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의 삶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리체험일 뿐, 그들의 삶 전부를 진실로 내 것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배우들 중에는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서는, 이름 모를 낯선 탄광촌이나

어촌에 가서 온몸을 던지며 그들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0, 40대는 사회적으로 많은 제약 속에 있게 됩니다.

그 나이에 이런 체험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맹렬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직업의 가장 험난한 작업 현장에 가서 그들의 숨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20대가 적합합니다.

그들의 표정 뒤에 숨은 눈물과, 그들의 어깨 위에 소리 없이 앉아 있는 삶의

무게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20대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20대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보는 것, 남들이 기피하는 것을 일부러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남보다 훨씬 풍요한 30대를 예약한 것입니다.

@ff

46. 혼자만의 시간을 따로 두어라

--마음의 고립을 위한 독방에 갇히면 삶이 더 넓어진다

 

나는 대학 시절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친구도 비뚤어진 녀석이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대학

4년을 거의 혼자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내 인생의 행운이었습니다.

하루에 하는 말은 단 두 마디뿐이었습니다.

"학생 한 장."

이것은 영화관에서 하는 말입니다.

"햄버거."

이것은 대학 구내식당에서 하는 말입니다.

영화관의 입장권과 식당의 식권을 자동판매기에서 팔았다면, 하루에 한 마디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거의 3년은 이 두 마디만 하며 지냈습니다.

서클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와세다대학에는 영화서클이 많았지만 법학부나 정경학부에서 취미로 영화를

즐긴다면 몰라도, 나는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수업을 많이 듣고

있으니까 굳이 써클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요.

또한 책과 영화에 빠져 있어서 서클활동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고독에 빠지는 것은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입니다.

어느 민족 어느 문화에서건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태어나서 자란 집단에서 일정 기간 축출되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서,

그제야 비로소 완전한 성인으로 대접받는 것입니다.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서는, 난폭하기 그지없는 무사시가 성에 있는 포로

감금용 독방에 갇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독방에는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과거가 있습니다.

심지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육친을 독방에 감금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독방에는 감금된 사람들의 원한이 소용돌이치고, 한 맺힌 망령들이

우글우글합니다.

무사시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방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뒹굴면서 읽었지만, 책이 늘어남에 따라 엄숙한

자세로 읽게 되었지요.

몇 년 후, 무사시가 독방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어떠냐? 뭔가 알아냈느냐?"

스승이 무사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한 무사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넓은 세상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좁은 세계에 갇혀야만 비로소 세상의 크기를 알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 주위의 정보를 차단했을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루에 얼마만큼의 말을 해야 한다는, 일정량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부족하면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혼잣말이 그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내면에 있는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말 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위선이나, 남을 의식한 과장 같은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진실되고 소박한, 자기 자신만의 얘기일 뿐입니다.

당신은 이런 식의 대화를 하루에 얼마만큼이나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20대가 친구와 커피를 마시는 동안, 홀은 대학 구내의 잔디밭에서

쓸데없는 농담을 나누는 동안에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자기성찰의 시간은 많을수록 좋지만,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하루에 한 시간쯤은 꼭

따로 마련하십시오.

내가 가장 보기 싫어하는 20대의 모습 중에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광경입니다.

물론 피곤하면 자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잠이나 자두자는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마음의 고립을 위한 독방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자신과 대화를 나눠 보십시오.

세상이 넓다는 걸 알기 위해 굳이 먼 곳까지 갈 생각을 하지 말고, 당신 속에

있는 독방으로 지금 곧 들어가십시오.

@ff

47.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라

--독자적인 시각을 가지면 독자적인 세계가 보인다

 

내가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는 와세다대학의 니시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사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네."

이 말은 갓 스물이 된 나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교수님의 전공은 인류학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너무나도 많은 부분에 걸쳐 관여하고 있어서 딱히 인류학

전공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분이지요.

인류학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형질인류학이라고도 하는, 뼈를 조사해서 인류학과 문화의 주제를 규명하는

문화인류학과 언어를 조사하는 언어인류학입니다.

니시에 교수님의 전공은 언어인류학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사전을

만든다'는 말은 너무나도 언어인류학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라는 것이고, 모든 사물을 볼 때 독자적인 시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만든 사전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전에는 보편적인 의미가 실려 있는 법이지만 20대부터는 자기

나름대로의 말로, 자기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는 사전을 따로 가져야 합니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사물을 파악하고 분석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배움입니다.

말을 사용해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세상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표현한다는

것으로, 바로 세계관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똑같은 경치를 봐도,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말은 제각기 다릅니다.

저녁 노을이 지는 것 보며 인생의 황혼을 떠올리면서 한없이 쓸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황금빛 노을을 보면서 생의 환희를 노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현실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곳에 해석이 존재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내리고,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를 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해석이 없으면 세상은 너무나 밋밋하고 아무런 맛이 없습니다.

공부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의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의무라고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또한 상식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하지 않습니다.

도덕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환상으로, 그것에 따르면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으니까 지키는 것뿐입니다.

편지를 쓸 때도, 날씨에 관한 인사말부터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인사말을 쓰면 첫머리를 편하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이고,

예의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낳기 위해서 쓰는 것뿐입니다.

표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당초 표준어 따위는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표준어로 말하면 촌놈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표준어를 연습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표준어로 말해야 한다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밋밋한 세상에 선은 긋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 그림들이 모이면 한 권의 사전이 되고, 그 사전 속의 어휘들이 바로 당신의

숨결인 것입니다.

'나만의 사전'은 평생 동안 당신을 지배하면서, 동시에 당신을 이끄는 지렛대가 될

것입니다.

마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구입했던 영어사전 한 권이 그를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듯이 말입니다.

@ff

48. 자신의 체력 한 계에 도전해 보라

--내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아는 것도 큰 재산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 세계 최고봉을 단독으로 등정한 탐험가에게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십니까?"

그러자 탐험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저의 체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위대한 탐험가의 뭔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던 사회자는 거기서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혼자서 세계 최고봉에 도전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처럼 위대한 탐험가의 멋진 답변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도대체 내 체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고등하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전국을 혼자서 도보여행으로 돌아보겠다고 떠난

친구가 있습니다.

닛까스 로망 포르노에 다닐 때의 일인데, 뜀박질이라고는 전혀 해보지도 않은

친구가 전국 규모의 마라톤대회에 나가겠다고 연습을 하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저 녀석 참 괴짜로군, 하고 누구나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마라톤대회에 정말로

출전하여 4시간 30분 만에 골인지점에 들어와서는 성취감 때문인지 너무나

탈진했기 때문인지 완전히 뻗어 버렸습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동료들이 그에게 달려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묻자 그 친구는 텔레비전의

탐험가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던 것입니다.

"내 체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그냥 한 번 알아보고 싶었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고유능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능에 상당한 소질을 갖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사업가적 수완,

어떤 사람은 조사 통계에 탁월한 소양을 갖고 태어납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무의미한 일생을 살라고 태어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일생을 마치고 마는 것이지요.

당신의 체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진지하게 점검할 필요는 그래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성찰해 보는 일이야말로 앞으로의 인생을 펼쳐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해외여행을 떠나 보는 일도 좋습니다.

100km를 하루에 걸어 보겠노라는 엉뚱한 발상도 환영합니다.

대부분의 20대가 아무런 노력도 시도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자기 자신은 무능하고

무력하다고 판정해 버리기 때문에 정말로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로 전락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0대에는 꼭 한번 자신의 체력을 점검해 봅시다.

완전히 탈진한 나머지 세상이 아득할 정도로 하늘이 노랗게 변할지라도,

너머에서 다가오는 환희로 인해 당신은 아무도 모르게 미소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ff

49. 기본기에 충실한 선수가 되어라

--코드 3개만 알면 기타를 칠 수 있다.

 

기타에는 누구라도 칠 수 있는 곡이 있습니다.

코드 3개로 칠 수 있는 곡입니다.

그런 곡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보통 곡은 'A, A, B, A'라는 형태의 반복으로 진행됩니다.

코드 3개를 외우면, 그 다음은 자세한 부분은 생략하면서 그것만 계속해서 퉁기면

웬만한 곡을 얼버무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타의 즐거움입니다.

코드를 3개 알고 있는 사람이 다시 2개를 더 배워서 5개의 코드를 칠 수 있게

된다면, 칠 수 있는 곡은 대폭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코드를 많이 외우면 외울수록 프로 기타리스트가 치는 소리에 가까워집니다.

코드를 3개만 칠 수 있다면, 상대가 치는 기타 소리가 어느 곡인지도 금방 알 수

있게 됩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도 코드 3개로 시작합시다.

영어를 공부하려고 생각한 사람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요?

영어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어 공부의 방법론이라는 책을 사게됩니다.

시간은 낭비하지 않고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처럼 앞으로 전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 또다른 완벽의 출발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방면에 전문가적 식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기 위해 지나친 완벽주의를 고집하느라 시간만 허비하는 젊은이가

되지 마십시오.

자신이 만약 어떤 방법으로 출발했을 때, 그 방법보다 이 방법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식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출발점에 머무르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코드 3개를 외운다면, 그 이상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올바른 영어를 쓰지 않으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코드 3개만 가지고 만족하는 당신에게 아무도 연주를 맡기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코드 3개를 안다면, 더 많은 코드를 알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 하나씩하나씩 차근차근 늘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코드를 갑자기 100개나 외우려고 하기 때문에 악기가

즐거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타도 그러하고 피아노도 그러합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이고,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코드 3개를 외우면,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가 있습니다.

우선 코드 3개를 외웁시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만둘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기본적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운동 경기에서는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 선수는 투지는 좋은데 기본기가 안 되어 있군요."

해설자의 이 말 속에는 냉소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인 실력도 없는 사람이 투지만 좋다는 얘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기본기는 좋은데 투지가 별로인 선수도 있습니다.

부디 당신은 기본기도 좋고 투지도 좋은 선수가 되어, 30대 이후의 싸움터에

나가기 바랍니다.

@ff

50. '반드시 해야 할 50가지'를 스스로 정하라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가 당신을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당신은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해서, 이 책에 나온 50가지는 필자의 생각 안에서 존재하는

50가지일 뿐입니다.

나는 당신에게도 이와 똑같은 방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당신 스스로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를 직접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50가지 중에서는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20대에 꼭 해야 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름답고 멋진

30대를 향유하지 못할 계획표를 만들어 보십시오.

내가 이 책을 쓴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입니다.

당신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입니다.

당신 인생의 진로는 남이 대신 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만들고, 당신 스스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20대 이전에는, 철저하게 남이 깔아 놓은 양탄자 위를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걸어왔습니다.

그 시절에는 당신의 신념이나 각오 같은 것이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아서

주어진 여건 안에서 묵묵히 최선만 다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탄생하는 것이 모범생이요, 우등생입니다.

그러나 20대 이후부터는 당신의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사회는 편안한 양탄자 길만 있는 게 아니어서, 숱한 수렁과 가시와 벽을 준비해

놓고 거기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낙오자가 되느냐, 전진하는 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당신이

결정합니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는 결국, 사회의 가시밭길을 통과해서

안전지대로 이르기 위한 최선의 방책인 것입니다.

놀랍게도,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사살일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범주 안에 들어 있지 않아야 합니다.

설령 지금 당장은 그 속에 포함돼 있다 하더라도 빨리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나는 이 책에서 처음부터 당신을 그럴 수 있는 능력자로 간주하고 내 얘기를

계속해왔습니다.

당신은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를 통해 당신 자신의 힘과 지혜를 시험해

보십시오.

20대는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는 시기입니다.

20대는 그래야만 되는 책임을 지는 시기입니다.

당신은 지금 20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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