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판 사진'은 사진을 인쇄하여 명함을 대신한 19세기 유럽의 풍습에서 유래했다. 파리
의 초상 사진가 앙드레 아돌프가 처음 만든 후 19세기 중반에 굉장히 유행했다. 아돌프는
1854년, 4개의 렌즈가 달린 명함판 사진 카메라에 대한 특허를 받았는데 이것을 적극 상술
에 활용했다. 그는 카메라 규격 사이즈의 원판으로 가로 5.69cm, 세로 8.44cm 크기의 음화
필름 8장이 나오면, 원판대로 나온 큰 인화지를 잘라서 대략 가로 6.5cm, 세로 10cm 크기의
명함에 붙여서 사용했다. 즉 값싸고 작은 초상화들을 명함 대신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명
함판 사진'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명함판 사진은 나폴레옹 3세가 디스데리에게 포즈
를 취해 준 이후 일시적으로 크게 유행했으며, 생일이나 경축일에 교환되기도 했고, 빅토리
아 여왕 시대에는 명함판 사진 앨범이 사교계에서 일반화 되었다. 초창기 초상 사진의 주
요 고객은 신흥 부르주아였다. 귀족처럼 사진으로 초상을 남기려는 욕구가 명함판 사진의
유행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상당히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지
루함을 기꺼이 감내했을 뿐만 아니라 멋진 포즈를 위해 연구하기까지 했다. 명함판 사진이
유행하게 된 데에는, 당시 사진이 무척 신기한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한편으로 여권의
발급과도 맞물렸다. 그 무렵 국제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유럽 각국이 다투어 자국 국민을
확인하는 여권을 발급하게 되었는데, 이때 명함판 규격의 사진이 차차 채택되면서 '명함판
사진' 유행에 단단히 한몫 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후반 들어서 명함판 사진에 대한 유행
은 사라졌지만, 당시의 규격은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명함판 사진은
요즈음 '즉석 사진'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다시금 유행하고 있다. 자동 촬영 기계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연예인 또는 재미있는 형상을 배경으로 한 '스티커 사진'이 바로 인화되어
나오는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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