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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비밀

양말과 기독교

by Frais 2020. 8. 26.

  천주교는 17세기 초 우리 나라 실학 운동에 자극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학이라는 새로
운 학풍을 낳기도 하였다. 서학이란 서양의 종교와 학문을 내포한 개념인데, 우선  학문적인 
관심에서 연구되기 시작했지만 이윽고 천주교 신앙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천주
교 신앙이 우리 사회에 침투하기까지는 대략 2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며 외국  선교사들
의 피땀  어린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 신해사옥(1791), 신유사옥(1801)을 거쳐 수많은 순교
자를 양산했지만, 그럼에도 19세기 중엽을  전후해 이 땅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목숨을  걸고 포교에 열중하였다. 선교사들은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했으며, 
언어 장벽으로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포교를 위한 문화적 충돌에 
애로를 겼었다. 정치적 박해와 더불어 어려움을 주는  또 다른  시련은 오랫동안 조선 사회
를 지배해 온 유교 사상이란 벽을 넘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제사 및 신분  평등은 마찰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이런 어려움을 '문화의 조화'를 통해 극복하였다. 예컨대 미사를 볼 때  장막으
로 남녀의 공간을 분리한다든가, 제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든가 하는 따위였다. 그 외에도 
선교사들이 겪은 고충은 상당했는데, 선교사 J.S.게일은 다음 일곱  가지가 특히 선교사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다고 회고하면서 후배 선교사들에게 충고했다. "첫째, 하루 종일 온돌
방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세 시간동안 다리를 꼬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고
문이 되었고 무릎과 엉덩이뼈, 발목뼈가  끊어지는 듯 아팠다. 
둘째, 잠자는 것이다. (조선의) 더운 (온돌)방에서 몇   해 동안 잠을 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빵을 굽는 것을 체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셋째, 음식이다. 과일,  오트밀, 베이컨, 
달걀, 커피 대신에 당신은 쌀밥, 김치, 무, 고추장  따위를 받을 것이며 그 냄새는 지독하다. 
넷째, 대중이다. 밤이 되면 호랑이를 막는다는 미명하에 모든 문과 통풍구가 닫힌다. 이  사
람들은 결코 불친절하거나 불손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의 무리가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
다. 당신은 결코 어떠한 진전도  이룩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새로운 방문자가 오
면 이미 와 있던 방문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다시 인사를 와 설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해충이다. 어떤 것은 볼  수 있을 만큼 크지만  어떤 것은 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하다. 콜레라균과 같은 것은 깃발과 야포를 가진  군대보다 더 무섭다. 여섯째, 질
병과 죽음이다. 조선에는 질병을 앓는 사람이  많고, 실제 질병을 겪게  된다. 일곱째, 언어
이다. 어린아이가 되어 단음절의 짧은 말로 수다를 떨어야 하고 바보스러운 말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실수를 저지르거나 친구들을 혼란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들의 이런 인내와 희생에 힘입어 기독교는  이 땅에서 급속도로 세를 확장해  나갔
다. 그런데 왜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보수적인  조선인들이 어찌하여  외래 종교인 
기독교만큼은  그토록 빨리 받아들였을까? 그 요체는  '평등'이었다. 선교사들은 막연한 사
랑과 자애를 설명하기보다 '신 앞에서의 평등'을 강조하였으며, 이때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종종 양말을 이용했다고 한다. '서양 버선'이란 뜻인 양말은 약 2백 년 전쯤에  밀입국한 프
랑스 선교사들이 처음 가지고  들어왔는데, 당시 양말은 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교용으로 
큰 몫을 했다 한다.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 사람에게 양말을  신어 보라고 권하면 '그 작은 
것을 어떻게 어른 발에 신는가' 의문스러워했는데, 이때 선교사는 양말을 신어 보이며 양말
의 탄력성에 빗대어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무차별을 설파했다는 것이다.  선천적 신분 질서
를 강요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상민·천민들에게  '평등'의 교리가 침투하는 것
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인권에 일찍 눈이 뜬 양반들에게도  기독교 교리는 매우 인상
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일단 기독교 교리를 들은  사람은 비밀리에 가까운 사람
에게 같이 예배보러 갈 것을 권유하였고,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유행처럼 기독
교가 전파되었다.  선교사 H.N.알렌은 기독교의 급속한 전파에 대해 이렇게 풀이했다. "조선
에서는 기독교의 인기가 높은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기독교가 관리와의 관계를 평등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아시아에서는 대중들이 예로부터 관리의 
압박을 심하게 받아 왔다. 그런데 기독교는 모든 사람이  최후의  심판 앞에 동등하기 때문
에 어느 때고 인간은 인간의 주인 앞에서 평등하게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이러한 가
설은 터무니없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실제 경험에서  연역된 것으로, 부분적이나마 
그들에게 그럴 듯한 해답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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