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피혁은 오래 전부터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피혁 제품이 일
상적인 생활 용품으로 상품화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에서 벗겨 낸
그대로의 상태를 '피', 그것을 무두질하여 부패·건조를 없애고 내수·내열성을 가미한 것
을 '혁'이라 부르고 있다. 초기의 타닌 무두질은 공정에 시간을 요했지만, 19세기 후반에 화
학적인 크롬 무두질이 개발되어 공정을 하루로 단축시킴에 따라 피혁 제품, 특히 여행 가
방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물건을 넣어서 들고 다니는' 핸드백의 역사는 퍽 오
래되었다. 기원전 9세기경 아시리아의 고대 유적에 부조된 유익신상의 손에는 네모난 핸드
백이 들려 있다. 이처럼 가방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신분 계층에 따라 사용하는 가방의 크기
가 달랐다. 예로부터 작은 핸드백엔 귀족이나 왕족이 돈이나 보석을 넣고 다녔는데, 이 핸드
백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복장의 포인트가 되었다. 이에 비해 큰 가방에는 서민들이 자잘한
소지품이나 빵, 술 등을 넣고 다녔다. 이것은 상인, 병사, 장인들이 사용했으며 점차로 개량
되어 갔다. 이 같은 가방 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세기 중엽의 일이다. 비교적
신분이 평등해지고 여행이 유행하게 되자, 여행의 편리를 위해 여행 가방이 등장한 것이다.
프랑스의 루이 비통은 그런 변화의 물결을 간파하고 1854년 '루이 비통'사를 창업해 큰 성
공을 거두었다. 그는 여행용품을 세분화해서 넣을 수 있게끔 작은 화장 가방에서부터 큰 옷
가방에 이르기까지 제품을 다양화했는데, 이것은 곧 여행하는 사람의 자랑 섞인 상징물이
되었다. 이제는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큰 여행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차이가 있다면 귀족
은 하인을 대동하고, 그보다 여유가 덜한 사람은 직접 가방을 들고 다녔다는 것뿐이다. 물
론 왕족은 여전히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가공된 야행 가방을 가지고 다녔지만, 그것은 특
수한 예외일 뿐 여행 가방의 유행은 폭넓게 번져 나갔다. 여성들이 애용하는 핸드백을 20세
기 들어 대중화되었다. 중세 초기 유럽에서는 명문가의 부인들이 '오모니엘'이라 하여 작은
주머니를 혁대에 매달고 다녔는데, 그것은 실용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패션을 위해서였다.
20세기의 핸드백은 실용과 패션을 동시에 겸했다는 점에서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 용도도 기념 모임 정장용, 가벼운 나들이용, 화려한 파티용, 일상용 등등으로 세분화되
어 핸드백은 그야말로 완전히 복장의 일부로 정착한 것이다. 또한 16∼18세기 귀부인들이
멋으로 들고 다니던 장갑이 현대에 들어 핸드백과 세트로 여겨지면서 결혼식이나 파티에
참석할 때 갖춰야 할 우아한 여성 복장의 기본이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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