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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비밀

사람은 왜 좌측 통행을 할까

by Frais 2020. 8. 26.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소를 신성시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힌두교도들은 소를 
신으로 섬겨 꽃과 술로 장식하고 집 근처에 모시며, 이름을 지어 주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
를 나눈다. 그들은 소에게 무엇이든 우선권을 주고 좋은 자리를 내준다. 소가 길거리를 돌아 
다니는 경우, 번잡한 통행로의 오른쪽을  차지하도록 놔두며, 통행시 사람보다 우선권을  준
다. 힌두교도들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윗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도 통행에 대한 관습이 있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실용적 이유에
서 형성되었다. 19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마차를 타고 교외로 나들이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이 '삶의 낭만'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풍속이었다. 인
기 있는 나들이  장소는 단연 강변이었는데, 그 곳에서 사람들은  산책을 하거나 보트 놀이
를 즐겼다. 대개는 가족 단위의 나들이였지만 간혹 불륜에 빠진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나들
이 장소로 가는 데에는 주로 마차를 이용했는데, 마차는 오늘날의 택시와 같은 역할을 했다. 
마차의 모양은 마부의 개성에 따라 다양했다. 그냥 의자만 있는 마차가 가장 흔했으며, 한껏 
멋을 부려 방처럼 사방을 막은 마차도 나타났고, 현재의  컨버터블 자동차처럼 유사시 덮을 
수 있는 오픈형 마차도 등장했다. 이처럼 마차들은  그 종류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
이 있었으니 마부는 오른쪽에 앉아서 마차를 몰았다는 사실이다.  대개의 경우 손님용 의자
는 마부 뒤쪽에 마련 되었으나 여러 명이 탈 경우 손님 중의 한 명은  마부 왼쪽에 앉도록 
되어 있었다. 만약 오른쪽에 손님이 앉는다면 마부가 말에게 채찍질할 때 옆사람에게  채찍
이 잘못 휘둘러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차 통행량이 급증하자 오른쪽으로 운행하
는 관습이  형성되었다. 이것도 채찍 휘두르는  습관을 감안하여 생긴 것이며, 이후 자동차 
통행의 원칙으로 연결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통행에 있어 차별이 존재했다. 양반과  서민의  차이별 의식이 유별났던 
만큼 통행에 있어서도 양반이 우선권을 가짐은 물론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전통적으로 오른쪽이 왼쪽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강했기에 자연히 양반은 오른쪽으로 통행
했고, 천민은 왼쪽으로 통행했다. 이런 차별은 근대에 들어 서서히 허물어졌지만  구한말까
지도 종로에서 차마나 천민은 좌측  통행을 했고 양반은 우측 통행을 했다. 신분 차별 없는 
통행은 일제 시대에 정착되었는데, 그것은 '평등'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교통 질서'를 위한 
행정 계도에 의해서였다. '차는  우측  통행, 사람은 좌측 통행'이라는 지금의  통행 관습은 
일제 시대에 만들어졌다. 1920년 5월 본정경찰서는 '사람들은 길가의 오른쪽으로 다니게 하
고 수레와 말은 길 중앙의 오른쪽으로 다니게 한다'는 행정  조치를 내렸다.  이는 교통 질
서 근대화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번잡한 곳은 남대문역과 지금의  충무
로였다. 사람들 행렬에 수레와 인력거, 그리고 자동차가 뒤섞여   혼잡을 이뤘다. 물론 지금
의  대혼잡과는 개념이 다르지만, 통행 원칙이 없어서 교통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이 지역을 관할하던  경찰서가 나서서 우측 통행을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며, 곧 다른 경찰
서에서도 이를 뒤따랐다. 또한 우측 통행을 조속히 정착시키기 위해 전임 순사가 배치돼 단
속 활동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른바 교통 순경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1년여를 두
고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우측 통행은 그 다음해부터  느닷없이 좌측 통행으로 바뀌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좌측 통행을 하는 일본과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불편하다'며 1921년 
12월 전국적으로 사람과 차량을 모두 좌측 통행으로 바꾼 것이다.   그 후 1946년 미군정이 
다시 차량만을 우측통행으로 바꿔 오늘날 차량은 오른쪽 길, 사람은 왼쪽 길로 다니고 있다. 
오늘날에는 통행에 있어 별다른 예절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옛날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어른을 모시고 길을 걷는 경우, 어린 사람이 어
른의 왼쪽에서  걷는 것이 그렇고, '비서'가 '회장님'의 왼쪽 한 걸음 뒤쯤에서 수행하는 것
이 그렇다. 한편, 남녀가 데이트할 때 여성이  길 안쪽을 차지하도록 배려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 나온 예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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