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은 한글창제 및 반포를 기념하는 날 입니다!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선양하기 위하여 지정된 날! 바로 한글날! 입니다.
한글의 유래
《세종실록》에 최만리가 훈민정음이 “고전(古篆)을 본땄다(倣)”라고 말한 기록이 있는데,[16][17] 이 말이 모호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고전’의 해석에는 한자의 전자체(篆字體)라는 설과 당시에 ‘몽고전자’(蒙古篆字)로도 불렸던 파스파 문자를 말하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사람은 이것이 가림토를 일컫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본땄다’(倣)에 대해서도 그 생김새만이 닮았을 뿐이라는 풀이와 만드는 데에 참고를 했다, 또는 모두 본땄다 등의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설명한 문헌이 존재하지 않아 그 유래에 대한 여러 이론이 제기되었다. 그 이전에 제기되었던 주요 학설은 다음과 같다.
발음 기관 상형설: 발음 기관을 상형했다는 설. 신경준(申景濬), 홍양호(洪良浩), 최현배
전자 기원설: 한문 비석 등에 쓰이는 전자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황윤석(黃胤錫), 이능화
몽골 문자 기원설: 몽골문자(파스파)에서 유래했다는 설. 이익(李翼), 유희(柳僖), 게리 레드야드(Gari Ledyard)
범자(梵字) 기원설: 불경과 함께 고대 인도 문자가 전해져, 그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성현, 이수광(李晬光)
고대 문자 전래설: 훈민정음 이전 민간에서 전해지던 고대문자로부터 유래했다는 설.
창문 상형설: 한옥의 창살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 에카르트(P. A. Eckardt)
서장(西藏)글자·오행(五行)이론.[18]
《훈민정음》(해례본)에는 자음과 모음 각각에 대한 창제 원리가 상세히 설명되어 기본 자음 5자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추상화하고, 기본 모음 3자는 천지인 3재를 상징하여 창제되었고, 다른 글자들이 획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여러 이설들을 잠재우고 정설이 되었다.
한글날의 유래
처음으로 한글날을 기념한 것은 일제시대인 1926년이다. 한글이 반포(1446년)된 지 8회갑(480돌)이 되는 1926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와 신민회가 공동으로 식도원(食道園)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최초다.
이때 기념식을 치른 날짜는 11월 4일이었다.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실록의 기록에 근거해 음력 9월 29일을 한글 반포 일로 보고 이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기념식 명칭은 ‘가갸날’로 정했다. 당시 ‘가갸거겨’ 하면서 한글을 익혔기 때문이다. 몇 해 뒤부터는 ‘한글날’이란 이름이 사용됐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일제의 탄압으로 기념식을 거행하기 어려웠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한글학자들이 투옥됨에 따라 더욱 기념식을 치를 수 없었다. 1945년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다시 기념식을 거행하게 됐다.
1945년부터는 지금처럼 10월 9일에 한글을 기념하게 된다.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기록을 근거로 날짜를 다시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에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해 나온 것이 10월 9일이다.
1970년부터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해 행사를 치러 왔으나 1990년에는 국경일이 아닌 단순 기념일로 바뀌었다. 각계의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다시 국경일로 지정돼 행사를 치르고 있으나 공휴일에서는 제외됐다.
한글은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인터넷 시대에 그 독창성과 과학성이 더욱 빛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아쉽다. 한글학회 등 한글단체와 문화관광부가 한글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 놓고 있으나 평일이라 참여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한글의 유래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것은 물론이고, 한글이 전세계의 어떤 문자와 비교해 보아도 대단히 우수한 문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토록 위대한 문자를 만들어낸 우리 한민족의 언어와 문자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비공식적인 이야기’정도로 남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 KBS역사스페셜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1999.10.9 방영)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의 4대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남몰래 자식들과 더불어 한글을 연구한 지 10여 년 만에 마침내 28자의 정음을 창제하였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재위25년(1443년)에 전격적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당시 집현전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최만리 등 일곱 명의 노장학자들은 반대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의 소장학자들과 더불어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과 동국정운(1447년) 등 한글관련 서적의 편찬사업을 계속 추진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아무 불편없이 언어와 문자를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군주로서의 의지가 확고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글의 우수성
세종대왕의 이러한 신념이 반영된 훈민정음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는 지난 1994년 7월호 특집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한글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
한마디로 말해서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는 것이다.
한편 언어학자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한글이 어떻게 한 개인의 연구에 의해 단기간에 창제될 수 있단 말인가?’
세계 문자 역사상 그런 경우는 단 한건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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