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에 있어 1840년대를 전후한 시기는 서부 개척 시대다. 개척의 주 대상은 임자 없는 서쪽의
땅이었고 처음 발견한 사람은 말뚝만 박으면 그 땅의 주인이 되었다. 이 즈음 서부로 가는 세 번째 중
요한 길인 캘리포니아 통로 역시 이주의 물결을 일부 받아들이고 있었다. 1840년대 중반까지 그 대부분
은 모피 상인들이었다. 제임스 마셜은 그런 물결에 휩쓸려 황무지 서부로 온 사람이었다. 마셜은 별다른
일거리를 얻지 못해 방황하다가 결국 캘리포니아에 항구를 건설한 친구 캡틴 셔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
했다. 광활한 땅을 소유하고 있던 셔터는 마셜에게 아메리칸 강 근처의 콜롬보란 곳에 목재소 세우는
일을 시켰다. 그 일을 거의 끝낼 무렵인 1848년 1월 24일 마셜은 우연히 목재소 근처 도랑에서 노란빛
을 내는 쇳조각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금이었다. 처음에는 동전 한 닢을 우연히 주운 정도의 행운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지만, 마셜은 집요한 추적 끝에 사금의 원천인 금광을 발견하였다. 제임스 마셜이 캘리
포니아의 새크라멘토 계곡에서 금을 발견했다는 소문은 동부 지방까지 급속도로 번졌으며, 사상 유례없
는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길을 떠났
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1849년부터 그 뒤 10년 동안 353,994명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들을 가리켜 'forty-niner'(49년의 사람들)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중 캘리포
니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로에서 죽은 사람들이 15만 명, 인디언에게 죽은 사람이 362명이나 되었다.
금을 찾아온 사람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여기저기 관산 거리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거리들을 이제까지의
개척자 마을들과는 달리 활기에 넘쳐 있었다. 광맥을 발견하기만 하면 하루 아침에 큰 부자가 된다는
부픈 꿈과 기대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들뜬 분위기에 편승하여 술이나
도박에 빠진 불량배들 또한 적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부자가 되
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바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난자(노다지)를
찾아 헤맸지만 광맥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행히 광맥을 찾았다 해도 그 광석으로부터 금이나
은을 얻어내기까지에는 무수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광맥마저 발견하지 못하고 일생을 허비하는 사람
들도 숱했다. 진짜로 돈을 번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물론 노다지를 캐낸 행운의 사나이들은 호화 저택
을 짓고 사치스런 생활을 누렸지만, 그런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작 목돈을 챙긴 사람들
은 사금 캐는 사람들이 아니라 폭리를 취한 상인들이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생필품을 비싼 값으로 팔
아 큰 돈을 벌었다. 화물 운송업자 역시 이 시기에 적지 않은 재미를 본 사람들이었다. 금·은을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서는 어차피 필요로 하는 장소까지 운반해야 했다. 운송업자들은 이런 점을 이용해 비
싼 운송료를 받기 일쑤였고 때로는 운송을 거부하는 등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때문에 일확천금의 꿈을
좇는 사람들은 그저 꿈만 먹고 살았을 뿐이니,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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